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름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티제는 작은 양봉을 하면서 소박하게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꿀을 따면서도 반은 내 것, 반은 네 것이라 말하며 자연을 섬기고
존중할 줄 아는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속가능한 경영'을 보여주는 듯 하다.
4시간을 걸어 도착한 시장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꿀을 내다 팔며 번 돈으로
어머니를 부양하는 아티제는,
염색약을 고르며 꾸미고 싶어하는 여느 여성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 그의 옆집에 어느 날 줄줄이 딸린 자식을 가진 후세인 가족이 나타난다.
소를 키우면서 돈을 버는 후세인은
어느 날 아티제에게 양봉에 대한 정보를 묻고,
아티제의 조언과 다르게 마음대로 양봉을 무리하게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꿀을 모조리 거두어 버리면 남은 꿀이 없어서
아티제의 벌도 공격할 거라는 충고도 무시한 채
눈 앞에 단기적인 이익을 쫓던 후세인 가족.
후세인이 키우던 벌은 아티제의 꿀벌을 공격한다.
이후에 원인 모를 역병으로 후세인이 키우던 소들까지 떼죽음을 당한다.
결국 후세인 가족은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한 채
마을을 떠난다.
남아있는 아티제는 허망하기만 하다.
감독은 3년에 걸쳐 아티제(세계에 유일한 여성 양봉업자)를 관찰하며 촬영했다.
그 사이에 후세인 가족이 이사오면서 드라마와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어찌보면 선과 악의 구도 같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후세인 가족이 우리와 다를게 뭐가 있나 싶다.
그런 관점에서 에세이를 완성했다.
전체적으로 화면에 비추는 배경이 상당히 아름답다.
작은 화면으로 보기엔 아까운 영화다.
따뜻한 노을이 자주 비춰지고
초록 두건과 노란 옷을 입은 아티제의 옷도 미장센을 더 돋보이게 한다.
인간아, 꿀 빨고 사니까 좋냐?
남편과 결혼하고 울진에 처음 가봤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파란 바다가 나를 끌어 당기는 것 같은 신비하고 푸른 색의 동해 바다와, 파도를 가르는 제각각 깨져버린 바위를 보는 것은 마치 명상과 같다. 파도 소리가 내 마음을 가만 가만 만져준다. 그 뿐이 아니다. 울진은 산도 있고, 계곡도 있다. 아이들과 때가 되면 민물고기를 보러 가고, 바다가 지겨울 땐 차디찬 얼음 곡 계곡 물에 발을 담구러 가기도 했다.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울진이다. 시댁이라 거부감이 있을 법도 한데, 제 2의 친정같은 고향이 됐다.
그런 울진이 활활 타고 있다. 길거리 담뱃불로 추정되는 불씨 하나가 울진의 산을 집어 삼켰고 삼척 동해 묵호까지 그 불길이 타고 넘어가 여전히 진화중이다. 황망하게 타 버린 산등성이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시리다. 담뱃불을 떨어뜨린 누군가가 미웠다. 아니 저주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마더 네이처에게 인격이란 게 있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아마 기생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악질인 기생충.
영화 <허니랜드>는 욕심의 끝판왕인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준다. 3년에 걸쳐 찍어냈다는 이 영화는 카메라를 당겨 멀리서 그들을 관찰한다. 자연을 돌보는 아티제와 어찌 보면 기생충과 같은 후세인 가족의 극명한 대비가 영화의 몰입을 높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다. 인간은 대자연에서 기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아티제 처럼 공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악의 끝판왕처럼 보이는 후세인을 깔라면 한도 끝도 없이 깔 순 있겠다. 애는 왜 저렇게 많이 낳았는지. 아이들의 노동은 왜 착취하는지. 그건 학대는 아닌지. 왜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지 멋대로 하는지. 왜 남탓을 하는지. 자기 잘못은 없는지? 삼년을 촬영해서 그런지 인간이 살아가면서 보여줄 수 있는 나쁘고 무식한 모습을 요리 조리 편집하며 후세인이라는 못된 인간으로 탄생시켰다.
삼년을 지켜 봤으면 분명 좋은 면도 있었을텐데, 그걸 자르고 붙인다면 나도 그런 사람으로 분명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아티제와 후세인의 반대되는 입장에서 나는 너무나 후세인의 축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후세인은 내 거울이 아닌가 반성했다. 무엇보다 환경을 대하는 그의 태도야 말로 거울이었다. 알고도 모른 척 하며 행동하지 않거나, 나 하나 바꾼다고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기업을 탓한다. 당장 편한 것을 쫓아 일회용품을 쓰고, 배달 음식을 죄책감 없이 시켜먹는다. 이런 내가 담뱃불 던진 그 사람을 욕할 자격이나 있을까?
내가 선택 할 행동의 결과는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활활 타 버린 울진의 산을 바라보며 뒤 늦게 마음이 시린다고 징징대도 소용 없다. 그런 경험들을 선명하게 마음 속에 저장 해 두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시선을 갖는 것. 그것이 어느덧 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나는 아티제가 아니다. 나는 후세인에 가깝다. 나는 아티제가 되는 것도 할 수 없을 뿐더러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후세인의 모습으로부터 아티제로 조금씩 가까워질 순 있기에, 후세인을 통해 나를 한 번 더 들여다 본다. 그러니까 꿀 빨고 사는 거 그만하자, 보름아. 조금 불편해도 불 타 버린 울진의 산을 생각하자.
이 영화는 이런 사람에게 추천해요.
1. 청소년에게 지속가능성에 대해 교육해야 할 때
2. 자본주의와 공정무역이 궁금한 사람
3. 특별한 나라의 영화를 보고 싶은 분
4. 편집이 잘 되어 완성 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싶은 분
달씨네클럽: 영화 보고 말하고 쓰는 온라인 여성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