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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Sep 26. 2017

외국어로의 망명-또 다른 자아를 찾아서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로 간 이유

또 하나의 언어 또 하나의 자아


영어로 글쓰기에 통달한 뱅골 출신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는 다섯 권의 장. 단편을 출간한 후, 이탈리아어로 언어적 망명을 택한다. 그녀는 여러 가지 삶의 양태들에 대한 따뜻하고 차분한 관조가 녹아있는 단편집 <질병 통역사>를  서른을 갓넘긴 나이에 발표하는데, 이 책은 단편집으로서는 드물게 퓰리쳐 상을 수상하는 행운을 그녀에게 가져다준다. 그녀의 모든 소설은 자신의 성장경험에 바탕한 인도계 이민자들의 미국 적응과정을 섬세하고 따뜻한 필치로 풀어 상술하고 있고 그러한 이유로 그녀의 글들은 "이민자" 소설로 불리기도 한다. 오바마는 한때 모든 미국인이 그녀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까지 표현하며 격한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라히리는 또한 오바마 시절 "대통령을 위한 예술과 인문학 자문단"의 일원으로 임명되었으나, 우리시대 언어도단의 최고봉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를 위한 자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Ignoring your hateful rhetoric would have made us complicit in your words and actions."라는 이유를 밝히며 지난 8월 자진 사퇴하였다.


 미국 땅에서 영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그녀의 소설 <Namesake -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은 뉴요커가 가장 많이 읽은 소설로 꼽히기도 한다. 장편인 Namesake는, 모든 미국인은 그녀의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오바마의 말에 동의할 수있는 작품이었다. 잔잔하면서도 흥미진진했던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된 바가 있는데, 헤롤드와 쿠마에서 한국계 배우 존 조와 환상의 조합 다이내믹 듀오를 보여주었던 우리의 친구 칼 펜이 주연을 맡았다.


<질병통역사> 한국에는 같은 소설집 중의 <축복받은 집>이라는 다른 단편을 타이틀로 사용하여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왜 그랬을까?



언젠가 베니스 필름 페스티벌에서 미모를 과시하기도 하신 라히리 언니. 다이어트 엄청 하신듯.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진 것이 영어를 버리고 이탈리아어로 망명을 택한 이유라고 그녀는 말하지만, 어쩌면 영어에는 무뎌진 펜 끝, 또는 너무나 익숙하고 새로울 것 없는 생활에 무뎌진 자아를 벗어 버리고자 떠난,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는 언어적 망명일런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젊은 나이에 이미 영미권의 주요 문학상들을 석권한 전력은 어쩌면 신선한 창작의 차거운 우물을 끊임없이 길어 올려야 하는 작가로서의 그녀의 동력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모국어가 아닌 불안하고 불완전한 외국어를 선택한 것을 두고 그녀는 “부서지기 쉬운 피난처에서 노숙자나 다름없이 살기 위해 훌륭한 저택을 포기한” 것에 비유했다. 유려한 모국어라는 집을 떠나 영어로 노숙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매우 공감이 가는, 딱 맞아떨어지는 비유이다. 덧붙여 영어에서 이탈리아어로 옮겨 가는 일을 "요정에서 월계수로 몸을 바꾼 다프네의 변신"에 견주기도 했다. 역시 매우 대단히 공감하는 말이다. 부드러운 요정의 육체와 피부가 딱딱하고 거칠고 둔중한 살아있어도 생명을 느끼기 어려운 나무 등걸로 변한다고 생각해보라...



낯선 나라를 여행하며 멋진 레스토랑에 가서 훌륭한 음식을 주문한다든가, 여행이나 잠시 체류한 장소에서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데 필요한 정도의 외국어 구사를 넘어서, 완전히 다른 언어의 토양에 자신의 삶을 다시 뿌리내리며 사고체계를 다른 언어로 바꾸어 가는 과정은 자아가 완전히 변신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변신은 격렬한 재생 과정, 죽음이요 탄생의 과정이다."라고 말하는 줌파 라히리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녀는 풀루타르크의 변신 이야기를 늘 곁에 두고 읽는다고 했다. 이탈리아어로의 망명, 그리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변신이 그녀에게 작가로서의 새로운 창조적 자아를 발견하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  





