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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Apr 11. 2016

맨해튼 산책 (1) 열등함이 창조해낸 유토피아

여행일기


이번에도 라과르디아 공항이다. 1층 러기지 클레임으로 내려오자마자 큰 아이가 좋다 나쁘다의 뉘앙스 없이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 oh.... city smell!” 공항청사와 거리 사이가 매우 가깝게 설계가 되어 있다 보니, 버스의 매연과 담배냄새 온갖 냄새들이 섞여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냄새로 도시를 먼저 느낀다. 공항에 내려 셔틀버스로 이동해, 일주일간 우리를 태우고 다닐 차를 랜트한 다음 퀸즈를 벗어나 맨해튼으로 향한다. 랜트한 차는 진주빛 뷰익 라크로스 세단으로 무지 넓은 선루프가 6월의 청명한 대기를 실내에서 환히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 마음이 밝아진다. 퀸즈는 참 오래된 동네구나 생각하며 거리를 빠져나온다. 신선한 공기를 호흡해 볼까 하고 선루프를 열자 아이들은 코를 막으면서 말했다…”아… 시티 냄새가 너무 나..”


Ground Zero에 새로 새워진 OneTower전망대에 올라가 고소공포증에 부들부들 떨면서 찍은 귀한 사진입니다.


신체 여기저기를 보수 유지하는 일이 중요해질 만큼 나이를 먹다 보니, 올 초에는 튼튼한 어금니를 영구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덴티스트로 성업 중이신 남편의 고등학교 선배님께 도움을 받고자 뉴욕행을 택했다. 텍사스에서 해도 될 일을 굳이 뉴욕까지 날아가서 하는 것은, 그곳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렸던 20대와 숨 쉴틈 없이 바빴었던 30대에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던 사람들과의 인연들을 발견하고, 또는 끊어진 듯했던 인연들을 다시 연결하는 가운데 내가 이번 삶의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는지 짚어 볼 수 있는 여행이다. 맨해튼 첫 방문은 큰 아이가 네 살, 작은 아이가 두 살 기저귀를 땐 기념으로 감행했다. 2005년 1월 5일, 프리징 레인이 내리는 새벽 온타리오를 출발해, 열 시간 운전을 해와서 센트럴파크 입구에 위치한 살리스 버리 호텔에 일주일간 묵었었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때이기도 했다. 두 번째 방문은 그다음 해 여름 한국 방문길에 잠시 들러 친구를 만나고 브루클린 퀸즈에 있는 호텔에 이틀을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번의 방문에서 모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유태인들이 모여 살 것으로 여겨지는 퀸즈의 동네를 지나며 마주치게 되는 것은 머리를 땋고 까만 전통복장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서, 곰방대 물고 갓 쓴 하얀 청학동 할아버지가 떠오르며, 그들의 고집과 신념이 느껴져 나는 잠시 큰 숨을 고른다. 유태인들의 고집과 집념과 그 외에 그들을 수식하는 여러 형용사들은 귀에 익고 익지만, 그렇게 많은 유태인들이 백 년 전 영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차림으로 눈앞에 활보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에게 붙어 다닌 형용사들이 새삼 실감이 난다. 또 다른 류의 퀸즈 주민들의 고집스러움은 건물 외벽이나 높은 철교의 사인보드마다 칠해진 그라피티에서 발견된다. 세월의 때가 뭍은 건물들은 죄다 형형색색의 페인트로 악센트 회장을 하고 있다. 종이나 캔버스 위에 편하게 그려도 될 것은 그렇게 한사코 벽 타고 올라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물론 종이와 건물의 벽은 그림을 그리기에 판이한 매체이긴 하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거리 예술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인상은 그림의 내용보다도 행위자의 의지에 더 주의가 간다는 것이다.



