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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Sep 04. 2018

내 감정의 이름표

그냥 싫거나 그저 좋거나, 이유가 없다?

현대인들이 많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 중에 ‘감정표현 불능’이라는 병이 있다. 이름만 보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병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현재 어떤 감정 상태인지 몰라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병이다. 이 사람들의 경우,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반대다. 타인이 바라볼 때는 지극히 냉철하고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인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자신이 갖는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만난 지 4주 만에 미래를 약속하고 12주 만에 결혼식을 올린 지인이 있다. 첫 만남부터 요란했다. ‘운명이다’ ‘이런 경험 처음이다’ ‘다시 또 없을 사람이다’라며 시끌벅적하게 연애를 하며 염장질을 해댔다. 무얼 먹었고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수시로 자진 청문회를 열어 낱낱이 고하는 통에 주변인 중 그들의 행태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운명이며 다시 또 없을 사람이라던 지인의 말은 결혼식 전날이 되어서야 자기감정의 정확한 이름표를 찾았다. 연민이라고 했다. 사랑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엔 호감으로 만났단다. 나쁘지 않은 조건과 외모도 한몫했다고 한다. 적당한 시기(친구 중에 본인만 애인이 없었고 직장 스트레스로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할 무렵)에 만난 두 사람의 감정은 적당함이라는 무기로 승전고를 울렸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애틋해지니 사랑이라고 했다. 달이 갈수록 그리워지니 그 또한 사랑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혼한다던 지인의 말은 결혼식 전날 밤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날이 가고 달을 건너던 감정 가장 밑바닥에는 사랑이 아닌 걱정과 안쓰러움을 먹고 자란 연민이 가득했다.

“왠지 그 사람한테는 내가 꼭 필요할 것 같아.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나를 너무 사랑하는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그렇게 짠하더라. 그래서 사랑인 줄 알았어” 

지인의 마지막 말이다.


모성애와 동정에서 시작된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한 지인은 결국 결혼 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그 사람이 이래서 좋아라며 분명한 이유를 밝히는 사람이 있다. 싫은 이유 또한 그렇다. 논리적이고 명확하게 누가 들어도 그럴만한 이유를 늘어놓기도 한다. 반면 이유가 없는 사람도 있다. 그냥 좋고 그저 싫다. 이유 따위는 없다고 한다.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싫고 좋음의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유를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상대를 향한 우월감은 열등감을 감추고 있고 과한 겸손은 속내에 거만함을 숨기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의 감정일수록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들여다보려고 하면 할수록 결국 맞닥뜨리는 것은 벌거벗은 자신이거나 불편한 진실일 확률이 높다.

만약 지금 어떤 감정을 겪고 있다면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 보라. 설익음이 농익어 숙성되는 과정이 아닐지 모른다. 뿌리부터 다른 감정일 수 있다. 당근의 어린싹이 잡초와 쉽게 구별되지 않듯 우리의 감정 또한 그렇다. 어느 것이 당근인지 어느 것이 잡초인지 뽑아 봐야 아는 어리석음을 종종 겪는다.

한자에 애매모호라는 말이 있다. 사물(事物)의 이치(理致)가 희미(稀微)하고 분명(分明)치 않을 때 쓰는 말이다. 감정은 대체로 애매하고 모호해 보인다. 우리의 문제는 어쩌면 내 감정의 정확한 이름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모르는 게 아닐까?

한아파트에도 여러 개의 동이 있고 수십 개의 호가 있다. 우리가 갖는 감정도 그렇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갖는 누군가가 있다고 하자. 제공자와 원인에 따라 흐뭇함, 만족감, 기쁨, 벅참, 환희, 뿌듯함 등으로 나뉘지 않는가. 퉁쳐서 하나로 묶지 말고 내밀하고 세밀한 감정에 꼭 맞는 이름표를 달아주자. 그것만이 애매한 감정으로 인해 겪게 되는 막연한 자책과 알 수 없는 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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