언어와 자아 사이에 놓인 심리언어학적 문제


아름다운 미모의 탁월한 문장가가 인생의 중반에 새로운 언어를 선택해서 자신이 살아온 나라의 반대쪽 지구 반대편으로 망명을 시도했다는 일은, 또 그녀가 새로운 언어로 엮어낸 언어의 날줄과 씨줄을 따라 읽어가는 일은 일면 로맨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구체성과 실질성을 추구하는 과학이라는 외투를 입은 심리학의 한 방향에서는, 나와 당신이 외국어로 생활하는 일이 길어질 때, 혹은 일생을 두 개의 언어 사이를 오가며 생활할 때 우리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가 두 개의 언어라는 채널을 통해 두 개의 상이한 세계 사이를 일상적으로 오고 가는 일이 우리 머릿속 뉴런들의 연합체- 뉴런 동맹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뇌 속의 전기적 신호전달이 약화되는 나이가 될 때, 우리가 평생을 연마해온 또 다른 언어체계가 어떻게 두뇌의 신경생리학적인 쇠퇴를 compansate 하는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그들이 알아낸 결과들은 사뭇 흥미롭다.



바벨의 전설이 전하듯이, 원래 인류는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할 무렵에는 다언어를 사용하는 존재였으나, 부족 내의 단합이 공고해지고 in group / out group 간의 차이가 선명해짐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의 가짓수를 줄여왔다고 전해진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그리고 운신의 폭이 휴전선 아래로 제한되기 이전의 한반도 주민들의 언어는 훨씬 더 다양했던 것을 북미에 와서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만주벌판을 달리던 그 시절,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었으나 러시아-일본-중국어-한국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던 선조들의 자손들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를 다시 과거 바벨탑 이전의 다언어 사용체계에 조금 더 가까워지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세상의 모든 정보가 손끝에서 펼쳐지고, 원하는 자 무엇이든 알아볼 수 있는 구글 신과 동행하는 글로벌 노매드의 세계이다. 국가 간의 지리적-물리적 국경은 이 전 세대에 비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정보의 확대는 이민의 행렬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미국을 정점으로 세계가 다문화/다언어 사회가 되어감에 따라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개인들이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개인들에 비해 갖는 인지적/사회적 장점들에 대한 연구가 증가하고, 결과들이 가리키는 바는 다음과 같다.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지능력의 향상과 공감능력의 향상뿐 아니라 노화와 관련하여 두뇌 건강과 관련된 이점들을 보고한다. 예를 들면 치매의 발병 지연이라든가, 중풍 이후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 속도, 그리고 노화와 관련된 두뇌 질환과 치매의 방어 요인으로서 이중언어 사용이 가지는 장점은 광범위하게 보고되고 있다.  

 

실행기능 (executive function)의 향상


현시대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학습의 매체와 방법이 다양해지고 광범위한 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짐에 따라 학업의 성공이나 목표 달성을 결정짓는 요인은 단순 암기나 텍스트 이해능력을 넘어선다. 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능력은 “과제에 대한 접근과 분석, 단계별 필요한 요소들을 계획하고, 필요한 정보들에 대한 기억력을 포괄적인 실행 능력”이며 과제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능력과 무관한 자극들에 대한 반응 억제능력 또한 필수적이다. 이러한 지식을 적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포괄적인 능력을 실행기능 (Executive function)이라고 하는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할 수 있다.  토론토 욕 대학의 심리 언어학자 Bialystock를 비롯한 관련 분야의 많은 학자들은 이중언어를 사용자들이 단일 언어 사용자들보다 실행능력이 더 뛰어남을  보고하고 있다.


이중언어 사용자들에게 있어 상황에 따라 사용할 언어를 선택하는 것은 두 개의 다른 스위치를 번갈아 켜고 끄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며, 두 개의 언어라는 스위치를 상황에 맞게 선택해야 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과정은 선택적 “주의 집중”과 통제된 “반응 억제”라는 실행기능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실행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회로가 연결이 강화되고 기능이 향상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신경 가소성 (neural plastic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근육을 단련시키는 과정과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스트룹 테스트에는 텍스트와 색깔이라는 두개의 상이한 코드가 제시되는데, 한 가지 코드를 인지적으로 억제해야 한다. 이중언어 사용기제와 스트룹 테스트가 유사한 면이 있다.


