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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Jun 16. 2018

프랑크푸르트의  플러타너스 길

Frankfurt am Main

한국행은 언제나 알래스카 상공을 통과해 태평양을 건너가는 경로였지만, 올해의 여행은 반대 방향을 택했다. 대서양을 건너 아이슬란드 상공을 통과해 유럽에 잠시 발을 디뎠다. 일주일 가량을 여행객으로 보낸 후 인천을 향했다. 우리를 태평양 건너편으로 이동시켜 주었던 것은 보잉의 700 시리즈였지만 대서양을 건너는 비행은 프랑스의 Airbus A380 이 담당했다. 보잉의 700 시리즈에만 익숙해 있던 우리에 Airbus 380은 신선한 2층 버스였다. 직접 선택한 2층 버스의 상석은 최고의 동선과 활동성을 보장해 주었고 실내는 쾌적했다. 열 시간의 비행 동안 우리를 돌봐준 승무원 언니는 지적인 인상의 연륜 있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그윽한 미소를 띠고서  적은 말 수로 승객들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자세가 인자한 교장선생님 같았다. 그것은 쾌활하나 때로는 무서운 면모를 보이는 미국 승무원들의 대체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것이었다. 언제부턴가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은 고달팠다. 세 번에 한 꼴로 기내에서 기절을 하곤 했던 그런 비행은 이제 다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반가운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의 귀국길은 대서양을 건너 지구를 반대편으로 날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 단장한 휴스턴 공항의 아시안 레스토랑은 흥미로운 인테리어로 눈 길을 끈다.


약 열 시간 가량의 비행도 무척 편안했지만,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신속성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아시아 각국처럼 쓸데없이 입국 신고서, 미국 이민국처럼 쓸데없이 긴 인터뷰 일절 생략하고, 눈인사 건넨 후에 두어 마디 인사로 입국 심사 10초도 안 걸리는 초고속 입국은 처음이다. 두 아이 데리고 여행 중이라는 말 한마디에 아이와 내 패스포트를 한꺼번에 도장 찍어 준다.

 

프랑크푸르트에 관해선 다른 건 모르겠고 거기서 나고 거기서 살았던 쇼펜하우어와 괴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의 즉답은... "상당히 재미없는 도시임이 분명하겠군."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싫어해 사교를 멀리하고 혼자 살다 자손 대신 저술만 남기고 죽은 쇼펜하우어와

화려한 가문을 배경으로 필력을 무기로 갖추고서 가는 곳마다 연애하고 당대 비극적 연애소설로 이름을 날렸던 팔방미인 괴테 선생. 쇼펜하우어와 괴테가 어떤 점에서는 상극인 성격들이지만, 그 상극의 지점 모두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70이 넘은 나이에 십 대 처녀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괴테의 매력포인트가 무엇이었을지가 나는 언제나 궁금했었다.


대학원 첫 학기 때 수업을 들었던 임모 교수님은 이듬해에 은퇴를 하셨지만, 은퇴하신 이후로도 일 년에 두어 번 찾아뵙곤 했었다. 여러 해 가까이서 뵈었던 교수님은 청년의 정신을 가지고 계셨고, 사고는 언제나 시대의 최전선에 계셨다.  늙지 않는 정신, 옛 시절의 유물이 되지 않으시되 기품 또한 더해 가시는 모습을 임 교수님은 보여주셨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70이 넘은 괴테 선생의 매력 포인트가 아마도 이 비슷한 것이었을까 짐작해 보았다. 물론 내가 그 교수님에게 이성으로서의 애정 비슷한 것을 품었었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고,  몸은 노쇠하나 결코 노쇠해지지 않는 정신, 빛바래지 않는 정신의 청춘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면서 70 넘은 괴테의 정열을 이해해보려 했었다는 것이다. 늘 탐구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으며, 일상을 일목요연하게 관리하는 분들을 뵙는 일은 언제나 감동이다.


