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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1. 2019

철인 삼종 경기, 월드 리그, 그리고 마침내 가을산

지난 주말 아침 기온은 섭씨 10도로 급전직하 했다. 작은 녀석은 열 일곱번째 생일을 맞았고 다섯번째 철인 삼종 경기에 출전했다. 열세살 생일 선물로 철인 삼종 경기에 출전을 허락해 달라던 볼이 통통하고 얼굴엔 늘 미소가 가득하던 꼬마는 여전히 배려가 섬세하고 사랑이 넘치는 아들이지만, 이제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숨죽이며 눈치를 봐야한다는 낭랑 십칠 세. 청록색의 자아가 무럭 무럭 자라고 있는 중이다. 열일곱 살의 소년을 둔 엄마들 사이에는 전지구적인 유대감 같은 것이 존재한다. 열일곱살의 아들들이 내뿜는 푸른빛을 띈 짙은 녹색의 아우라는 미국에서 만난 엄마들이 가진 언어적 문화적 경계와 국경을 일시에 허물어 뜨리고 일순간에 무한 공감의 동지애와 자매애로 뭉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너를 위해 기도할께 ㅎㅎ”... “부디 그래줘 그래야만 되 ㅎㅎ.”.. “그제는 이래서 혼났고, 어제는 무사히 넘어갔고...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일에 대한 지독한 관성은 유전자에 각인된 것인지, 계절이 돌아오면 무심한듯 또 당연한듯  가을 아침에 물 속에 뛰어들고 맨몸으로 달리고 자전거를 타며 체력을 한계를 밀어부친다. 최고도로 문명화된 조건에서 경기를 시작하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는 야생의 상태에 몸을 던진다. 적당한 온도로 예열된 청량한 수영장에서의 출발대신 야외의 호수에서 오리들 아침잠을 깨우며 수면을 밀어간다. 자기들 영역에 밀어닥친 이 이상한 무리들이 오리들에겐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영상 10도의 연못에 뛰어들어 오리들을 향해 돌진하는 저 모습은 보는 내게도 충격이다. .    


응원 온 여자 친구가 느낄 민망함 따위는 아랑곳없이 맨몸에 선글라스로 질주하는 낭랑 17세. 민망함은 엄마 몫이고, 이웃들은 소년을 응원한다. omg he has no body fat! stay in the perfect fit!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체 2등, age group 1등으로 마무리 했다. 30대와 40대의 장년 사이에서 낭랑 17세가 올린 쾌거라 놀라울 따름이지만.  일등을 한 벤자민 포르코와 2등을 한 죠수아 임의 순위는 작년과 동일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심 올해의 목표는 38세의 벤자민 포르코를 꺾어 버리는 것이었다는 ..... 그러지 못하고 작년과 같은 결과가 나와서 승리의 기쁨이 반감되었다는 소감도 전한다. 아.. 17세는 무섭다. 10월이고, 아스트로스 야구팀은 올해도 월드 리그에 출전해서 휴스턴을 빛내주었고, 올 해 처음 등장한 워싱턴 내셔널스와 여러 차례 접전을 벌였지만 우승은 그들에게 돌아갔다. 축하해요 내셔널스!



본의 아니게 올해는 열렬하게 중력에 저항하는 하는 해가 되었는데....한국에선 11월의 가을산이 어떤 색이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주엔 확인할 수 있을거라 기대된다.

봄의 교정에 꽃이 피던 순서는 생생하기에 봄의 산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3월 개학 무렵엔 매화와 개나리가 피었고, 개학 후 분주한 4월 교정엔 목련이 탐스러웠고, 그 다음엔 철쭉과 연산홍이 불이 붙은듯 담장을 빨갛게 타고 올랐고, 그들이 지고 나면 아카시아 향기 속에서 중간고사를 준비하곤 했었는데..... 가을의 교정은 언제 단풍이 시작되었던지, 마지막 단풍을 언제까지 볼 수 있었던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흐리고 스산했던 11월의 교정만 기억에 남아있다. 11월엔 높은 산에 오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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