두개의 언어, 두개의 조망


아울러, 언어는 한 민족 또는 종족의 정신과 문화가 함축적으로 녹아있는 산물인 동시에 문화를 표현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가치체계와 사회의 전반적인 정서를 반영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므로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폭넓은 인지적 조망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 복수의 문화적 근간을 체화하게 된다는 의미이며 타인의 생각과 관점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더  폭넓은 조망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경험적 연구는 1960년대 심리 언어학자인 Susan Ervin-Tripp이 제시했는데, 그는 일어-영어 이중언어 사용자들에게, 문장 완성 검사를 실시했다. 수잔은 실험 참가자들이, 영어로 일어로 구성된 비 완성 문장을 제시하고, 문장을 완성하도록 요구했을 때 사용된 언어에 따라 완성된 문장의 내용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내가 원하는 바가 내 가족들이 원하는 바 와 상충될 때는….”라는 문장이 일어로 제시되었을 때는

“매우 불행은 시간이다 (일어), “내가 원하는 것을 한다 (영어).”로 마무리했다.

“진정한 친구란…”

“서로 돕는다(일어)””서로에게 정직하다 (영어)"  

따라서 수잔은 언어 특정적인 마인드 셋이 있을 것임을 상정했는데, 그의 실험 내용은 일본어에 표현된 동양의 정서성과 가치체계, 영어를 통해 표현된 서양의 가치체계와 정서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 웨일즈에서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영어와 독일어 이중언어 사용자들에게 음소거가 된 비디어 클립을 보여주면서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설명해 보라고 있을 때도 재미있는 차이가 발견되었다. 독일어로 상황을 묘사하도록 요구했을 때는, 등장인물이 특정한 목적 지형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 반면, 영어로 설명하도록 했을 때는 진행형을 사용하여 행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상황설명이 많았다는 보고다. 영어의 동사가 진행형 변환이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문법적 이유를 들기도 하는데, 나의 주관적인 해석으로는 독일인들의 논리성과 목적지향적 상황인식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미국인들의 거두절미하고 맹함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심리 언어학자인 수잔 어빈 트립의 보고에 의하면 다중언어 사용자들은 그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 다른 존재인 것처럼 느껴진다는데 동의를 한다. 줌파 라히리가 영어를 버리고 이탈리아어를 선택한 이유도 이로서 설명이 되고, 소싯적에 내가 영어로 문장 만들기를 열심히 하면서 언어의 여행을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할 때는, 복수의 조망능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용할 언어를 지속적으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주위 환경을 모니터링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타인의 생각이나 처지를 이해하는 폭넓은 관점 수용능력은 공감능력의 핵심이다. 공감은 인지적 공감-말로 표현되지 않은 타인의 관점을 헤아릴 수 있는 조망 수용 능력 그리고 정서적 공감-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의 조합으로 볼 수 있다. 부모에게는 모국어로 돌아서서 친구에게는 영어로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운전을 하면서 주변을 살필 때의 정신 활동과 유사하다.


뇌 기능의 보존; 뇌 기능의 노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마지막으로 이중언어는 뇌의 신경학적 퇴화를 지연시키는 방어 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뇌의 신경학적 퇴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인지능력의 감퇴가 상대적으로 경미하다는 사실에서 찾아진다. Bialystock 박사는 외국어 또는 모국어나 아닌 이차 언어를 일찍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의 뇌를 촬영한 결과 좌하위 두정 피질의 회백질이 두꺼워졌음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뉴런의 개채수가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성인이 되어서 외국어를 배우면 전두엽과 죄하위 두정 피질을 연결하는 백질의 연결이 강화되었음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뉴런의 개채수가 늘지는 않았더라도 시냅스 연결이 공고해 졌음을 의미하는 증거이다.  아울러 전통적으로는 외국어의 습득 시기와 연령이 이중언어를 체화하는데 결정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이중언어 습득의 효율성은 그 목적과 진지함의 정도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며 신경계의 가소성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이중언어 구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 설명: 단일 언어 사용자들의 경우, 노화와 더불어 전두엽의 기능에 주로 의존 하는데 반해 이중언어 사용자들의 두뇌는 측두엽과 두정엽이 강화되어있고, 전두엽과 후두엽 간의 연결이 증가함으로 인해, 노년에도 뇌 기능의 감퇴가 상대적으로 경미하다.


사진. Front. Psychol., 03 December 2014 | https://doi.org/10.3389/fpsyg.2014.01401




전혀 다른 언어에서 발견하고 싶은 나의 또 다른 자아를 찾아 떠나는 언어 망명이라는 로맨틱하고 형이상학적인 이유에서든, 두뇌의 노화 방지를 위한 예방이라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이유에서든, 닳아서 새로울 것 없이 평평해진 일상을 외국어라는 색다른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은 일상의 색깔을 전혀 다른 톤으로 물들일 수 있는 신선한 일이다.



내일 아침엔 아이들에게

Buenos dias!

Que tenga un buen dia.

Te quiero!

라고 인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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