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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휴가] 공허한 외침을 메울 단단한 연대

by. 화전

by 달달보름

이란희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휴가”는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이 영화를 본다면 마음에 무직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휴가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 쉼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 또 다른 이에겐 즐거움과 행복감을 주는 시간 일수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누군가에겐 그게 휴가라면.. 그는 밖에서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내길래 집으로 돌아가는 게 휴가일까?

영화“휴가” 그들이(농성 노동자) 보낸 고된 시간을 영화는 담담히 화면에 담는다.

정리해고 5년 차 천막농성 1812일째.

오늘 대법원에서 선인 가구의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는 최종 판결로 패소.

판결의 사유는 정리해고 미래 경영상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해고라면 정당하다.

20년 이상 회사에 다녔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전원 해고되더라도 그것이 미래의 닥친 경영상의 위기가 당장 근로자들에게 닥칠 위기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을 충족하기 위한 일할 권리를 한순간에 박탈하는 것은 한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법원은 그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무력감과 패배감을 준다.

지칠 때로 지친 재복을 열흘간의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가지만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싱크대는 막혀서 온갖 오물이 뒤섞여 있고, 한겨울인데 집엔 선풍기가 아직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냉장고엔 먹을게 하나도 없다. 쌀쌀맞게 대하는 딸들 앞에서 재복은 그저 미안함에 아무 말이 못 한다. 대학에 입학한 큰딸은 예치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둘째 딸에게는 겨울 추위를 막아줄 패딩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복은 그 무엇도 해줄 수 없기에 무력감 든다.

관객들은 재복의 모습이 못마땅 할수 있다. 이제 기껏 중고등학생인 두 딸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닌지, 저렇게 한다고 과연 세상이 변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회의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응원하지만,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어서 그 힘듦을 나와 나의 가족들이 견뎌내야 한다면 그건 싫다.

딸들의 만류에도 또다시 농성장으로 향하는 그를 보면 야속함을 느꼈을 두 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일할 권리를 박탈한 회사를 상대로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했을 때 사회가 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이다.

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이 있는 자들보다 더 크다면 그건 분명 문제가 있다.

친구 우진의 제안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재복은 그곳에서도 노동자를 소모품을 대하는 세상을 또 만난다. 그 모진 세상은 친구 우진의 태도였고, 재복뿐 만 아니라 그곳에 일하던 준영과 새로 일하러 온 어린 학생에게도 똑같다. 재복은 함께 일하게 된 준영에게 자신의 밥을 나누면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고, 갑자기 사고로 다친 준영에게 회사에서 치료비를 받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는 그는 준영이 산재처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며 도와주고자 한다.

준영은 회사로부터 해고당할까 두렵고, 소송까지 갈수 있다는 말에 겁을 느낀다.

그게 법대로 되냐? 아저씨는 그래서 잘 됐냐?는 준영의 물음은 재복도 스스로에게 하는 의문이였을지도 모른다. 재복은 준영에 말에 아무런 대꾸를 못한채 그 집을 나온다.

관객은 충분히 재복이 괜찮은 사람임을 화면 곳곳에서 느끼게 된다.

그가 만드는 음식속에서, 재복의 가방에 매달려있는 노란 리본에서, 안 보이는 데는 대충 하라고 말하는 친구에 말에도 의자를 꼼꼼하게 칠하는 그의 태도에서... 내일이면 나오지 않을 작업장의 도구들을 하나하나 제자리로 옮겨두는 그의 모습에서...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지금 당장의 편함보다는 진실한 태도로 삶을 대하고자 하는 우직함이 엿보인다.

비록 지금 힘들지라도 다음을 위해 그 힘듦을 묵묵히 견디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재복의 일상을 담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마음은 농성장에 남아있던 영석이 형에게 가있었다. 이들이 휴가를 가고자 했을 때 그래도 농성장을 지킬 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노조위원회 중 유일한 간부인 영석이 형이 자진해서 이곳에 남기로 한다.

그는 왜 그곳에 홀로 남았을까? 간부여서? 간부가 된 이유도 단순히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이유가 전부인데? 간부라고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명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복이 농성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홀로 고공시위까지 하고 있다. 고공시위가 얼마나 많이 건강을 해치게 하는지 알지만 또 그는 그곳으로 향한다.

영석이 형이 힘들때 재복의 소시지 반찬이 힘을 나게 했던 것처럼 농성노동자들간의 단단한 연대가 그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끝날때 까지 끝나게 아니므로, 아직 하나도 해결된게 없는 상황에서 마침표를 찍을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외침이 공허해 지지않기 위해서 단단한 연대를 우리가 함께 나눠야 하지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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