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 지금 내가 필요한 건 '응원'

자책 대신 따뜻한 응원의 말이 필요해

by 달달보름



이번 주 영화 <빅토리>를 보고 브런치 에세이를 준비하며 동시에 kt&g상상마당에서 열리고 있는 크라잉넛 30주년 전시를 관람했다. 별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영화와 전시 경험이 몽근하게 마음속에서 섞여서 이번 주 내가 경험한 강렬한 동시성으로 다가왔다. 온 세상이 종말 할 것 같은 밀레니얼을 뜨겁게 보낸 영화 속 주인공들과 세기말에 '조선 펑크 락'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둘의 에너지가 비슷했기 때문일까.


크라잉넛의 30주년은 곧 불혹인 내 나이의 3/4를 함께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빠들을 전혀 몰랐던 초등 저학년 시절을 지나 말 달리자로 보냈던 세기말의 초등 고학년. 내 청소년기를 온전히 지배했던 하수연가와 고물라디오, 그리고 목장의 젖소. 20대부터 최근까지 삶의 감각을 느끼게 했던 공연에서의 에너지 모두. 어쩌면 나는 매 순간 힘들 때마다 크라잉넛의 노래로 응원을 받았을지 모르겠다. <빅토리>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타인을, 자신을 위로하듯이 나에게는 크라잉넛이 나만의 빅토리였다.



<빅토리>는 개봉 당시 손익분기점 200억 원에 1/4에 미치는 50만 명 관객을 모객 한 것으로 아쉽게 마무리되었다. 영화를 본 뒤에 조금은 의아했던 지점도 있었다. 뻔하고 흔한 클리셰의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서 직조된 이야기가 분명하기에 이 정도의 성적밖에 미치지 못한 것은 그때 관람하지 못한 나에게도 아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때로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가 순간적으로 나를 깨닫게 하는 일도 흔하다. 마치 매일 똑같이 뜨는 해와 달이 그날 따라 눈이 부시거나 달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산책할 때 보는 흔하디 흔한 들꽃이 마음에 콕 박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가 그렇다. 크라잉넛이 30년간 똑같은 메시지와 운율과 리듬으로 한결같이 나를 위로한 것처럼, 영화 <빅토리>도 흔하게 다른 희망을 주는 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울림을 전한다.



때는 99년 세기말. HOT와 젝스키스가 유행했던 때이기는 하나 의외로 영화에서 등장하는 노래는 90년대 중반의 노래가 많다(저작권 문제였을까). 댄서가 되고 싶은 주인공 필선과 미나는 연습실 핑계로 서울에서 전학 온 세현을 꼬드겨 치어리더부를 만든다. 명목상 다른 멤버들도 뽑고 연습고 엉거주춤하던 그들은 진짜 '응원의 힘'을 느끼고 진심을 다해 치어리딩을 한다는, 뭐 그런 뻔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가장 큰 이유는 응원하는 배우들의 눈빛이 진짜 관객에게 가닿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50만 명의 관객 중 몇 관객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캐미를 다시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영국 노섬브리아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홈경기시 응원을 받는 선수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40% 증가했으며, 라이벌 팀과의 경기에서는 67%까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응원이라는 행위가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몸과 마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걸 경험한 2002년의 월드컵 세대들은 정말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현실이 된다는 걸 다 기억할 것이다...(죽을 때까지 이야기할 예정)



놀랍게도 말에는 힘이 있다. 신비주의에도 심리학에도 과학적으로 그렇다고 모두 다 입을 모아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이왕 살아낼 인생이라면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로 때로는 자신도 세상도 속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게 '자기 위안'이라고 자조하지 않고 진짜 '믿음'으로 점철된 에너지라 생각하면 그 에너지가 반드시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게 말과 응원의 힘이 아닐까.



나는 나를 얼마나 응원하고 있을까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쓰는 모닝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눈 뜨자마자 주로 하는 생각은 오늘 뭘 해야 하나 떠올리며 해야 할 일들을 적는 것. 그게 과연 무의식이 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적고 본다. 이 행위의 취약점은 다음 날 아침 반드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는 점이다. 회복탄력성이 높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나의 실제 그것은 아이들이 손으로 주물럭대는 만득이 정도였던 것 같다. 만지면 다시 돌아오지만 만지기 전에 스스로 절대 돌아올 수 있는 관성이 없는 그것.... 특히 하지 못한 일에 자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모닝페이지에서 자주 발견한다. 크라잉 넛의 노래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에너지에 응원을 받고 나눌 줄 알면서도 정작 나 자신을 응원한 적은 별로 없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마지막 큰 경기에서 치어리딩을 하러 나가며 말한다. 엄마를 위해, 아빠를 위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응원하겠다고. 주인공 필선은 그 사이에서 당당하게 외친다.



나는 나를 응원할 거야.

뻔한 영화 속 뻔한 대사가 매일 보는 해처럼, 달처럼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맞다. 나는 나를 응원한 적이 있을까? 마음속에서 용솟음치는 긍정 에너지를 남에게 나눌 줄만 알았지, 내가 취하고 내 것으로 만든 적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마음속의 작은 나를 꺼내 손에 마음껏 흔들 수 있는 팜을 쥐어 주었다. 타인의 위로로 마음을 채우는 것이 아닌 그저 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진짜 응원. 그 손에 커다란 깃발이 달린 막대기도 건넨다. 깃발엔 뭐라고 쓰여 있을까 상상했다. '지면 다시 하면 된다, 달리 방도가 없다'



그날 온 집안을 청소기로 미는 내 마음속에도 작은 응원이 퍼졌다.

'무려 청소를 하고 있잖아? 완전 짱이잖아?!'

별 것 아닌 일에도 스스로를 추켜 세우고 칭찬하고 응원하는 마음. 자기 위안이 아니라 진짜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될 테니, 그 힘으로 오늘도 승리하기를. 져도 다시 하는 것, 그게 진짜 빅토리가 아닐까?



오늘의 질문

1) 나를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떠올려보세요.

2) 나를 응원하는 주변의 것들을 떠올려 보세요.

3) 내가 줄 수 있는 응원은 무엇일지 떠올려 선물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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