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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9. 2017

스바루 포레스터가 불러온 콜로라도 설원의 기억 (1)

그 주말의 긴 오후


NASA 나사 옆에 위치한 자동차 딜러쉽에서 오후를 보내야했던 그 주말의 지루한 긴 시간 동안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젊은 여자가 입은 짙은 스트라이프가 수놓인 린넨 드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100 킬로쯤 남쪽으로 달려 바다가 가까운 그 딜러샵에 도착한 것은 오후 한 시 쯤이었는데, 그곳은 깜짝 놀랄만큼 붐볐고 또 어수선하기도 했다. 지난달에 있었던 허리케인 때 전체 도시에서 많은 자동차가 침수되었고, 그로인해 새차에 대한 수요가 무척 높아진 까닭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옷차림이 눈에 띄었던 것은 화려해서라기 보다는, 린넨 드레스는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의 텍사스에서는 흔히 선택되지 않는 손이 많이 가는 소재이기 때문이었다. 무릎 길이의 약간 빳빳한 느낌이 드는 린넨 드레스는 자연의 느낌을 물씬 풍겨주었을 뿐아니라 그녀의 부드러운 금발과도 무척 잘 어울렸다. 린넨 드레스 아래로는 머리 색깔과 비슷한 색상의 납작한 스트랩 슈즈를 신고 있었는데 스트랩은 발목께에서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머리끝에서 부터 발끝까지 공들여 꾸민 느낌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보헤미안의 느낌이 살짝 풍기는 세련된 차림이었다. 반대쪽에 앉아있는 중년의 여성은 흰색 면소재의 무릎 길이의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챙이 넓은 여름용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의 옷차림 역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계절감을 시원스레 풍기며 멋스러웠고, 딜러쉽의 분위기가 텍사스의 여느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 나도록 하는데 일조하는 차림들이었다. 스바루가 판매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는 차림새이기도 했다.


하얀색 스바루 포레스터


여름 내도록 큰 아이를 틈틈이 운전 연습을 시켰고, 아이가 자동차 면허를 딴 것은 두 주 전이었다. 남편이 논문 디펜스를 축하하며 내게 선물로 사주었던 대형 SUV를 아이에게 물려주고, 내게는 다시 아담한 사이즈의 스바루를 사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고등학교 주차장은 주니어 혹은 시니어들이 부모들로 부터 물려받은 대형차들로 가득하다. 초보이자 십대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부모들은 대게 자신들이 애들을 태우고 액티비티 다니던 차들을 물려주곤 한다. 아이들은 면허를 따면 뒷자리에서 운전석으로 옮겨 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말 오후에 나사 옆의 자동차 딜러쉽까지 오게 된 것이었는데, 포레스터 XT 와 LIMITED 를 시운전 하게 되었다. 고속도로에 올려 과속과 감속과 커브돌기를 거칠게 함부로하는데도, 차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차를 마구 흔들면서 운전을 하는데도 차가 동요하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안정감있게 주행을 하면서 마치 운전자를 달래는것 같기도 했다. 자기 중심 딱 잡고 요동치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제 갈길을 알아서 열심히 가는 듯한....인격이라도 실린건가 싶어지는 차였다. 터보 엔진이 수평으로 장착되어 있어 무게 중심이 안정적이고 사륜구동이라 야생 상태의 자연을 달리기에 최적화 되어 있어 그렇다고들 하는데, 나는 잘 모르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뭏튼 XT는 차가 저절로 알아서 운전을 해주는 것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 스바루는 단단하고 견고한 기계류를 좋아하는 남편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몸은 텍사스 평지에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콜로라도의 설원, 애팔래치아 고원, 나이아가라 에스컬프먼트의 고지대 살고 있는 우리는 겨울 추위와 눈 길에 강한 스바루의 납작한 사륜구동을 손에 넣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스물 몇 살 쯤 읽은 하루키의 소설에는,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당신같은 (명망있는 사람이) 사람이 (더 좋은 차를 탈 수도 있을텐데) 굳이 스바루 같은 차를 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한다는 대목이 있었다. 물론 좋은 뉘앙스는 아니었고, 하루끼의 인용으로 보건데 스바루는 일본의 대중들에게는 무시당하는 차였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판매부진으로 철수당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주인공은 다음 차를 살 때도 자기만의 신념으로 하얀색 스바루를 살 것임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하루키는 그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도 약속대로 하얀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를 등장시킨다고 한다.


