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완벽한 날은 어떤 날일까?
며칠 전 봉사로 몸담고 있는 정토회에서 도반님과 이야기를 하며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 한다. 도반은 법사님께 '어떻게 수행 정진을 그렇게 평생 하실 생각을 하셨나요?'하고 여쭈었다 했다. 법사님께서는 너무 명쾌하게 '한 번도 평생 한다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냥 오늘만 할 뿐이다.'라고 답하셨다고 했다. 도반은 하루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으니, 그 생각으로 정진해야겠다고 답했다. 너무 뻔한 답이고, 너무 알고 있는 말이다. 근데 그 말이 왜 그날따라 다르게 들렸을까? 금강경의 서문이 그렇듯 늘 평소와 같이 여여하게 수행정진하는 부처님의 말씀에 특별함을 느낀 수보리의 깨달음처럼, 그날이 나에게는 비슷한 경험이었다. 사실 깨달음의 순간은 잘 살펴보면 일상의 평범함 속에 항상 공존했다.
수행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나는 새벽녘에 일어나는 것과 싸우고 있다. 수행을 건너뛴 날은 괜한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요즘 같은 추운 날에는 전기장판을 켜 놓은 이불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지 한 발자국 내딛는 그 다짐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진다. 어느 날은 벌떡 일어났다가 일이 분 정도 눈만 끔뻑거리며 고민하다 다시 자리에 눕곤 했다. 지금은 그런 날이 있어도 다음날 또 정진하고, 또 수행하고, 또 108배를 하고 명상한다. 다만 할 뿐이라는 그 말을 실천 중이다.
어느 날부터 여행을 좋아했던 내가 여행보다 이불속에 강아지와 있는 삶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파란 바다가 보이는 호텔 오션 뷰에 눕는 것보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뒷 산의 산책길이 더 즐거워졌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날씨도 하루하루 다르고, 계절은 조금씩 변화해 간다. 아마도 그전까지 나는 그런 일상 속 변화를 전혀 인지하고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낮에는 각양각색의 풀잎과 꽃잎들이 보이고, 밤에는 매일매일 변화하는 달의 모양을 관찰할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재밌는 하루하루이다 보니 여행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특별함을 찾지 못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주인공을 보니 나의 삶과 매우 닮았다 싶었다. 이 영화는 빔 벤더스가 일본에서 진행한 '더 토일렛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했다. 프로젝트의 화장실을 면면히 보여줘야 하는 임무가 있어서인지 영화 속 주인공은 화장실을 관리하는 청소노동장로 등장한다. 매일 같이 그 화장실을 깨끗하게 관리하면서 동시에 프로젝트에 충실하게 일본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화장실을 직접적으로 비춘다.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성 이야기로 끼워 맞춰 만들어진 인물이더라도 화장실의 의미는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흔히 인권 감수성 이야기를 할 때 항상 화장실이 하나의 담론으로 등장한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누구든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왜냐면 인간은 먹고, 자고, 싸는 것을 되풀이하는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기본권 중 가장 충실하게 지켜져야 할 권리가 먹고, 자고, 싸는 것이다. 화장실 담론이 멈추지 않는 이유도 우리의 기본권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어떨까? 화장실은 인간의 생체 리듬에서 '정화된 것'을 배설하는 공간이다. 더러운 것이 쌓이다 보니 하루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그만큼 금세 더러워지고 불쾌해지는 곳이 화장실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화장실 청소 노동자의 일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순환의 측면으로 봤을 때 청소노동자의 역할은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큰 역할이다. 주인공 히라야마와 젊은 청년 타카시는 그 안에서 매일 같이 노동을 하는 공통된 일을 하고 있지만, 일 하기 싫어하는 타카시와 다르게 히라야마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기쁜 마음으로 청소를 한다.