괴테의 감성과 정열, 쇼펜하우어의 냉철한 이성을 만끽해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짧은 시간 압축적인 시간 여행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프랑크푸르트의 아침은 예상했던 딱 그 온도와 바람으로 우릴 맞아주었다. 싱그러운 유월의 아침이었다. 소음 없는 도로변에 너울 거리는 초록은 마침내 다른 지형에 당도해 있음을 실감 나게 한다. 휴스턴에 처음 내려오던 그 해. 눈에 들어오는 초록이라고는 뾰족하고 두꺼운 잎사귀의 소나무와 라이브 오크 잎사귀들 뿐이었고, 그것은 신경을 무척이나 자극했었다. 넓고 부드러운 잎을 가진 활엽수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나뭇잎마저 뾰족하고 잔뜩 공격적인 형상으로 돋아나 있어서 참 가혹한 동네가 아닌가 했었다. 그때는.....  


한국으로부터 캐나다로의 이동은 자발적 이민이었으나 캐나다로부터 미국으로의 이민은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미국에서 잡게된 남편을 따라가는 비자발적 이민이었다. 버클리대학의 인류학자 옥부의 자발적-비자발적 이민자의 차이에 관한 이론은 나의 미국 (부)적응기를 너무나 딱떨어게 설명하는 이론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고도 수천 킬로 상공으로 부터 내려다본 아리조나 어디쯤으로 짐작되는 지상의 타운, 아름다운 대칭성을 가진 기하학적 문양으로 개발된 사막 한 가운데의 시가를 내려다 보던 중, 부적응기의 역치가 깨어지는 소리가 심장 부근에서 들려왔다. 문득, 사막 한 가운데를 저렇듯 아름다운 거주지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긍정의 힘을 가진 이 사회에 나는 백기투항하는 것이 옳겠다는 깨달음이 생겨났다. 이번 여름의 비행에선 창 밖의 풍경을 내다보려는 시도를 애써하지 않았다.



공항을 출발해 숙소인  중앙역과 마인 강 사이에 있는 호텔에 이르기까지 10분이 채 소요되지 않았다. 파키스탄 출신이라는 기사양반이 시내 도로를 광속 질주를 하기에 너무 놀라 여기가 아우토반은 아닐 텐데요...라고 했더니 미국의 도로 속도 제한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을 던져왔다. 자기는 과거 언젠가 시속 300킬로까지 달려보려는 시도를 했다는 믿을 수 없는 말을 전하며 다시 할 짓은 못되더라... 당신은 그런 시도를 하지 마시오..라는 말을 했다. 하도 엉뚱해서 깔깔 웃음이 터졌다.



호텔 프런트에는 오전 아홉 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정오가 되어야 방을 배당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정오까지는 강 건너 미술관 거리엘 산책 다녀오면 딱 맞을 시간이었다. 강 건너에 있는 Stadel museum을 향하는 길은 플라타너스 터널이었다. 강변에는 체육공원 시설이며 여러 가지 시민 친화적 공간이 잘 정돈되어 있어 내가 다닌 고등학교 앞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인공의 손길이 다듬지 않은 자연하천이었으나, 지난겨울 스쳐지난 고향의 하천은 마인강변과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때 전국적으로 불어 닥친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통해 거듭난 어쩌면 마인 강을 벤치마킹한 결과였을 지도 모르겠다.


독일의 작가와 작곡가들은 어쩐일인지 십대의 감성에 그다지도 와 닿았다. 내 성향이 그랬던 것인지 나와 어울리던 또래집단의 성향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분지 지형의 독한 기후가 영향을 끼쳤던 것인지 십대의 우리는 독일을 무척 가깝게 느끼고 있었다. 고등학교 들어가 제 2외국어도 독일어를 선택하게 되었으나, 독일어와 영어는 병립하기 조금 곤란한 면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중국의 글과 영어가 가지는 문법적 공통성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에, 독일어는 영어와 같은 어족임에도 오히려 이질적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가끔 슈만의 가곡을 들을 때면 독일어를 다시 공부하고 샆어지기도 한다.