서른을 넘어서면서 내게 있어 하루키는 끝까지 읽어 내기가 어려운 작가 중의 한명이 되었다. 이를테면, 요가의 장점은 운동을 하는 동작에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에 놀라우리만치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진다는데 있다. 그래서 심신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강사에 따라서는 그닥 힘들지 않은 몇 가지 동작을 순차적 연관성도 고려하지 않고 지루하게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엔 머리가 비워지기 보단 되려 머릿속이 뜨끈해지곤 하는 경험을 한다. 그런 강사를 만나는 날이면 20분을 못채우고 스튜디오를 걸어 나오곤 하는 내게 있어 하루끼는 "잡념을 불러일으키는 요가 강사"와 같은 유사한 입장이 된 것이다.  미안해요 하루끼씨.


Colorado's love affair with Subaru


스바루의 실체를 목격하게 된 것은 몇 해전 겨울, 콜로라도로 스키여행을 떠났던 때이다. 그 설원의 산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마주친 차량들 4대중의 3대는 새파란 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의 무리가 그려진 스바루의 엠블럼을 달고 있었고, 또 새하얗게 변해버린 도시의 색깔과도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잘 어울리기도 했다. 깍아지른듯 뾰족한 눈덮인 환상의 절경을 따라 해발 2000미터 상의 베일에서는 오가느니 덩치 작은 SUV 스바루의 천국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집을 비우다니 엄마, 그건 좋지 않은 생각이예요. 그럼 산타할아버지는... 어떻해?"


그 해 가을학기의 진행은 너무나 더디었고 힘들었으므로 종강과 함께 삶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떠났다 돌아와야만 생활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 겨울에는 마음이 북미의 서쪽 고원, 록키 마운틴 끝자락의 설원으로 도망가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이의 반응은,


"크리스마스에 집을 비운다니 엄마, 그건 좋지 않은 생각이예요. 그럼 산타할아버지는... 선물은 어떻게 해."

아이는 "크리스마스에 집을 비울거라니 대체 엄마가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니신가 ...”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I'll be home for Christmas..  you can plan on me라고 빙 크로스비의 노래를 불러가며 이 여행 반댈세를 외쳐대는 아이를 달래고 설득하여 길을 나섰다.

"콜로라도 산꼭대기에도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데.. 정말로. 우리가 머물 호텔로 찾아오신다고 하던데? "



집에서 약 1800킬로, 차로 약 18시간이 소요되는 콜로라도 고원의 베일을 향해 떠났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겨울이었다. 비행기 여행이 일반화 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가족이 함께 떠나는 로드 트립의 감흥과 경험은 비행기 여행에는 견줄 수 없는 많은 디테일들이 있다. 특히 여러 주를 가로지르는 장거리 도로 여행은 일생에 몇 번이나 가능할까? 대여섯 시간의 로드 트립은 하루 거리여서 큰 부담이 없지만, 열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계산상으로 열 여덟 시간이 소요될거라 했던 그 겨울의 로드 트립은 느닷없이 불어닥친 눈보라와 고원의 눈길이라는 생소한 환경으로 인해 스무 시간이 넘게 소요되었고, 나는 그 여행이 내 인생 최장의 그리고 마지막 도로 여행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섯 시간 이상의 거리는 더 이상 차로 다니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콜로라도의 추억.


콜로라도를 향한 먼 여정: 텍사스를 벗어나기까지 11 시간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마주하며 내쳐 달리는 텍사스 도로의 무미건조함을 피하고자, 굳이 새벽을 틈타 집을 나섰지만 다섯 시간을 북쪽으로 달린 후에도 우리는 겨우 댈러스에 도착했다. 위도를 북쪽으로 4도쯤 올라오는 동안 외부 기온은 67 에서 46도까지 떨어졌다. 휴스턴에서 북서쪽으로 달려 텍사스를 벗어나는데 열 한시간이 걸렸다.  


사막지형인  뉴멕시코에서도 눈을 볼 수 있었다.  여름 사막에 겨울 눈발이면 참 고달픈 삶의 지형이겠다.



북부 텍사스 지역에 한없이 끝없이 펼쳐지는 메마른 대지들. 텍사스로부터 뉴멕시코 경계즈음에 다다르자 또 끊없이 이어지던 돌길.. 몇 시간을 달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황량하고 메마른 대지와 돌밭길은 원초적인 자연의 무표정하고 냉랭한 눈길이었다. 흑백의 서부영화 배경쯤 되었을 법한 그런 자연의 환경에 감히 인간이 거주할리는 없었지만 문명의 흔적으로 길은 이어지고 있었다.