영화가 관조하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살펴보면 단조롭기 그지없다. 아마 이 부분에서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기도 할 지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히라야마의 모습을 끈질기게 좇는 카메라가 무용하게 느껴지는 관객도 있을 테니까. 말 그대로 히라야마의 일상은 매우 평평하다. 밤늦게까지 소설책을 읽다 잠에 빠지고, 아침에 밖에서 길거리를 쓸어내리는 빗자루 소리에 일어나 밤사이 흐트러진 이불과 책, 안경을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침대방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을 내려와 양치질을 하고 덥수룩한 수염을 다듬는다. 아, 다듬은 수염 자투리가 떨어진 세면대 정리도 잊지 않는다. 그러곤 작은 생명을 품은 화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며 관리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 새벽 녘 집을 나선다.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매일 같은 종류의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같은 노래를 듣는 출근길. 그게 히라야마의 하루를 차지하고 있는 일상이다.
그런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건 조카가 등장한 뒤부터이다. 히라야마는 강박적일 정도로 루틴에 집착하던 인물이다. 집안의 모든 동선과 행동반경 역시 그의 하루의 루틴에 맞춰져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조카는 표면적으로는 불청객, 은유적으로는 과거의 기억들을 다 끄집어내는 매개자로 묘사된다. 게다가 5년째 단골이었던 주점의 사장이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제 눈으로 목격하는 일까지 겹치면 잘 관리되던 평평한 하루의 균열이 조금씩 커져간다. 그 혼란함 속 사장과 불륜을 저지른 남성과 우연히 강변에서 마주친다. 히라야마는 남자와 담배를 나눠 피고, 맥주 한 캔을 마시는 일상 속 작은 일탈을 저지르며 말한다.
'변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일상을 묵묵히 유지하며 그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던 히라야마. 그것은 그의 또 다른 취미인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등장한다. 코모레비, 일본어 '木漏れ日'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의미한다. 히라야마는 일상 속 비치는 코모레비를 프레임 안에 담고, 그의 꿈 역시 코모레비의 이미지처럼 자주 나타난다. 영화이 초중반까지 그런 매일의 보석 같은 순간을 찾는 히라야마의 인생철학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면, 그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후반부에는 타인의 틈이 들어오지 않는 그 일상이 사실은 완벽하다 생각했던 그가, 낯선 이들의 침범으로 인해 외면했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강인함으로 숨겨왔던 외로움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 슬픔과 같은 것들.
모든 균열을 묵묵하게 견딘 히라야마는 또다시 출근한다. 틈새가 벌어졌을지언정 다시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똑같은 하루를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생겼다. 사건 뒤에 같은 출근길에서 자주 듣던 노래를 들으며 느닷없이 눈물이 터지는 경험. 이 장면은 보는 관객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히라야마는 울기만 하지 않는다. 울지만, 웃고 있다. 영화를 보지 않으면 절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얼굴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울고 웃는 히라야마를 보며 나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느꼈다. 우리 인생은 완벽하게 웃을 수만도, 완벽하게 울 수만도 없다. 그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그 애매한 감정을 껴안는 것, 어쩌면 그게 보통의 날에서 발견할 수 있는 퍼펙트가 아닐까? 그 얼굴은 히라야마는 그동안 외면했던 감정을 모두 다 껴안고 있었다. 비로소 진짜 자신이 원하던 퍼펙트 데이를 만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 장면에서 깔리는 영화의 OST 역시 인상적이다.
일부 발췌한 가사의 내용은 영화의 전반적인 메시지와 히라야마가 느낀 감정의 서사와 비슷하다.
Birds flying high you know how I feel
높이 날고 있는 새들아, 내 기분이 어떤지 아니
Sun in the sky you know how I feel
하늘의 태양아, 내 기분이 어떤지 아니
Reeds driftin' on by you know how I feel
바람에 날리는 갈대들아, 내 기분이 어떤지 아니
It's a new dawn
새로운 새벽
It's a new day
새로운 하루
It's a new life
새로운 인생이야
For me
나에겐 말이야
And I'm feeling good
그래서 난 행복해
가끔은 그림자를 밟는 무용한 일로 깔깔대며 웃고 가끔 음 신나게 울어보자. 그런 날이 진짜 내가 만날 수 있는 퍼펙트 데이가 될 수 있으니.
오늘의 질문
1) 내가 사랑하는 나의 하루 루틴은 무엇인가요?
2) 내가 느끼는 일상의 일탈은 무엇인가요?
3) 내가 만나지 못하고 코모레이 그림자 속에 숨겨둔 감정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