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코> 에세이

죽음이 두렵지 않은 나는 허세 덩어리 일까?

by 달달보름


죽음이 두렵지 않은 나는 허세 덩어리 일까?


영화 <코코>의 사후세계는 판타스틱 그 자체이다. 마치 펼쳐질 수 없는 미겔의 꿈처럼 미겔이 사는 현생의 모습은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높이가 낮게 표현된다. 그에 비해 실수로 진입한 저승의 세계에 들어서자마자 미겔의 눈앞에 펼쳐지는 사후세계는 참았던 숨을 마음껏 쉴 수 있도록 하는 탁 트인 공간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뺨칠 정도의 끝없이 펼쳐진 높은 빌딩과 ‘사후세계’을 상징하는 ‘밤’의 모습을 각종 네온사인으로 빛나게 그려냈다. 어린 시절 조르고 졸라서 갔던 놀이동산의 하이라이트 매직 퍼레이드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화려하다.


사후세계가 <코코>처럼 보장된다면, 사람들이 죽음을 많이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는 것에 지나지 않고 현생이 힘들다면 누군가는 삶의 마감을 더 쉽게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 인간은 알 수 없다. 감히 저승길을 건넌 사람이 부활하는 일은, 역사상 예수 말고는 기록된 바가 거의 없으며 그나마 그 길을 건넜다 다시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역시 예수를 믿는 사람과 관련된 간증이 대부분이다.


삶의 끝에 과연 어떤 세계가 존재할까? 나에게 죽음 뒤 세상이란 두려움보다는 항상 궁금함이 앞섰다. 한 번은 토론 모임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는데, 같이 참여하는 멤버 중 한 명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다.’라고 단언하며 나를 당황하게 한 적이 있다. 내 말이 허언인지 스스로 돌아보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궁금’한 세계 일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나에게 물음표처럼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삶의 숙명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다가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죽음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뜻밖의 긍정적인 점이 있다. 삶의 끝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보니 주어진 하루를 좀 더 열심히 살려고 하며 동시에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게으른 부지런쟁이’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키워드 중 양극의 단어는 ‘게으름’과 ‘열정’이 돼 버렸다.



동시에 물욕은 없이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는 삶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상주의자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말한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아마 죽음을 대하는 나의 가치관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되짚는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귀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보다 가족과 보내는 단 10분이 더 소중한 이유이며, 열심히 살다가도 잠시 멈추며 하늘을 바라보거나 소파 위에서 하루 종일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것도 일종의 유희이자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미겔은 사후세계를 다녀온 후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동시의 자신의 꿈을 펼친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을 억누르며 살았던 전과 달리 어떤 것이 용기 있는 삶인지 그 엄청난 여정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벗어나기 쉬운 내 옆의 사람들, 가족이다. 삶에서는 때론 급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가족, 내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던 꿈, 그리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삶을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건강. 이 것들을 앞으로 더 잘 돌보며 죽음의 세계를 담대히 마주 할 준비를 해야겠다. 후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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