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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Jul 12. 2019

물과 빛이 만들어 내는 풍경들

21층에서 바라본 평일 오전의 지상.
거대하고 북적이는 도심일지라도 21층 위에서 보니 왠 한적한 시골동네인가 싶은 새로운 조망이다.

병원과 백화점 상가 등 높은 건물들은 도로의 이쪽편에 죄다 위치하고, 도로 건너편은 납작하니 다른 세상같아 보인다. 중앙의 interstate highway #10 (I-10)과 고속도로 진입을 위한 좌우의 freeway.

LA에서 시작해, 아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루이지애나를 거쳐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끝나는 I-10은 북미 최남단을 횡단하는 interstates highway이자 휴스턴과 인근의 위성도시 거주자들의 출퇴근 도로이다.고속도로 좌우행 각각 6차선에, 프리웨이 각각 5차선이니 Rush hour엔  22차선이 만원이 되겠다.


휴스턴 도심에서 플로리다 잭슨빌까지는 논스톱으로 열 세시간쯤 걸린다. 루이지애나를 지날 땐 늪 지대를, 플로리다에 가까와 질수록 만bay을 가로지르게 된다. 망망대해에 놓인 직진하는 콘트리트 다리 위를 오래 달려야 하는 비현실적인 풍경도 있었다.

이른 새벽에 출발해 루이지애나의 프렌치 쿼터에서 (이런곳에서 학회라니 어이없었지만) 진행되는 학회에 참석하러 가던 날은 투명한 햇살이 늪 위로 부서지고 있었다. 늪 위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은 영화같았고, 늪 속의 멜깁슨과 히스 레저를 떠올렸고, 서행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고속으로 달리며 동시에 머릿속으로 프리젠테이션 할 내용을 되세기던 그날은 줄곧 긴장하고 있긴했었지만, 어쨌거나 풍경은 낭만적이었다. 두번째로 가족과 함께 한 여행에서는 늪 위를 지날 때 스콜을 만나 하얗게 쏟아지는 비속에 갇혀 있어야 했디. 참으로 난감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어 무섭지 않았다. 스콜은 순간의 모멘텀으로 쏟아지는 물줄기였기에 곧 풀려났다.


최북단을 횡단하는 interstate highway는 90번으로 위스콘신, 이리호 남단을 통과해, 온타리오 남단을 거쳐 시라큐스, 유티카를 거쳐 알바니로 내려간다.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 맨하탄으로 내려갈 때 이 고속도로를 잠시 거쳐야 했다. 남부 온타리오 워터루에서 맨하탄까지는 고작 열시간이 걸렸을 뿐인데, 국경을 넘고 산맥을 가로지르는 겨울의 초행길이라 열 시간 거리도 그때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여름이었다면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을 길이었을텐데....댄 브라운의 시각적인 소설 다빈치코드를 흥미진진하게 읽고 난 다음의 여행길이었다.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닥터의 허락을 받았다. 약속을 잡던 리셉셔니스트는 오전 8시 20분, 1등으로 들어오라고 애초에 시간을 정해 줬지만, 고작 의사를 만나는 일에 러시 아워를 달려 일등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전 시간이면 족했다. 그러나 다음에 닥터를 다시 볼 일이 있다면 1등으로 들어가 볼일이다. 그래서 21층의 로비에 서서 저 22차선 통행로가 주차장으로 변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싶어졌다.


러시 아워를 제외한다면 언제나 유유자적한 도로와 변함없는 천상의 아름다움. 자유다.



한달여 만에 다시 찾은 수영장. 아이린 카라가 80년대에 부른 노래는 세월에 지치지도 않고 7월 저녁 여름의 싱그러움을 더한다. 늙어간 것은 아이린 카라 뿐,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청춘의 그것이다. 저녁어스름을 예고하는 하늘엔 투명한 홍조가 옅게 깃든 흰구름이 피어난다. 하얀 상현달이 점처럼 박혀있다.


물과 빛의 어울림이 만들어내는 패턴만큼 극도의 청량감을 주는 시각 현상도 없을거다. 한낮의 조용한 수영장에 서만 만끽할 수 있는 물과 빛이 만들어내는 이 보석같은 현상은 그러나 이름을 갖지 못했다. 빛그림자라고 혼자 이름 붙인다. 지인인 국문과 교수는 ‘수문’, ‘물무늬’라고 대답해 주었지만 빛이 빠져있어 그건 만족할만한 답이 아니다. 물무늬는 청량한 빛이 없어도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비가 내리는 날도 수문은 만들어질 수 있고 바람결에도 만들어 질 수 있다. 물빛어림 정도면 좋겠다. 나는 빛의 물그림자라고 불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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