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꼬달
"아티제, 무동력 삶을 벗어나"
우리 삶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의 대답, 선악이 분리된 옳은 대답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이지요. 누군가는 부모가, 누군가는 자식이, 누군가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누군가는 더 좋은 삶에 대한 욕구로 움직일 수 있겠지요. 현재를 살며 미래를 탄생시키는 우리에게 다채로운 질문을 던지는 <허니랜드>를 보며 들었던 생각입니다.
<허니랜드>는 마케도니아 외곽의 사막 마을, 양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아티제라는 여성에게 일어나는 3년 간의 일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아티제는 허물어진 마을을 지키며 꿀벌들을 관리하고, 질 좋은 꿀을 팔아 늙은 어머니를 부양합니다. 가족은 어머니와 아티제, 단 둘. 나머지 가족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쇠약해진 상태입니다. 단조로운 일상, 후세인의 가족(무려 7남매를 키우는 9명의 대가족!)이 아티제의 사막 마을에 정착합니다. 50여마리의 소와 함께요! 후세인은 자식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평범한 아버지입니다. 아티제는 후세인의 가족과 금세 어울리며 이웃의 정을 나눕니다. 아이들을 아끼며 축제에도 함께 가죠. 그러나 그 친밀감은 곧 긴장감으로 변합니다. 후세인이 아티제가 생산한 질 좋은 꿀이 좋은 값을 받는다는 것을 알자, 이를 벤치마킹해 양봉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양봉은 계절, 주변의 환경, 이웃 꿀벌들의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민감한 작업이기에 아티제는 후세인에게 내내 무리하지 말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후세인은 주변 자원들을 탈탈 털어 많은 양의 꿀을 한 철에 생산하고, 이내 마을을 떠납니다. 처음 왔을 때처럼 정처 없이. 아티제의 벌들은 모두 죽어버린 후입니다.
카메라는 재래식 양봉업자인 아티제가 이러한 일 속에서 겪는 감정들을 고요하게 담아냅니다. 이웃을 조심스럽게 경계하면서도 환대하던 아티제는 곧 초조함, 분노를 겪게 돼요. 꿀벌들이 모두 죽자 무력감에 빠지고, 봉양하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텅 빈 사막마을에서 꿀벌들도 없이 혼자 남겨진 아티제. 그럼에도, 아티제는 평온하게 웃습니다.
<허니랜드>에서는 후세인과 아티제가 삶을, 자연을,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유수의 영화제들에서 파괴적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담은 영화라 평가 받는 이유입니다. 다른 생물종의 절멸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마지막 자원까지 끌어다 쓰고, 파괴된 마을을 떠나는 후세인. 마을을 지키며 무동력 삶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아티제. 감독들이 의도한 영화의 가장 최우선 메시지는 정말로 그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삶의 모든 동력을 잃고,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무동력 상태에서도 참 평온해보이는 아티제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지만요... 저는 현대 문명인으로서, 그 모습이 어쩐지 현실감 없는 수채화처럼 느껴집니다. 어머니(가족)도, 꿀벌(직업)도 사라진 후 아티제는 무엇을 삶의 동력으로 살아갈까요? 오히려 후세인이 7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영화 내내 조급해하며 쉬지 않는 모습이 낯설지 않아요. 세상의 이율배반을 견디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최후의 보루, 원동력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달씨네클럽 구성원이 대부분 가임기 여성들이기 때문에, 토론에서도 그런 대화들을 나누었습니다. 자식(가족)에 대해 각자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나누었지요. 여러 멤버들이 자식이라는 존재가 더 좋은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티제가 자식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더 활발하게 관계 맺으며 인생 후반부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연(다른 생물종)과 공생하는 아티제가 인간종으로서도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아티제의 상황은 사실 후세인이 아니더라도 예견된 일인지도 몰라요. 전세계 꿀벌들이 사라지고 기후가 붕괴되고 사막은 더 넓어지고 있으니까요. 기왕 이렇게 사단이 벌어지고 비극이 앞당겨진 이상, 아티제가 다른 삶을 사는 방향으로 전환했으면 하네요. 도시에서도 아티제를 환대해줄 친절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살아 가, 아티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