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등한 소울을 가진 우리인데,
영화 <소울> 에세이
이토록 평등한 소울을 가진 우리인데,
영화 <소울>을 보고 극장 밖을 나섰던 그때 그 감정을 잊지 못한다. 영화 속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떨어지는 단풍 씨앗을 손으로 잡아내며 바라보는 22번의 눈빛과 그 감정. 영화 전체의 느낌을 관통하는 감정을 오롯이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자 삶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멋진 장면이다. 때는 겨울이었고, 극장을 나와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으려 건너는 신호등 위에서 오랜만에 뺨으로 느껴지는 찬 바람이 기분이 좋았다.
영화 전체적으로 내포하는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내용이 많은 관객의 울림 포인트가 되었지만, 그 시기를 기점으로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두 번째 영화를 관람했을 때,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점과 선으로 표현된 비교적 덜 복잡한 피카소 그림 같은 제리와 테리와 다른 수많은 베이비 소울은 다들 비슷한 형태이다. 그리고 그들의 멘토인 일생을 훌륭하게 살다 사후 세계로 가기 전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성인 소울들 모습 역시 인상적이다.
얼굴은 생전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육체에서 빠져나온 그들의 모습은 색이 거의 없이 푸르게 표현된다. 심지어 주인공 ‘조’ 역시 박사로 오해받지만, 흑인과 백인이라는 전혀 다른 피부색을 가진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구별하기 힘들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모습은 동일했다. 피부색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차별했던 삶이 아닌 빠져나온 영혼들은 정확하게 평등했다. 영화를 두 번째 봤을 때, 처음 볼 때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이 영화가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디즈니 픽사에서 유색인종을 주인공으로 내 세운 영화 중 이 영화 <소울>은 두 번째 영화라고 한다. 특히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서는 최초의 영화이다. 제작진의 의도가 어쨌든지 그런 의미로 보았을 때, 맑은 영혼에 경중이 없음은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육신을 빠져나온 영혼은 모두 평등함에도 불구하고, 그 소울을 감싸는 껍데기로 우리는 서로를 재단하고 평가하며 혐오한다. 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오히려 영화 속에서 차별되는 혼들의 구분은 탐욕이다. 예술의 접점에서 영혼이 빠져나왔을 때, 그들은 생사를 넘 너드는 경계에서 베이비 소울과 죽은 영혼을 다 만날 수 있다. 이 영혼들이 무엇인가 탐하기 시작할 때 영혼의 모습은 사악하게 바뀐다. 눈빛은 무엇인가 갈구하듯 희번덕이며, 탐욕이 커질수록 몸은 더 괴물처럼 바뀌고, 집착적인 목표를 향한 탐욕의 말만 구시렁대며 황야의 사막을 끊임없이 떠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영화에서 보여주는 생전 세계에서 모든 사람들의 소울은 동일하다. 맑고 열정적이며, 순수하고 아기 같다. 이들이 인간이 되기 위해 지구로 뛰어들며 어느 곳에 떨어질지 모르지만, 소울을 감싸는 껍데기는 랜덤으로 정해진다. 영화는 말한다. 어디로 떨어지든, 그전에 우리 모두는 평등했음을. 그리고 또 말한다. 그 소울을 더럽히는 것은 자신 안에 숨어 있는 탐욕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맑은 영혼으로 갈 수 있는 능력과 탐욕의 경계는 한 끗 차이이기에,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경계하며 살아야 되는지를.
내 앞에 있는 삶을 되돌아보며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영화 <소울>은 처음 생각했던 것 이상의 깨달음을 주었다. 내 마음속 혐오는 없는지, 또 무엇인가 집착적으로 가지려는 탐욕은 없는지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