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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Oct 06. 2019

Good morning Vienna!

훈데르트바서의 쿤스트하우스 방문기

비행은 시카고를 거쳐 유럽의 내륙 깊숙한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까지 날아가는 루트다. 휴스턴에서 시카고까지 세 시간, 시카고에서 비엔나까지 또 아홉 시간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다. 아침 러시 아워를 달려 우버로 공항까지 왔고, 공항 내의 Ember 그릴에서 시금치와 버섯을 넣어 만든 오믈렛을 먹었다. 그릴의 이름이 Amber가 아니라 철자가 e로 시작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남아 각자 책을 읽었는데, 나는 카잔차키스가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며 시간의 원초성에 대해 생각하던 대목을 읽던 중이었다. 남편은 불현듯 생각이 난 듯 물었다. “엠버는 잘 지낸데? 근데 여긴 왜 엠버가 a가 아니라 e야?  (엠버는 초록색 눈동자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던 착하고 숫기 없던 박사과정 동기 여학생이다).“낸들 아나요... 같은 이름도 철자를 다양하게 쓰곤 하니까...”라고 대답하다 덧붙였다. “나는 근데 ember라고 쓰인 걸 보는 순간 옅은 갈색이 아니라 초록색 떠올랐어.”라고 대답했는데 남편은 “응 나는 비행기가 떠올랐어. 브라질 비행기 회사 앰브레이어라고 있거든?” 이라고 생뚱맞은 대답을 던졌다. 각자의 취향은 이렇게나 거리가 멀다. 브라질이 비행기를 생산한다는 사실도 나는 처음 알았다. 5개국 consotium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남편은 다음달 새 프로젝트 착수를 앞두고 그간 미뤄둔 휴가를 써야하는 상황을 맞았다. 휴가 일수를 모두 사용하자면 올해의 마지막 두달은 회사에 출근조차 하지 않아도 될 지경이다. 상황이 이러니 애초에 혼자 여행하기로 했던 내 계획에 남편이 주도적으로 합류했다. 여행을 와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회사의 리더들 전원이 10월 휴가중이라는 흥미로운 사태가 진행되고 있었다. 11월의 무게가 어떠할지 짐작이 되지만, 12월이 되면 우리에겐 또 크리스마스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시카고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국내선 청사의 로비는 완전히 새롭게 단장해서 현대식 도서관 또는 카페테리아의 느낌이 났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의자가 마주 보고 놓여있는데 테이블 한가운데 메뉴판을 겸한 아이패드가 설치되어 있어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다. 뉴욕의 라과르디아 공항과 흡사해졌는데 차이라면 한산한 정도다. 세 시간이 예상되던 북아메리카 대륙 종단 비행이 두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되었던 것은 편서풍의 영향도 있었지만 파일럿께서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 아니신가 싶을 정도로 과감한 비행을 한 덕분이었다.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은 비에 젖어 있었고, 국제선 로비에서 탑승을 대기 중이던 비엔나행 승객들은 캐나다에서 많이 보았던 동유럽인들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간혹 민머리를 한 남성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 동네 백인 아저씨들 역시 나이를 막론하고 흔히들 하는 스타일이었만, 공항 로비에서 마주친 이들이 주는 민머리의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을 환호하고 유태인들 박해에 앞장섰던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영화가 만들어낸 스테레오 타입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오헤어 상공에서는 구름이 여러 층으로 가리워져 미시간 호수와 온타리오 호수를 내려다볼 수는 없었다. 캐나다 상공을 가로질러 퀘벡쯤을 지날 때쯤 지상에 고여있던 그 많은 호수들과 세인트 로렌스 강의 위용을 보여주려는 듯 구름이 갈라져 시야를 틔워 주었다. 저녁이 내려앉는 지상을 내려다보는 동안 아스라히 노스탤지어가 일었다. 유럽을 출발해 애틀란타 바다를 건넌 배들은 세인트 로렌스 강과 운하를 이용해 지대가 해수면보다 200미터 이상 높은 오대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거의 두 세기 전부터 유럽을 출발한 배들은 이 작은 강을 거슬러 올라와 운하와 여러 개의 lock을 이용해 산의 높이를 거슬러 올라 시카고 항구까지 깊숙이 진입하고 있었다. 인류의 슬기로움이란 배가 산을 넘어가는 마술도 개발했다.


