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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케미걸 Mar 18. 2024

마음이 스윗홈이라면



홍콩 빅토리아 피크로 가는 트램 안. 한국에서 온 투어 그룹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머나, 신기해라. 이 높은 산꼭대기에 아파트를 이렇게 많이 지어놓다니!”

“저 집 좀 보세요. 수영장에다 바베큐 그릴까지 집에 다 있으니 일부러 호캉스 가서 돈 쓸 일이 없겠어요.”

“그래서 돈이 돈을 번다고 하잖아요.”

“어떤 집은 월세가 억대라더니 아예 집이 아니라 럭셔리 호텔이네요 호텔.”


“아휴 참. 영화 기생충 다들 못 보셨어요? 집만 번드르하면 뭐 하게요. 마음이 지옥이면 죄다 소용없는데.” 


누군가 불쑥 던진 한마디에 일행의 시선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정적만 남았습니다. 가이드 옆자리에 천연덕스레 앉아 현지인인 척 대화를 귀담아듣던 저도 일리 있는 모국어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집과 마음은 닮았습니다. 누구나 편하고 아늑한 집을 선호하듯 우리는 안정된 마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고르고 제대로 호흡하는 법을 배웁니다. 삶의 파도에 흔들리는 나를 다잡기 위해 잠시 한적한 데로 물러나 침묵하는 시간을 갖고 돌아옵니다. 달리는 지하철에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분주히 오가는 일상에도 전신의 감각을 온전히 느끼며 평온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마음이 지옥이면 죄다 소용없는데.”


귓전을 스친 관광객의 코멘트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이는 부유했고 어떤 이는 유명했고 어떤 이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화려한 집과 평판 좋은 인맥과 빛나는 능력조차 그들을 이승에 더 붙들어놓지 못 했습니다. 그 무엇도 소용이 없는 어두운 마음이 얼마나 위태로운 벼랑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몇 달 전 극단적 선택으로 떠난 지인의 미소도 창공 너머 어른거렸습니다. 만만찮은 세상을 헤쳐가는 나에게 씩씩한 치어리더가 되어 살아갈 결심. 믿고 의지할 탄탄한 내면을 키워나갈 배움과 훈련. 타인에게 기대는 헛헛한 가슴을 용감한 실천으로 극복하고 일어서기. 이제 다 소용없다는 절망의 벽에 탁트인 창을 내고 빛을 들이는 몸짓이 푸른 용처럼 날아오를 올해의 미션으로 다가왔습니다.


연말연시는 후련한 마무리와 새출발에 어울리는 시간입니다. 옷장, 선반과 서랍장, 집안 곳곳을 정리하듯 우리 마음에 쌓인 잡동사니도 비워내면 좋겠습니다. 어수선한 잡념과 답이 없이 맴도는 고민과 해묵은 고집도 미련없이 흘려보내고 출발하면 더없이 홀가분하겠지요. 여유로운 마음은 반가운 솔루션과 신선한 터닝포인트를 불러오리라 믿습니다.


살아내는 일이 먹먹해서 망연자실 내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도 마주하게 될 테지요. 그런 나를 두 팔 벌려 안아주는 희망과 위로가 우리 가슴에 함께하는 2024년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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