롱아일랜드로부터 맨해튼으로 진입하기 위해 브루클린 브리지를 향한다. 다리 진입로에서 그 너덜너덜해진 노면 위에 앉은 세월의 더께를 느끼며 아악 소리가 날 즈음에, 시야에 들어오는 나지막이 펼쳐진 공동묘지…. 망자들의 커뮤니티는 그 땅에 처음 묻혔을 어떤 이민자의 시대로부터 이 지역의 변화를 조용하게 지켜보고 있을 터인데, 다리 위로 강을 건너는 나는 그 땅에 처음 묻혔을 망자의 살아생전의 삶을 상상해 본다. 죽을 고생을 하며 여러 날을 배 타고 대서양을 건너왔겠지 (우리는 비행기 타고 세 시간 만에 왔는데…. 세월이, 기술이 경이롭다). 그들의 첫 몇 해도 무척 고단 했겠지. 퀸즈에서의 삶은 그들에게 만족할 만한 것이었을까... 무슨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을까.. 구체적으로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앞선 세대의 브루클린 주민들의 삶의 모습은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Betty Smith가 쓴 A Tree Grows in Brooklyn에서 읽었던 장면들로 채워본다. 가난한 유럽 이민자들의 100년 전의 삶의 모습과, 꿈을 향해 자라나는 한 소녀의 성장기를 무척 감칠맛 나게 그린 이 소설을 나는 매우 매우 좋아한다.

Photo © Daejin Hwang


브루클린 브리지를 타고 맨해튼 남부 금융 디스트릭트로 들어오며, 시야로 쏟아져 들어오는 마천루들 사이로 보이는 과거와 현대의 조화, 그리고 그 많은 행인들의 행렬에 잠시 눈이 아찔해진다. 이것은 대도시 교외 지역의 느긋하고 지루하리만치 조용한 생활에 젖어있던 지난 세월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던 풍경이다. 도시의 거리는 바이크를 타고 달리고, 거리 음식을 사 먹으며 햇살을 받으며 금요일 오후를 즐기는 행인들로 가득하다. 행인들은 거리의 나무의 수만큼이나 많다. 백수십백 년의 더께가 앉은 워터 스트리트의 거대한 빌딩 숲 사이를 조심조심 운전해 빠져나가는 동안, 그 거리의 백여 년 전의 풍경이 또다시 겹쳐지고, 거리를 바삐 움직이는 현대의 어린 누들스들을 만난다. 맨해튼이 전 세계로부터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이유야 백가지도 더 될 테지만, 이 도시가 나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인간 정신활동의 역사를 총체적이고도 가시적으로 압축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섬은 숨 쉬는 존재의 욕망과 표현 욕구를 압축하여 단층의 횡단면처럼 보여준다. 펄펄 뛰는 욕망들이 압축된 살아있는 단층의 횡단면. 지금은 대중의 뇌리에서 지워진 이름이겠지만, 20세기 말 한반도의 노동자 혁명을 꿈꾸던 시인 박노해의 한 줄 맨해튼 감상기는 정곡을 찌른다. 지구 상의 가장 열등한 것들이 모여, 지구 상에서 가장 뛰어난 것들을 구현해 낸 맨해튼에서 인류의 유토피아를 발견한다던 …... 지당하신 말씀.



Photo © Daejin Hwang

거리의 정원


지평선의 한계를 밀어내며 넓게 펼쳐져 있는 휴스턴의 근교 도시들의 특징은, 새로 개발된 대부분의 동네가 그러하듯이 모든 것이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고, 구획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나지막하다. 고층 건물들이 불러일으키는 교통정체나 복잡함 따위는 없다. 주민들의 일상은 너무나 규칙적이고 규율에 따른 것이어서 예측에서 벗어난 삶이란 좀체 일어나기 어렵다. 주민 대다수가 계획되고 구획된 자연의 일부가 되어 표현 욕구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며 굿 시티즌으로 조용조용히 들 살아가는 듯하다. 흔히들 말하는 서버번의 졸리는 생활인 것이라고나....이에 반해, 거대한 매트로폴리스가 주는 또 다른 매력은, 웅장한 마천루의 숲이 드러내는 위용과 인간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각종 시스템에서 발견되는 인간 사고능력의 결집은 물론, 거리의 구석구석에서 찾아지는 잔잔한 생각의 흔적들 때문이다. 타임스퀘어의 육중하고 압도적인 회색 빌딩 숲이 피로하게만 와 닿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큰 건물들 입구와 사이드 공간에 배치되어 “앉아 쉬었다 가세요.”라고 발길을 잡는 휴식 공간들과 횡렬로 주주 룩 심어져 있는 세련된 모양의 나무들과 그들의 잎사귀, 예쁜 형태와 색깔들 때문이다. 뉴욕의 거리에는 부드러운 하트 모양이나 동그란 모양을 한 잎사귀를 가진 수종이 많이 눈에 띈다. 부드러운 잎을 단 나무를 심기로 맘먹은 조경전문가들의 손길이 고맙다.

