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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Sep 20. 2019

keep calm and grow thick skin

도시는 이멜다에 젖어있지만..믜


라이스 대학에서 개최하는 가을 학기 색채론 강의 첫날. 수업을 이끌어갈 엘런이라는 이름을 가진 온화한 중년의 강사는 활발하게 전시회를 개최하는 화가인데 엘레강스 했고, 모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목소리가 나이보다 훨씬 젊고 맑고 청아한 것이 나는 좋았다. 눈을 감고 들으면 20대의 목소리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을만큼 세월의 먼지가 쌓이지 않은 목소리였다. 가끔은 자기가 하는 말을 강조하고 싶을 때 율동적인 동작을 섞어 온몸으로 말하기도 하는 그녀는 세련되고도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엘런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들었다. 작년 이맘 때 강의를 들었던 로라 역시 무척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티칭에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사람의 인상보다도 목소리와 prosody가 그 사람에 대한 더 많은 암묵적인 정보를 준다고 생각하는 내 믿음은 세시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의 숙달된 수업방식에서 다시 한번 확인이 되었다.


좋은 선생을 만나는 일의 중요성은 어린 학생들의 경우엔  인생을 바꿀수도 있을만큼 절대적이고, 성인이되고 인생을 살만큼 산 사람들에게도 무척 중요하다. 지난 봄 학기,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경력을 자랑하던 할머니 선생님은 얼마나 맺힌데가 많은 사람이었던지... 나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발사하거나 불편함을 표현했던 것은 아니나.....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그녀 -할머니-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악몽이 있었다. 수업중에 툭툭던지는 생뚱맞은 단어들과 그녀의 독한 언어 사용 습관 때문에, 소강상태에 있던 내 임상적 안테나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미국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은 나를 가르쳤던 교수들과, 내 아이들 선생님이거나, 내 클라이언트들이었던 유치원 초중고 선생님들, 그리고 나도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내 귀는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미국인들의 정제되고 애둘러 말하는 긍정적인 언어에 튜닝이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이 할머니의 언어습관은 노년의 여유로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을뿐 아니라, 내가 익숙했던 ‘선생의 언어’라는 도식에서도 한참을 벗어났고, 심지어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work ethic에도 벗어나는 우려스러운 것이었으니.... 나는 그 자리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수업 첫시간에 남편의 헐렁한 플란넬 셔츠와 좋게 말하자면 보이프랜드 진이라고 해줄만한 헐렁 헐렁한 낡은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신고 나타났던 옷차림부터 석연치 않았다. 아이비 리그에서 예술을 전공한 여자의 이력에 걸맞는 옷차림이 어떠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나, 주구장창 농장일을 하다 남편의 옷을 걸쳐 입고 나온 것 같은 그 차림은 못내 마음에 걸렸다. 결국 그 까슬까슬한 편지 않은 느낌은 내 임상적 촉수를 건드렸던 것이다. 실은 그녀는 독신이었고, 옷차림이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예민함과 까탈스러움은 나이가 들어도 사그라들줄 모르는 전형적인 백인 여자들의 그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은 할머니는 여자의 이름과 할아버지의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내 일상의 대인관계의 범위가 편협했던거라고 해 둘 수도 있다.  급기야 나는 저 연세의 할머니가 왜 생뚱맞고 독한 단어들을 자꾸 뱉어내는 건지, 대체 왜그러는 건지 그녀의 인생을 추적해보기도 했고, 오래전 신문 기사의 부고란에서 할머니 선생님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와 주유소에서 총기 사고로 죽은 그녀의 파트너와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녀의 독한 언어 습관과 “남편의 옷을 줏어입은듯한” 패션감각에 대한 미스테리가 일순에 풀렸다.


그러나 오늘 엘레강스한 엘런은 예술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 빛과 색채에 관한 뉴턴과 괴테의 오래된 논쟁을 되짚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기억에 남는 한가지 정의는 누가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예술의 기능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요한 (정상적인) 마음에는 동요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던 말 the function of art is calming disturbed mind and disturing normal mind. 그리고 예술가는 무엇을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은 keep calm and grow thick skin. 이라는 모토. 웃겼다. 수업 시작 전에 ice break. 편안한 예술 수업을 듣는 인원들은 대부분 여유자적 일찍 은퇴한 사람들이거나, world energy corridor인 이곳으로 expat으로 오게된 남편을 따라 온 젊은 부인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 세명이 있었는데, 멜버른 출신이 두명 시드니 출신이 한명이 있다. 전형적인 슬라브 미인인 아나스타샤는 러시아의 바이얼리니스트인데 자신이 나온 예술대학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녀는 휴스턴 온지 몇년 되었는데, 자신은 온몸으로 휴스토니안이라고 외치고 싶다는 애향심을 자랑했다. 화려하고 부풀린 연극무대 의상같은 옷을 입고 머리에 거대한 초록색 리본을 묶고 나타난 젊은 여성은 흥미로왔고, 요주의 관찰인물이다. 35년간 나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남편의 출장을 따라다니며 여행하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던 여인은, 남편이 정년퇴직을 3년 앞두고 있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며 11월에 노르웨이로 한달간 여행을 떠날 계획임을 알렸다. 백조같은 인생들이다.



엘렌은 자신이 입고 있는 화려한 꽃무늬 블라우스에서 그린을 찾아서 색을 만들라고 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앨렌은 까를라 부르니가 프랑스말로 부르는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아주었다. 카를라 부르니의 허스키한 읊조림을 들으며 나는 고지식하게 cool blue와 light yellow 를 섞어 light olive green을 만들었다.엘렌이 가르쳐준 녹색을 만드는 다른 방법은 Light yellow 에 black을 병아리 눈물이나 고양이 눈물만큼 섞으면 다채로운 그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노란색에 검은색을 아주 살짝 섞으면 그린이 나온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해 보았던 것인데도 나는 그것을 색의 에러라고 - 노랑에 검은색을 섞으면 망함- 범주화 해두었지, 색다른 그린의 창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방법은 소소하지만 굳은 생각의  틀을 깨는 방식이었고, 첫수업의 인상을 결정했다. 아울러 블랙을 만드는 다섯가지 레시피가 있음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여직 한 가지 밖에 몰랐다. 색채의 연금술은 언제나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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