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에나
주인공 재복은 밥을 잘 하고, 밥을 잘 챙겨 먹는 사람이다. 주변 동료들의 밥을 챙기고, 자식들 밥을 챙기고, 자신의 밥을 잘 챙겨서 먹는다. 하지만 밥은 어쩌면 재복이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회사에서는 부당 해고를 당해 농성에 참여 중이고, 집에서는 두 딸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기 어려워 외면받기도 한다. 친구들은 재복에게 빌려준 돈을 아직 받지 못했고, 더 이상 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은 누릴 수 있는 것이 적어진다는 것과 같다. 당장 큰 딸은 대학 예치금을 내야 하고, 작은 딸은 추운 겨울 따뜻하게 몸을 보호해 줄 점퍼가 사고 싶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넉넉하지 못한 아이들은 스스로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한다.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아빠에게 시위라도 하듯 두 딸은 인스턴트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시위장으로 돌아가는 재복을 말리는 딸들에게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이라는 말을 남기고, 재복은 다시 시위장으로 돌아간다.
부모의 역할과 해고노동자의 역할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을까? 아쉽게도 한 부모 가정에서 재복의 부재는 보호자의 부재와도 같다. 보호자가 부재인 사춘기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성장과정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변화들을 아이들은 홀로 감당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볼 때 재복의 딸들이 안타깝게 보이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해고노동자의 삶이라는 영화의 큰 틀이 이질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휴가 중인 재복의 삶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보통 사람의 삶이었다. 재복이라는 사람의 삶이 세련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진심으로 살아간다. 자기가 속한 곳, 자신의 역할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는 없지만 자기에게 제공된 삶에 있어서는 진심이다. 개인의 이득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세상 속에서 재복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 살아간다. 재복이 끝까지 지키고 깊어하는 모두의 이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올바른 제도인지, 사회적 정의인지, 금전적 보상인지, 하다 보니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온 것 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느껴졌다. 부모의 역할에서는 조금 부족했을지 몰라도 재복은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언젠가 길거리를 지나다 농성 중인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까? 수많은 재복이 있었기에 지금 세대들은 그때보다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지금도 추운 날씨에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의 노력과 시간이 꼭 어떠한 가치로든 되돌아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