세인트 로렌스 강을 보여주기 위해 구름이 길을 터주었다

출발을 앞둔 지난 새벽에도 구글 earth를 켜놓고 다뉴브강-도나우-의 지류를 따라다니느라 전 유럽을 뱅뱅 돌다가 잠을 설쳤다. 수량도 많지 않은 이 가느다란 강은 독일의 black forest 즈음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거쳐 전 유럽을 구석구석 돌아 흑해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강을 따라가는 뜬금없는 야밤의 지리탐사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의 볼가강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강이 다뉴브강이라니... 중고등학교때 배웠을 사실이건만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유럽에서도 이웃한 강들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해서 북해로부터 대륙을 배로 건너 흑해에 닿는 교역을 하고 있었다니...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의 사고와 기술의 진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흥미진진한지....한강의 수량과 폭에 비하면 강 같아 보이지도 않는 작은 강들을 끼고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서로 치열하게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이며 동시에 얼마나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던지.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다보면 아이들은 눈 앞에 펼쳐지는 그림같은 아름다운 건축과 풍경에 마음이 들뜨기에 앞서, 그토록 잔혹하고 복잡한 외교로 얽힌 전쟁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던 유럽이 이렇게 아름다운 땅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듯 했다. 그러고보면 한반도의 역사는 유럽과 미국과는 매우 달랐던 특수성을 가진 것 같다. 중국과의 수동적인 관계만 어찌어찌 유지해나가면 복잡할것 하나 없었던.....새빨간 색으로 국적기의 정체성을 드러내던 오스트리안 항공사의 승무원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빨간색 유니폼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비행기의 좌석 역시 새빨간 패브릭으로 커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주는 편서풍이 역할을 했던 것인지 예상보다 일찍 비엔나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가방이 나오지 않았다. 파일럿은 열심히 일을 했는데, 러기지 케리어들이 실수가 있었던 것인지 우리의 짐가방은 스위스의 취리히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휴스턴발 러기지는 시카고-스위스-비엔나로 신나게 돌아다니는구나. 그러나 오늘 중으로 호텔로 배달이 될 거라는 말을 들어 안심했고, 덕분에 오전은 체크인 하기 전에 여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비엔나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다 갈아타기 위해 내린 비엔나 중앙역 vienn mitte. 10분 거리에 마침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이 있다. 오전은 hundert -100- wasser -물- , 스스로의 이름을  백개의 물, 백수라 칭한 훈데르트바서의 건축과 그림을 찾아다녔다. 화가이기도하고 건축가이기도하고 나이와 함께 이름이 시처럼 길어졌던, 물을 정말로 좋아했던 화가다. 그가 설계한 순박한 가우디 버젼같은 알록달록 타일벽의 아파트 건물까지도 동선이 좋았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왕궁과 미술관이 밀집해있는 링로드의 외곽에 위치해 있고 입주민이 생활하고 있는 아파트이다. 그 건너편의 훈데르트바서 빌리지는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들을 파는 조그마한 쇼핑센터인데, 알록달록한 타일로 외관과 바닥이 장식되어있다.  완전히 다른 나라에 뚝 떨어진듯한 그 알록달록 구불구불한 괴짜 건물이 나타나기 전까진 조용한 거리에 똑같이 생긴 클래식한 외관을 가진 아파트 건물들이 나란히 서서 학교로도 사용되고 주거지로도 사용되고 상가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상업 간판의 공해가 최소화되어있던 것은 유럽 여느 도시와 비슷했는데 이곳은 정도가 더했다. 고전적인 창문 장식을 한 깔끔한 아파트 건물 입구 안쪽 벽에 손바닥 크기 정도로만 표기되어있던 비즈니스 간판들. 워드 폰트 크기 30 정도나 될까 말까 하게 써붙여져 있던.... 정보를 강요하지 않고 사람과 공간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던 비엔나 거리.


Friedriesenreich Regentag Dunkelbunt Hundertwasser는오스트리아 태생의 예술가, 건축가,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자연주의적 건축가로 유명하다.  그의 이름이 가진 의미는 백개의 물이 흐르는 평화의 왕국. 시와도 같은 이름이다. 제 3의 피부라고 불렀던 집-가옥의 건축, 공기와 환경이 4차, 우주는 5차의 피부로 간주했다. 훈데르트바서하우스 외에도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한 눈구멍 집, 숲의 마당 집, 롤링 힐과 이동하는 언덕 집 같은, 호빗의 마을같은 여러 건물들과 리조트도 디자인했는데 미술관에는 그가 디자인한 집과 건축믈들의 디오라마가 전시되어 있다. 롤링힐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작은 온천마을은 자연과 삶을 합치시킨 건축으로 마당과 지붕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언덕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 마당에서 풀을 뜯다가 지붕으로 걸어 올라가서도 풀을 뜯을 수 있는 집으로 가득하다. 건물들은 식물로 뒤덮여있고, 지붕들은 동산처럼 연결되었다. 어린시절 주말 아침 만화영화에 나오던 라라미와 토돌이가 살던 숲 속의 버섯 집을 연상시키는 크지 않은 공간에 여러개의 작은 가게가 빌리지에는 입주해 있다. 그의 평소의 지론대로 바닥은 물결치듯 곡선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바닥이 고르지 않으므로 보행이나 운동협응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시적인 표현을 즐겨썻던 훈데르트바서는 곡선으로 물결치는 바닥은 발바닥에게는 노래라는 말을 했다고도 전해지고,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직선을 악마적이라고 간주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가 디자인한 건물에서 직선은 찾아볼 수 없고,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의 건물 바닥은 정말 요동치고 물결쳤다. 리셉션 데스크 앞에서 여러번 뒤뚱거렸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의 건축은 가우디 건축의 의기소침 버전 또는 소박 버전을 연상시키고, 그의 회화는 paul klee on steroid 같다. 그림의 장식적인 요소는 클림트에게서 빌어 온듯하고, 주제 중 하나인 여러 형태로 표현된 집과 색채는 에곤 쉴레의 풍경화에 등장하는 집들에서 빌려온듯 했다. 그가 선과 형태들을 다루는 모습은 파울 클레를 연상시키고, 한국의 장욱진을 연상케하는 면도 있다.


