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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Dec 06. 2019

반 고흐 미술관, 유감


반 고흐가 죽기 직전에 그린 <피에타> 드디어 만날 수 있었던 것과, 실종되어 온 유럽을 떠돌다 드디어 반 고흐 미술관에 안착하게 된 그가 그린 <산토끼> 두 마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반 고흐 미술관에서 느꼈던 가장 큰 반가움이었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끄루아의 색채를 무척 좋아했던 반 고흐는 들라끄루아의 <피에타>도 오마주 했다. 애초의 들라끄루아가 즐겨 썼던 붉은색은 제외하고 고흐의 특유의 푸른색 만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성모의 품에 안긴 빈사의 예수님의 체념하고 지친 표정은 다름 아닌 고흐 자신의 얼굴이어서, 그림을 그리던 고흐의 심경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어 무척 마음 아픈 그림이다. 지난봄 휴스턴에서 있었던 반 고흐 특별전에서 피에타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피에타는 오지 않았다.


세상에 널린 미술관에 마련된 고흐의 방을 다녀본 뒤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오르세의 고흐의 방은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고, 시카고 미술관에서 만난 피사로와 함께 전시된 고흐들도 임파스토의 본류 뭐 이런 것들을 느끼게 해 주어서 아주 좋았다. 지난봄 휴스턴에서 있었던 반 고흐 특별전은 테크놀로지와 건축물을 이용한 고흐 실제 체험까지 굉장한 스케일로 마련되어 있었고 19세 고흐 작픔들과 21세 테크놀로지가 어우러지기에 어색함과 거부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흐의 감동을 오히려 배가시키는 전시였다. 실제로 그림 속에 들어가 놀 수도 있을 만큼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특별한 감동이 있었다. 파리의 오르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 뉴욕의 매트로 폴리탄과 현대 미술관. 그리고 휴스턴 미술관에서 있었던 거대했던 고흐 특별전..... 모든 미술관들이 인파로 붐 기기로야 반 고흐 미술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 없었건만 붐비는 인파가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집중할 수 있었고, 사진도 마음껏 찍어가라 오픈해 있었건만..... 반 고흐의 본가 암스테르담에 지어진 반 고흐 미술관에서는 어쩐 일인지 그림에 몰입 하기기 힘들었고, 고흐 님과 대화를 나누기엔 적쟎이 어정쩡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몰려든 인파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것은 앞서 열거한 미술관들도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 없는 바인데, 이 미술관에서는 인파의 북적임이 그림에의 몰입을 방해했다. 머리도 아프고 곧 피곤해져 그림을 보는 일보단 미술관 귀퉁이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부슬비 내리는 이국의 거리 풍경을 내려다보는 일이 더 좋았다.


몸은 초현대식 반 고흐 미술관에 앉아 있는 동안 마음은 길 건너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창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창문들은 내게는 베르메르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 같은 것이었다. 베르메르가 그렸던 델프트의 작은 거리보다는 훨씬 현대적인 느낌이 들지만 네덜란드 건물 특유의 창문의 장식적인 느낌은 충분히 느껴진다 똑같은 높이의 5층-6층 되는 건물들이 창문 주위로 각양각색의 돌로 된 패치워크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커튼을 실내에 하지 않고 실외의 창문 위에 둥글게 얹어 놓은 것이 재미있다. 마치 마스카라를 칠한 눈썹처럼, 저 창문 위에 설치된 눈썹 모양의 차양은 빛의 세기에 따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어닝이었다. 실내로 강한 빛이 드는 것을 가려주면서도, 실내에서 거리 풍경을 내려다보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위도가 높은 나라이다 보니 빛에 대한 갈망은 굉장했겠지. 가운데 출입문을 두고 좌우로 창문이 하나씩. 그러면 출입문 위로 난 창문과 좌우로 각각 하나씩 난 창문, 한 층에 창문이 세 개가 난 5층짜리 집이다.  다양성을 뽐내는 건물들과 창문의 아름다울 권리를 맘껏 허용한 고색창연한 건물들은, 개인의 금융 자본의 소유권이 보장되고 확장되기 시작했던 그 시대 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 번영을 증거하고 있다. 160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개인들이 이런 주택을 소유하고, 빛이 드는 창가에서 편지를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사적인 시간을 향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기 온갖 치장을 한 창문 뒤, 실내의 공간에서 개인의 자아가 탄생하고 있었던 거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시선이 포착했던 것은 그런 순간들이었다.