 

2차 대전 이후 제작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던 지하 컨템퍼러리 관에서 미술작품들 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지하 건물의 천장에 둥근 홀처럼 나있던 조명이었다. 자연광인지 인공조명인지 실내에 있을 때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로이어 분관의 현관 천정을 떠올리게도 했다.  스케일이나 구조로 보아서는 멧 브로어 어가 Stadel Museum의 이 신비로운 천창을 흉내 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일의 슈테델 미술관 지하 컨템퍼러리 관의 천창을 통한 자연 조명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브로이어 분관 현관의 천정


미술관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정원을 둘러보고자 건물 뒤로 들어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잔디밭의 정경은 감탄사를 자아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파스텔톤의 하늘과 구름 아래 초록색 잔디밭은 지하 컨템퍼러리 관의 천정을 구성하고 있었다. 지하 전시관을 환하게 밝혔던 조명의 실체를 이곳에서 확인했다. 색색깔의 텔레토비들이 뒤뚱거리고 뛰어다녀도 좋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2층의 특별관에는 루벤스의 작품 수 백점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어제가 마지막이었던 기획전이 하루 더 연장되었단 소식이 반가웠다.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으나.... 아 루벤스여.... 웬 작품을 그리 많이도 그렸는지.... 공방을 두고 제자들을 시켜 대량 생산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게 다작을 했던 작가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선 체력의 한계로 천정이 매우 높은 고풍스러운 1층의 카페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더블 에스프레소를 아이들은 꼬마병에 든 콜라를 한 잔씩 마시고 나니 정오가 가까워 오고 있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점심도 건너뛰고 한 참을 푹 자고 다 저녁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러고도 하루가 한 나절이나 더 남아있었다. 6월의 독일과 프랑스에선 오후 열시나 되어야 일몰이 찾아온다는 사실은 덤으로 얻어진 보너스 같은 것이다. 캐나다에서도 여름의 오후는 무척이나 길었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오후 여덟 시가 넘어서도 해는 기세 등등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긴 오후가 보장되어 있었음에도 가게의 캐쉬어들이나 거리에서 만나는 행인들은 오후 두 세시만 되어도 "you have a good night "이라고 인사를 건네곤 하던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왔다. 밤이라는 사적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장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깃들인 인사 습관이었을까.



카이저 거리의 노천 카페에서 저녁식사는 황당한 기억으로 남을만 하다. 하얀 테이블보와 화병이 놓인 고급스런 레스토랑이었으나 독일 음식이 아닌 이탈리안을 주문했던 것이 실수였을까. 시금치나 버섯을 메인으로 한 이탈리안 스타일의 음식은 집에서도 즐겨 만들곤 한다. 그래서 시금치와 버섯으로 만든 라쟈냐에 베이컨 토핑을 얹어 구웠다는 설명을 믿고 주문했건만 요리되어 나온 음식은 맛이 황당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시금치로 만든 라쟈나를 주문했는데 멕시칸 스타일의 엔칠라다가 나와서 한참 영문을 생각했다. 뚜렷이 변별되는 국적이 다른 요리였던 라쟈냐가 알프스 산맥을 넘어 독일로 넘어오면 엔칠라다 풍으로 변하는 것은 그 레스토랑만의 특기였던지 독일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던 것인지 알길은 없지만.... 버섯과 시금치가 기본으로 들어간 음식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고 믿고 있는 나로서는... 시금치를 푹 삶아 양념 하지 않고 가루를 내서 치즈와 섞으면 먹을 수 없을 만큼 맛이 없어진단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저녁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던 교회의 첨탑이 신비롭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던 중세의 로마 광장은 아름다웠다. 공들인 보수공사와 페인트칠의 여운이 느껴지는 중세의 광장에서 중세인들은 왜 그렇게 창문 장식에 공을 들였던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강박증의 특질이 강하게 유전적으로 각인된 사람들이라는 생각.


중세의 광장으로부터 숙소로 걸어서 돌아오는 긴 저녁 산책을 하는 동안 대화의 한 가지 주제는 엄마가 프랑크푸르트라고 발음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R사운드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가 그렇고 프랑크프루트가 그렇고 런던과 서울이 그렇듯이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강은 더할 수 없는 풍요로움을 안겨다 준다는 생각이 든다.  메사추세츠엔 찰스 강이 몬트리얼엔 세인트 루이스 강이 흐른다. 강이 없으면 호수라도, 호수가 없으면 바다가..... 물길은 곧 번영의 길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확인한 Frankfurt am 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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