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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보름 Sep 24. 2021

왜 입사하지 않았냐고요?

[프리랜서맘 생존일기] (1) 결혼 적령기와 입사 준비


때는 2014년, 28살의 여성.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그때 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때는 아쉽게도 상황은 이러했다. 서비스직을 관두고 무작정 강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미래에 대한 어떤 계획도 진로에 대한 누군가의 조언도 없이 상사의 교양 없는 폭력에 홧김에 사표를 던졌다. (이래나 저래나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다.) 그 당시에도 20대였던 나는 당연히 금방 취업이 될 줄 알았고, 커리어에 대한 준비는 1도 없이 그저 '잘 될' 무모한 마인드로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듣기로는 CS강사가 되려면 CS강사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퇴사 전에 국가 공인 자격증인 CS리더스를 따뒀다. 그땐 자격증이 단시 하나의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는 걸 왜 몰랐을까? 두둑했던 퇴직금은 그동안 놀지 못한 마음을 보상하듯 여행과 쾌락을 일삼으며 얇아져갔다. 입사와 동시에 카드회사와 노예계약을 한 건지 월급을 그대로 카드값으로 메울 정도로 급여와 경제 개념이 전혀 없던 나의 어두운 미래가 시작되었다. 희미한 한줄기 빛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내일 배움 카드였다. 


유레카를 외치며 당장 카드를 발급받고 간단한 상담 후에 100만 원이 넘는 CS아카데미 강사 수료 과정을 밟았다. 그 당시 나를 가르치던 강사들은 꿀 같은 말과 희망적인 조언으로 당연히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을 주었다. 뭘 배웠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백만 원의 금액만큼 커리어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사내강사로 들어가거나 바로 프리랜서 강사가 되거나. 


두 선택지는 각각의 장단이 있었다. 사내강사는 월급쟁이이기 때문에 안정적이며, 초보 강사가 일을 배우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과 프리랜서 강사는 시간이 자유로운 반면에 고용과 급여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기본적인 옵션이었지만, 당시 나에게 선택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오는 기회를 잡아야 할 우연의 기회 정도에 불과했다. 고민이 되었지만, 일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사내 강사라는 옵션에 기웃기웃했다. 


사람인, 잡코리아, 인크루트 등 당시 내놓으라 하는 취업 사이트는 쥐 잡듯 뒤졌다. 스타트업 회사의 채용공고만 올라오는 로켓펀치도 뒤져서 나와 동갑내기 CEO가 운영하는 강사 플랫폼 회사에 지원하며 호기롭게 면접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서류를 넣고 시강을 하며 합격을 고대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불합격'이었다. 그중 최종면접을 보게 된 몇몇 회사는 무례한 질문도 서슴없이 하곤 했다. 이를테면,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아이는 낳을 계획인지 등등.


지금도 기억이 나는 한 중소기업 교육강사 면접 자리에서는 대학교 은사님과 친하다는 말에 '교수님과 사귀냐'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은 경험도 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 하긴 힘들지만 일련의 실패와 반복되는 납득할 수 없던 경험은 나를 더욱 좌절시켰다. 결국 나는 포기했다. 이렇게까지 취업을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 내 능력 부족이 100% 였을지라도, 당시를 떠올리면 나는 내 환경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내가 결혼 적령기라 기업들이 기피하는구나. 그러니까 자꾸만 몇 살에 결혼할 거냐고 물어보는 거 아니야? 나를 둘러싸고 있던 큰 원은 순간 한 발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고, 원은 점점 더 나를 조여가면서 옭아맸다. '나는 못 해. 할 수 없어. 그냥 프리랜서 강사로 시작하자.' 스스로 안전지대를 좁힌 장본인은 나다. 능력이 없던 장본인도 나다. 하지만 여전히 내 귀를 떠돌며 규정하던 수많은 단어들은 가스 라이팅이 되어 나를 붙잡았다.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되었다. 사내강사 출신이 아닌 내가 프리랜서가 되었다는 건, 내 이력서는 텅텅 비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연히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초심으로 돌아갔다. 정규직이 아닌 고용형태는 그보다 좀 더 자유로우니 결혼을 하든, 아이를 낳든 상관없는 거니까 일단 파트너 강사를 지원하자 생각했다. 똑같이 면접을 보고 시강을 했고, 운이 좋게 대학생들을 교육하는 한 업체와 파트너 강사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프리랜서 강사 인생이 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사내 강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서비스직을 하면서 돌아 돌아 결혼 적령기에 회사 문을 어설프게 두드리지 않았을 텐데. 커리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역량을 쌓고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면접관들의 불쾌한 질문이 복선이 된 것처럼 나는 그다음 해인 2015년 결혼하게 되었다. 그리고 완전히 사내강사로 취업할 생각을 접었다. 그냥 이렇게 시작하자.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 나의 우당탕탕 프리랜서 생활은 이렇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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