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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Apr 09. 2016

기다리는 것이 있는 날의 오후 세시

커피 이야기, 두 번째

기다리는 것이 있는 날의 오후 세시는 특히나 반가운 시간. 스쿨버스도 세시면 골목 어귀에 아이들을 내려놓고, 아침에 정렬했던 긴장을 스르르 풀어놓기 시작하기 시작하는 시간. 세시쯤엔 그저께 주문 넣은 에스프레소 커피의 캡슐이 도착하기로 되어있다. 오십 개를 주문하려다 그나마 큰맘 먹고 주문한 것이 백개를 못 채운 90개. 나는 소심하기도 하여라. 남편은 캡슐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알록달록한 캡슐이 담긴 유리병이 비어져 가는 것을 확인하면 늘 150개 200개씩 주문을 해 주고는 했다. 얼마 전, 커피를 끊어보겠노라 호언하며, 주문을 넣어주겠다는 남편을 만류했던 터였지만, 며칠을 참고 지내다 보니 , 역시 단박에 끊기는 어려워 슬그머니 소리 없이 내 손으로 주문을 했던 것이다.


일찍이 사춘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마셔온 커피라,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 집에 걸어 들어온 커피 만드는 기계만 해도 종류가 다양하다. 원두를 내리는 Bunn 기계며, 혼자 있을 때 마시기 편한 프렌치 프레스, 보글보글 카푸치노를 끓이기 수동 에스프레소 모카 머신이며, 원두가루를 통째로 넣어 푹 고아 먹게 만든 터키식 커피 끓이는 체즈베라고 하는 작은 손잡이 달린 주전자까지 골라 쓸 수 있는 도구가 모두 마련되어 있음에도, 아침 첫 시간 강의가 있는 날은 손가락 까닥해서 라테를 만들어주는 캡슐커피가 꼭 필요한 메뉴였다. 나는 게으르기도 하여라. 실은 아침 식사용 커피이다. 캐러멜 향이 나는 것도 좋고, 과일향이 살짝 나는 것도 좋다. 평일의 느긋한 아침엔 블랙커피 한잔이 식사인 셈이지만, 아침 일찍 강의가 있는 날엔 우유가 듬뿍 들어간 진하고 부드러운 라테가 절실하므로.....


기다리던 것이 도착하여 박스를 오픈하는 순간은, 비록 내가 나를 위하여 주문한 커피 캡슐들이지만,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상자 속에서 꺼낸 알록달록 향기로운 것들로 기분 푸근한 오후 세시. 진한 에스프레소 속에 녹아드는 감사 한 모금.   



                                                      © Yoon Hyunhee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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