집 앞 연못




남부 대도시의 단조로운 서버번에서의 생활을 일 년 만에야 벗어난 우리는 도시를 느끼고 싶어 거리를 걷기로 한다. 메디슨 에비뉴에 주차를 하고 매트로 폴리탄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거리에는 가로수를 둘러싼 조그만 미니 화단들이 어설프게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는 팬지나 베고니아가 색깔 맞춰져 나지막이 심겨있다. 지나가는 강아지들의 오줌을 방지하기 위한 듯이 보이는 투명한 방패막이도 무릎 높이로 쳐져있다. 땅값 비싼 고층 아파트 주민들의, 가든을 향한 갈구가 느껴져 귀엽다. 생각하는 존재인, 잔머리 굴리는 인간의 본성, 새삼 발견하고 반갑다.


꿈꾸어왔던 청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발짝 더 세계의 심장가까이 거처를 옮긴 친구는 맨해튼의 서쪽 끝, 허드슨 강을 바라보는 배터리 팍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친구가 Battery Park City 주민이 된 덕분에, 맨해튼의 녹음과 자연, 그리고 거리의 정원을 감상할 기회가 생겼다. 눈길 닿는 곳마다 싱그러운 초록과 각양각색의 꽃들로 가득 차 있어, 도심 속 이 자연 광장의 아침과 저녁 풍광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번화와 세련 됨의 정도로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마천루로 가득 차고 최신식 주거단지로 들어차 있으며 바다를 마주하고 요트장이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브룩필드 쇼핑센터 전경과 우리가 살던 해운대 바닷가 동네가 겹쳤다. 잠시 고향에 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옛날 큰 아이가 아기였을 때, 집에서 가까운 요트경기장에 자주 놀러 가곤 했었다. 평소엔 한적한 그곳에 가서 남편 운전 연수도 시켜주고 (운전면허 날짜까지 받아놓고 이곳에서 공짜 연수를 해 주었건만, 남편은 끝내 면허를 따지 않고 이민길에 올랐다), 비 오는 날이면 정박해 있는 요트들을 바라보며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듣고 비에 젖는 바다를 바라보곤 했었다.  재미있었는데...




금융가 중심의 거리 위에 펼쳐진 거리의 정원은 인상적인 스케일. 초고층 건물들 앞으로 인도가 운동장처럼 넓게 위치해 있는데, 그 위에 강아지 공원도 있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가든도 있고, 놀이터도 있다. lower manhattan  서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west avenue를 끼고 있는 이 인도와 주요 차도 사이를 꽤 규모가 큰 화단과 가로수 길이 차단하고 있다, 차도와 차도 사이에는 또다시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거대한 장미 정원이 길을 따라 놓여있다. 그러니까 이쪽 편 건물에서 저쪽 편 건물까지 가기 위해서는 강아지 공원을 지나고, 장미 화단을 건너서 5차선의 하행 차선을 건너고, 도로의 중앙에 다다르면 또 장미 정원을 지나고, 5차선의 상행 차선을 건너고 그쪽에 놓인 무릎 높이의 화단과 가로수 사이를 지나야 한다. 하하하 …. 그 거리의 이름이 도로가 시작되는 72번가 맨해튼 북쪽에서는 9A이고 맨해튼 미드타운 쯤에 이르르면 West Side Highway 로 이름이 바뀌는데 이 도로의 또다른 공식 명칭은 양키즈 야구단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였던 Joe DiMaggio 의 이름을 따  Joe DiMaggio Highway로 불린다.  바뀌어 남쪽 끝 배터리 파크에 이른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동네 중 하나일 텐데, 그 비싼 땅의 적지 않은 부분을 이렇게 거리의 정원으로 할애하다니, 맨해튼 남서부, 인간적이다.


