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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 휴가] 아빠도 가기 싫은데, 아버지니까 가야해

by. 태연

by 달달보름


아빠도 가기 싫은데, 아버지니까 가야해








휴가


[명사] 직장ㆍ학교ㆍ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






‘휴가’를 검색하니 국어사전에 위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국어사전에서 명시하듯 휴가는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이다.



영화 <휴가>는 정리해고무효소송에서 패소한 5년 차 해고 노동자 재복이 열흘간 집에 내려가 휴가를 보내는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이란희 감독이 실화를 토대로 만들었다.


그동안 챙기지 못한 두 딸과 집안 살림을 챙기고 대학 예치금과 패딩점퍼를 갖고 싶어 하는 딸들 때문에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돈 버는 재미와 가족들과의 일상을 담아낸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재복에게는 ‘휴가’인 것이다.


농성하는 일에도 휴가가 있다니! 라고 생각하며 제목에서처럼 모처럼 만의 휴가에서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쉬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제목과 달리 영화 <휴가>에서 재복은 쉬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더 바쁘다.


<휴가>는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 그리고 나의 삶 속에서 진짜 중요한 가치와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 영화이다.


배경음악, 불필요한 대사 등이 없어 집중도가 높았고 여러모로 좋았던 점이 많았던 영화인데 키워드로 풀어볼까 한다.



#착한농성자


투쟁, 농성, 시위


뉴스에서 보던 낯선 단어였다. 뉴스에서 보이는 해고노동자들은 안쓰럽고 안타까웠지만 때로는 너무 극단적이고, 가정을 보살피지 않고, 회사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본인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자들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농성이 길어지며 점점 줄어드는 시위 인원을 보면 ‘저 봐 저들끼리도 서로 의지하지 못하고 연대하지 못하잖아’라며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는 투쟁. 농성, 시위의 모습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끊임 없이 일하는 재복의 손을 보여준다. 재복은 잠깐 하는 일에도 대충이 없고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며 대충 끼니를 때우지 않는다. 자신의 집과 준영이의 고장 난 집안 살림을 고치는 투박하지만 꼼꼼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그의 손을 보며 해고당하기 전에 그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일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노동하던 사람이 노동하지 못하는 상태로 오랜 시간 지난 뒤 다시 노동의 ‘맛’을 느꼈을 때 얼마나 즐거웠을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딸의 예치금을 쥐여주고, 갖고 싶어 하던 패딩점퍼를 사주었을 때 아빠로서 얼마나 보람을 느꼈을까. 재복은 영화를 보기 전 해고노동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했던 나를 너무 부끄럽게 하는 인물이었다.



남들에겐 일하는 게 평범한 일상이고, 휴가는 기다려지는 행복인데 재복은 일을 하는 평범한 일상을 휴가처럼 기다리는, 가정을 생각하고 동료를 지키는 ‘착한 농성자’이자 우리의 이웃이었던 것이다.



#밥



재복은 <휴가>에서 계속 밥을 챙긴다. 영화 초반 동료들의 밥을 챙기고, 집으로 휴가를 가서도 딸들의 밥을 챙기며,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만난 준영의 밥도 챙긴다.


초반 동료들과는 밥을 먹는 장면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딸들은 5년간 자리를 비웠던 아빠와 겸상하지 않고 라면을 먹는다. 준영도 점심시간이 되면 홀로 나가버려 재복 혼자 도시락을 먹는다.


혼자 밥을 먹던 재복이 후반 부 일을 하고서는 딸들과 겸상을 하고, 딸들은 재복에게 서울에 가지 말라고 한다. 준영과 밥을 함께 먹으며 동료애가 생기고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준영을 도와준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 ‘일’을 하지 못하는 재복에게서 ‘일’이란 가족들과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평범한 일상이며, 당연히 누려야 할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것이다. 딸들의 말대로 집에 남아 함께 밥을 먹고 싶지만, 재복은 농성장에 돌아가 고공 시위를 하는 동료에게 소시지를 올려준다. 가지 말라는 딸들을 뒤로하고 다시 농성장에 돌아간 것은 가족들과 다시 함께 평범하게 밥을 먹기 위해 서 일 것이다.



#인간의존엄성


어린 두 딸이 가지 말라고 소리쳐도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큰일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는 다친 준영에게 기어이 산업재해신고서를 내밀고야 마는 재복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고된 농성을 함께 의지하며 버텨온 동료들과 연대도 끊어내기 어려웠을 테지만 나의 딸, 아들은 나 같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다시 농성장으로 갔을 것이다.




영화<휴가>를 보며 사실 해고노동자가 아니어도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도 연장근무 수당, 연차, 출산휴가 등등.. 끊임없이 투쟁은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다. 인간이 가져야 할 신념과 가치관은 무엇인지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많은 투쟁과 해고노동자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지 말라는 딸에게 아마 재복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딸아 아빠도 가기 싫은데, 아버지니까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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