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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Aug 22. 2019

여름은 이제 안녕-미지의 북위 60도

며칠전 자정 무렵에 J로부터 날아든 소식은 내일 비행기로 북유럽의 매우 추운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발령지가 결정 난 후 한국을 다녀와야했고, 이삿짐을 정리해야 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식사 한번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노라는, 길게 이어지는 메세지에 그녀의 아쉬움이 전해져 왔다. 감정이 전염되는 속도도 나이에 비례하는지도 모른다. J가 가는 곳은 북위 60도. 열대 부근의 멕시코만에서 극지 부근으로 좌표이동이라니.... 북위 60도가 인간의 공동체와 문명이 꽃피울 수 있는 지리적 임계점임을 발견한 것은 뭉크와 스웨덴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였다. 오슬로-스톡홀름-헬싱키-세인트 피터스버그로 이어지는 북유럽과 러시아의 수도는 북위 60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노르웨이의 뭉크와 아랫동네 네델란드의 반 고흐는 그 차갑고 흐린 곳으로부터 남하해, 남프랑스의 환한 햇살을 발견했을 때 주체할 수 없는 정신적 열기를 내뿜기도 했었다. 북위 60도를 향해 북진하는 J에게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전했다.


J가 이곳에 도착한 첫 두해는 자주 만났었다. 덤블링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직접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린다와 J를 함께 집으로 초대해 만두를 빚기도 하고, 비트와 시금치즙으로 색을 낸 삼색 파스타 생면을 뽑아서 나누기도 했다. J가 들고 온 곱게 포장된 호두 과자 덕분에 나는 우리 동네에 (실은 한국 동네에) 호두과자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고, 요즘도 주말이면 호두과자를 사러 한국 동네에 내려간다. 모든 새로운 만남이 조심스런 때가 된 이즈음이지만, 우리는 동갑이었고 그녀를 만날 때면 대학 시절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때묻지 않은 상쾌함이 있었다. 그녀는 외교관인 남편과 함께 정기적으로 대서양을 건너다니며 유럽과 미국의 도시들에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해야 했다. 그같은 삶은 어쩌면 고정된 장소에 뿌리내리기 위한 애씀을 면제받고, 또 시간의 흐름 앞에 내놓을 가시적인 성과라는 통행료로 부터 면책을 얻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가볍고 사뿐히 떠다니는 비눗방울이나 민들레 홀씨같은 삶...그러나 그것은 3자의 지극히 낭만적인 관점이었을 뿐이라는 것도 안다.


가을에 나홀로 유럽행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 그녀의 이동 소식이 전해진 것은 시의적절한 것이었을까? 북위 60위까지 올라갈 생각은 없는데, 그녀의 소식에 스칸디나비아 동네의 지도를 자주 들여다 본다. 이즈음에 여행이란 들뜸을 동반하는 상상과 계획이기 보다는 중력에 저항하기 위해 행해야 하는 숙제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너 이대로 주저 앉아있으면 바보가 되고 말거야 하는 내면의 소리에 마음이 따겁지만, 꼭 여행하지 않아도 일상이 나쁜건 아니야.. 지낼만해. 항공권을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동선을 계획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미지의 새로운 풍경이 가져다 줄 설레임을 압도한다. 호기심을 잃어가는 것일까? 몸이 아직도 피곤한 것일까?


올 여름의 마지막 자전거 레이스가 될 것같다는 둘째를 데리고 공원에 나왔다. 30분씩 진행 되는 레이스를 두번 연이어 달리는 아들 옆에서 꽃 나무 그리고 젊은 그들의 사진을 찍는 동안 여름의 뒷모습을 느꼈다.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이 여름 오후를 전속력으로 통과하는 소리가 시원하다. 쏴아 폭포물 떨어지는 소리같고 소나기 소리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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