아뭏튼 완전히 다르고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어 보인 사람이다. 생명의 근원인 물이라는 주제와 생명현상을 상징하는 조형적 요소인 나선형 -나이테 모양-, 나무, 집을 반복함으로서 자연으로의 회귀하자는 뚜렷한 철학을 담고 있는 그의 그림은 강렬한 색채의 배합과 미학적 구성으로 별다른 설명이 없더라도 보는 사람의 마음에 강하게 와닿는다. 강렬한 색채의 과감한 회화이지만, 자연주의적 사상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 누구나에게 꿈과 동심의 세계를 연상케한다. 반 고흐가 그랬던것처럼  씨앗이 싹터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거름으로 땅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에 그는 매료되어 있었고, 생명의 근원이며 이 모든 순환을 가능케하는 원동력인 물을 무척이나 사랑한 나머지 시와도 같은 긴 이름 - 평화로운 땅에 비오는 날 내리는 백개의 물과 어둠속에서 빛나는 화려한 색채 -에도 물을 두개나 사용했다. 1960년대 초반 4년간 일본에 머물 때는 자신의 이름을 한자 백수로 표현하며 작품마다 백수라는 낙관을 사용했다. 백수라니! 화가의 이름은 그의 세계관과 정체성을 기가 막히도록 절묘하게 드러낸다.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의 모토이면서도 그 상징의 핵심인 물을 정확하고도 풍부하게 -100개나!-담고 있다.생명의 근원인 물을 다양한 그림으로 표현했던 작품들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겸손하고 진실하게 살아가자고 권한다. 무위자연을 설파하고 자기철학을 실천하고 살았으면서도 세상에서 인정받고 성공한 화가로 살아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백수는 물가에 집을 짓고 또 물 위에서 생활하겠노라 배를 한 척 만들어 자신의 배를 regentag 비오는 날-이라 명명하고 자신의 미들네임으로 추가했다. 레겐탁, 비오는 날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것은 물론, 파나마 운하를 통해 뉴질랜드까지 항해했다니 완전히 꿈꾸는대로 이루었고 피터팬처럼 살았던 사람이다. 어둠 속의 화려함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둔켈분트인데, 햇살이 너무 강한 날보다 비에 촉촉하게 젖은 세상은 사물이 가진 본래의 색과 생명력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했던 그는 비가 내리는 날은 어둠속의 화려함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진정 현자다. 어머니가 유태인이었던 그는 어린시절 60명이 넘는 어머니를 제외한 외가 전체가 나찌에 몰살 당하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아픔을 겪었다. 아버지가 카톨릭이었던 덕분에 카톨릭 세례를 받고 히틀러의 소년단에 가입함으로서 목숨은 구할 수 있었으나 소년 시절의 그의 삶이 평탄치 않은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림에 뛰어나 비엔나 예술학교에 입학했으나 3개월을 다니다 말았고, 프랑스의 국립예술학교 에콜 드 보야르에도 입학을 했으나 하루만에 자퇴를 했으니 공식적인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은 셈이지만, 색채와 선에 대한 그의 감각은 천재적이었다. 백수는 자신이 머무르는 곳 어디서든 그림을 그렸고, 물감의 질감을 무척 사랑했던 그는 물감의 대부분을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여 직접 제작해서 사용하곤 했다. 전통적으로 정의된 한계와 경계를 무너뜨리고 확장시키는 전방위적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이고 강렬한 작품을 창조했다.

http://www.kunsthauswien.com/en/

훈데르트바서를 만난 충격과 감동 속에서 점심을 먹고 호텔로 들어와 한잠을 자고 났더니, 스위스로 날아갔던 반가운 짐가방들이 방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저녁때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이렇게 적절할 수가.... 이렇게 시기적절한 배달 서비스는 예상 밖의 일이다.


호텔은 올드 비엔나 동쪽, Rathaus (시청)와 Parlament (국회)가 위치한 Yosefstadt라는 지역이다. 5분쯤 완만한 언덕을 내려가면 Ringstrasse가 나오는 한적하고 깔끔한 동네에 위치해 있다. 테라스가 딸린 방을 예약하려했으나 마감이 되었고, 우리에게 배정된 방은, 호텔방이라기보단 개인의 조그만 아파트같다. 널널한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광활한 욕실과 왼쪽이 광활한 침실이 배치되어있다. 복도 끝에 있는 클로짓마져 크기가 넉넉한 장롱같다. 침실 창을 열면 키큰 나무가 손에 닿고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소리가 청령한 가을 오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다녀본 중 가장 클래식하고 널찍하고 정갈한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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