정신이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왔을 때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과연 세계 각국으로부터 몰려든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보고 가는 것일까.... “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이런 질문을 입 밖으로 던졌을 때 남편은 “많은 경우에는 디즈니랜드와 다르지 않을 거라” 는 냉정한 대답으로 나를 깨웠다. 건축물은 과하게 현대적인 오픈 콘셉트이었고 수평으로는 전시관을 충분히 섹션화 해놓지 않았고, 천정은 너무 낮았고 시커멓게 칠해져 있었다. 소소한 갤러리들은 천정이 낮으면 아늑한 기분에서 관람할 수 있다. 플로어의 중앙은 스퀘어를 이루며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뻥 뚫어져 있어 어느 층에서도 유리 지붕을 올려다볼 수 있다. 미술관의 층과 층 사이를 연결하는 계단 역시 기능에만 충실하도록 만들어 협소하고 어두워 편하지 않았는데, 공간이 충분히 넓음에도 불구하고 계단을 협소하게 만드는 것은 네덜란드인들의 전통적인 실용정신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계단 바로 옆으로는 중앙 로비가 허공으로 뻥 뚫려있었다. 미술관의 로비와 관람실 사이에 구분이 없어 복잡한 인파에 묻혀 길바닥 서있는 기분이었다. 반 고흐 미술관의 낮은 천정은 역설적으로 세상의 많은 미술관들이 왜 천정을 그렇게 어마어마한 높이로 만드는 것인지 이유를 절감케 한다.


고흐의 펜화의 일부를 현대적으로 프린트해 벽면을 장식해 두었는데, 온전한 그림 전체가 아니라 펜화의 일부로 벽을 장식한 것은 산만해 보였다. 그렇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 휴스턴의 전시와 비교가 되어서 그랬던 것일 텐데.... 어마하게 높은 천정을 가진 휴스턴 미술관에서는 전시실 벽면 전체를 하나의 펜화로 덮어 벽면이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되었고 정확하며 힘찬 고흐의 펜 스트로크를 그대로 느끼고 그가 보았던 풍경 속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큐레이팅이었다.


그림에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여서 휘리릭 돌아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시실보다는 두 개 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물품을 판매하는 거대하고 백화점만큼이나 조명이 강하고 화려한 아트숍이 더 빛났던 현대적 미술관이 고흐 미술관이었다. 신관으로 보이는 지하층에 따로 마련된 특별 전시관에서 조용히 진행되던 밀레의 전시회가 더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텅텅 비어 있었다. 노동하는 농부의 일상을 그려 이데아를 소망하던 기존의 플라톤적 세계관을 허물어 뜨리고 예술의 범위를 왕창 넓혀주었던 밀레는 반 고흐가 가장 좋아했던 화가였을 뿐 아니라 혁명 이후의 러시아 예술, 러시아의 구성주의의 모태가 된 것으로 해석하는 듯했다. 밀레와 밀레를 오마주한 고흐의 작품들, 그리고 동시대에 비슷한 그림들이 주제적 연속성을 가지고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고흐가 재해석한 밀레의 그림들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안정시킨다. 노란 밀밭에서 노동하는 여인과 농부의 푸른색 옷은 선명한 색채의 대조를 이루면서도 은은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적어도 고흐의 그림에서는 노동이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 사각형이 진리의 실제라는 결론을 내렸던 말레비치가 해석한 큐비즘을 빌려온 알록 달락 한 밀레의 오마주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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