허드슨 강변을 따라 달라는 조 디마지오 하이웨이를 타고 가다보면 서울의 한강을 따라 난 강변도로, 올림픽 대로 어디쯤을 달릴 때와 비슷한 감상에 젖곤 한다. 특히 밤늦은 시간에 달리는 택시에 몸을 싣고 강 건너의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차가 달리는 속도만큼 내 뒷편으로 사라지는 도시의 열에 들뜬 분위기와 어우러져 신기하게도 고향에 온 기분에 빠져들곤 했다. 아마도 그때 깨달았던가보다. 맨해튼에 한국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유를..... 도시의 밤.. 어둠이 잠긴 도심 한켠으로 강이 흐르고 네온이 휘황한 밤의 도시가 풍기는 분위기는 서울과 맨하탄이 매우 비슷하다.






그 겨울의 허드슨 강


어느 겨울 다시 찾은 맨하탄에서의 며칠간의 기억. 출근하는 친구를 전철까지 배웅하고 돌아서는 길, ground zero 위에 우뚝 선 one world observatory는 길의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한눈에 들어오는 일관성과 늠름한 위용을 뽐내고 있어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 배터리 팍 공원을 따라가다 허드슨 강변을 바라보며 아침 산책을 하던 아침. 겨울이 빚어내는 모노톤은 도시의 모든 색을 하나로 아우르면서, 부드러운 색과 유선형을 모두 털어버린 나목이 그려내는 앙상한 프랙털을 도드라지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겨울 아침 풍경 속에서 날카로운 바이얼린의 속주와 그에 발맞추어 따라가는 피아노의 이중주가 와락 마음에 들어왔다. 외투의 주머니 속의 전화기에는 결혼 전에 사모은 260장의 시디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문득 이작 펄만과 아쉬키나제가 젊은 시절 호흡을 맞춘  크로이쳐 소나타의 이중주에 손이 갔다. 베에토벤의 이 바이얼린 소나타는 날카로운 아내와 다독이는 남편의 합주가 이룬 부부생활을 보는 듯 하다는 매우 주관적인 감상평을 연발하며 남편이 내게 함께 듣기를 강권하던 곡이었고, 나는 못내 내켜하지 않던 곡이었다.

세상 어느 곳 보다도 분주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맞은 영하의 아침. 사위는 얼어있고, 냉랭히 흐르는 허드슨 강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눈길을 헤치며 걷는 산책길은 바스락거리며 신경을 태워가던 일상의 광폭함과 긴장을 조용히 그리고 아주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신경의 이완과 더불어 그 예리한  악기가 만들어내는 팽팽한 선율마져 갑자기 생겨난 마음의 여백 위에서 편안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또한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냉정한 도시라고 해도, 어느 구석쯤엔 가엔 정신을  고스란히 안정 상태로 되돌려 놓는  자애로운 공간이 하나쯤은 숨어있기도 한 것이다. 태풍의 눈 속에서 들어가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고요함 같은 안정. 눈길을 헤치고 brookfield place까지 걸어가 온갖 화려한 모양의 빵을 구워내는 프랑스식 베이커리에서 건네받았던 커피는 매우 진했고, 그 향기는 오래 기억된다. 친구의 아파트로 되돌아오기까지 40분 남짓 눈 길을 걸었던 산책길. 크로이쳐 소나타가 귓가에 머물기 시작한 영하의 겨울 아침.

친구의 거실은 쨍하고 포근한 복사열로 데워져 있었다.

출근을 완료하고 오피스에 도착한 그녀로부터의 텍스트에,

헛슨씨가 동행하는 산책길은 매우 훌륭했노라 전했다.

헛슨씨가 화해시켜준 크로이쳐 소나타.

                                               © 구름바다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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