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거기 누구 없어요?
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양쪽에 이어폰을 낀 채 혼자 걷고 대중교통을 타고 혼자 밥을 먹는 주인공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혼자 살지만 적적한 느낌이 싫어서인지 겁이 많아서인지 티비는 끄지 않는다. 옆집에 누가 살든 관심도 없고, 괜히 말 거는 그는 그저 짜증 나는 대상이다. 표정 없는 삶이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몸서리치게 외로울 때가 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1인 가구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낯설지 않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영화다. 트와이스 정연의 언니로 알려진 배우 공승연의 원톱 주연인 영화로 2020년 벡델 테스트에도 통과한 영화이기도 하다. 일을 하다 머리가 아프면 쉬는 겸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데, 그럴 땐 긴 러닝타임의 영화보다 1시간 반 이내의 짧은 영화를, 영어나 타국어보다는 한국 영화를 선호한다.
넷플릭스에 새로 업로드된 한국 작품에서 얼마 전 친구가 재밌게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흡입력이 미친 듯이 강하거나 자극적인 것 하나 없이 한 시간 사십분 남짓 한 시간 동안 내 시선을 끈 이유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외롭지만 외롭지 않고, 함께하고 싶지만 혼자가 편하고, 의지하고 싶지만 귀찮고. 이런 모순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결혼을 해서 아이가 둘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취미생활을 혼자 하는 것을 즐긴다. 영화도 혼자 보고, 여행도 혼자 다니며, 근사한 곳에 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것도 내 숨은 취미 중 하나다. 그런데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드니 주인공인 진아처럼 나 역시 혼자 무엇인가 하는 걸 좋아할 뿐이지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여섯 식구인 대 가족 사이에서 북적북적 자라다가, 잠시 독립한 일 년은 친구와 함께, 그 후에는 언니와 함께 살다 결혼했다. 그러니까, 결국 나 혼자 살 수 있던 시간은 내 인생에 없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 이런 합리적인 의심은 진아와 수진의 애매한 관계를 엿보며 확실해졌다. 최근 힘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 나 사람 없이 못 사는구나. 나도 외로움이라는 걸 타는구나. 이제야 느껴졌다.
옆집 남자의 자살과 함께 삶의 변곡점이 시작된 진아에게 성가시게 프로폴리스를 뿌리라며 들러붙는 신입사원 수진.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서 외롭고, 진아와 친해지고 싶다고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는다. 따뜻하고 웃을 줄 알며 아무리 일이라 할지라도 화가 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 가식적으로 굴지 않는다. 여러모로 진아와는 반대의 인물인 수진을 바라보며 점점 마음의 변화가 생긴다.
정당한 이유 없이 신뢰가 깨져 버린 아버지와의 관계는 수진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조금씩 치유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 다가갈 수 없고, 그러길 원하지도 않는다. 진아와 수진도 그렇게 이별했고, 아버지와 진아도 그랬다. ‘아버지하고 나하고 딱 이렇게 지내요.’ 아마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도 선을 긋게 되는 이유 그런 면을 진아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서 보여 준 것이 아닐까?
가끔가다 전화가 와서 타임머신을 찾는 엉뚱한 고객에게 수진이 처음으로 물었다. 언제로 가고 싶느냐고. 고객은 순진하게 말한다. 다들 얼싸안고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했던 2002년으로 가고 싶다고. 지금도 추억 팔이 할 때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배경인 2002년 월드컵. 우리 마음속엔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이기에 그저 그리워만 하나보다.
진아의 옆집에 새로 이사 온 다리 다친 청년. 그런 청년이 많아져야 이 사회가 조금씩 서로를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홀로 외롭게 죽어가던 청년의 혼은 진아에게 묻는다. '인사라도 한 번 해주지.' 차마 용기 있게 꺼낼 수 없던 말. 죽기 직전까지 그는 소리 없이 외쳤을지 모른다.
'거기 누구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