사막에 내리는 눈: 뉴멕시코


텍사스 주경계의 돌밭길을 벗어나 뉴멕시코 접경으로 들어섰을 때 한없이 이어지던 누런 사막의 황량함이 이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쓸쓸한 바람을 가슴 가득 안겨 왔다. 사막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다.





황야의 지평선이 하늘과 만나는 지점에서 구름의 파도가 거대하게 일고 있었는데 그 초현실적인 구름의 형상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구름은 꽤나 오래 그 모습을 변치 않고 유지하고 있었다. 일상의 현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하늘과 땅의 모습을 만끽하던 시간이었다.




극강의 추위와 눈보라의 변덕은 우리를 결속시킨다. 하이웨이 25번


늦은 오후 무렵 콜로라도로 진입을 했고 어둠이 내릴 즈음에는 Pueblo를 지나 25번 고속도로를 타고 덴버를 향해 북상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눈보라가 불어닥쳤고 시계는 갑자기 제로 상태로 변하고 달리던 차들은 일제히 멈추고 고속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눈보라를 헤치며 달리는 겨울 고속도로 위의 운전은 오랫만이긴 하지만 익숙했던 터였으나, 콜로라도 끝자락에서 불어닥치는 눈보라는 사상초유의 두께여서, 시시각각으로 눈의 담요가 높이를 불려가는 것이 눈에 보였고 히터를 최대한 틀어 놓은 상태에서도 발끝의 감각이 무뎌져오기 시작했다. 거북이같은 서행에도 자동차는 헛바퀴를 돌기도 하고, 이대로 고속도로 위에서 날을 세게 될것인가 고민도 되기 시작했다. 일생 경험하지 못했던 날씨의 이변을 예기치 못하게 마주한 순간,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머릿속에선 온갖 경우의 시나리오가 엄청난 속도로 펼쳐지고, 나는 침묵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차의 탑승자들에게 텔레파시를 마구 마구 타전하고 있었다.


'거기도 나랑 상황이 같은 거죠? 나만 겪고 있는 건 아니죠? 우리 모두가 길 위에서 잠드는 일은 없겠죠?'


뿌연 윈도 정면으로 도로 위에 늘어선 앞 뒤 좌 우의 모든 차량들이 발산하는 빨간 정지등의 불빛이 무척 간절하게 다가왔다. 아이들은 영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뒷자석에서 조용하고, 운전석에 앉은 남편도 나도 침묵 속에서 각자 이 상황을 빠져나갈 해법을 조용히 간구하고 있었다. 스노우 타이어 체인이 필요하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최단거리에 있는 오토 타이어 샵을 찾아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그쪽에서는 호탕하게 우리에게 필요한 오토파트를 구비해 놓겠다는 대답을 했다. 내일 아침을 맞게될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에 맞추어 놓고 해법을 강구하고 있을 때 거짓말처럼 눈발이 멎고 시야가 환하게 게이기 시작했다. 도로 위의 불빛들은 붉은 빛을 더욱 강하게 반짝이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열시간 이상의 로드 트립이 진행될 때에는 밤의 고속도로 위의 불빛만큼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도 없다. 마침내 오토 타이어샵에 도착했을 때 직원들은 너무나 친절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소소한 장비들을 챙겨 주었고, 하루 사이에 여러 나라 여러 계절을 통과하는 우리에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추위와 혹한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있다.

 


 끝날것 같지 않은 고원을 향한 머나먼 여정은 자정이 지나도 계속되고..


그러고 스노우 체인을 장착하고도 우리의 8인승 suv는 두껍게 쌓인 눈의 슬러시 위를 서행하며 눈발을 가로지르며 이천킬로미터 해발의 산을 향해 올라갔다. 사선으로 휘날리는 눈발 사이로 비쳐보이는 뾰족하고 거대한 높은 산의 봉우리들을 마치 영화속에서 악마가 입을 벌리고 있는 어둠의 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덴버쯤이면 다 왔을 거라 생각했으나, 덴버로 부터 해발 2000미터를 오르는 일은 그리 짧은 거리도 아니고 만만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스바루를 몰랐던 그 때는...




눈 속을 헤엄쳐 나가는 스바루 포레스터의 위용을 보는 일은 재미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SG-pF1LX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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