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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4. 2019

돌아온 그녀 린다 해밀턴, 터미네이터

한동안 활동이 잠잠했던 나이들어가는 스타들의 스크린 컴백이 봇물을 이루었던 것과 강한 여자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던 것은 올해 본 영화들의 두 가지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미래에서 온 여전사 <알리타>와 아버지의 왕국을 지켜내던 까무잡잡한 <알리딘>의 공주는 말할것 없이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의 선언인듯 했다. 이제는 영화 그만 할 줄 일았던 브래트 피트는 그 나이가 되어서 <애드 아스트라>에 출연해 화성으로 아빠를 찾으러 나섰고, 급기야는 우리의 린다 해밀턴까지도 아놀드 터미네이터와 함께 돌아 왔다. 2019년 알리타와 터미네이터는 둘 다 제임스 카메룬이 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분이 원래 강한 여성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던지 제작자로서 시장의 요구에 충실한 결과였던지 모르겠지만.... 돌아온 린다 해밀턴은 나이들어가지만 여전한 아우라와 에너지를 남김없이 과시했다. 어젯밤 영화에서 세라 코너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환호를 지르며 너구리들처럼 발을 동동구르며 박수를 쳤다. 언니 정말 반가워요. 이게 얼마만이예요...


20세기 말 전지구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 터미네이터의 모티프는 성경에서 -인류를 종말로 부터 구할 마리아, 세라 오코너의와 그녀의 아들 존-차용해 온 것이었지만, 21세기 초 이 영화가 전하는 강력한 메세지는 시대정신이다.  “아들을 낳을 줄 알았냐? 니가 낳은 아들이 지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 니가 구하는거다. 지구를 구할 주인공은 바로 너라구!” 이번 편 미래의 여전사는 멕시코 시티로부터 왔다. 지구를 구할 존의 탄생을 예비하기 위해, 혹은 존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여왔던 그간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벗어나, 2019년의 영화는, 네 미래는 네가 선택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무려 한때의 세라 코너였고 미래의 세라 코너인 여성 둘과 현재의 린다 해밀턴을 함께 등장시킨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멋진 근육으로 무장한 자기희생의 결정타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헌신과 영원한 터미네이터 헌터인 마리아 ‘세라 코너’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지금. 당장. 스스로. 적을 무찌르는 멕시코 출신의 여전사 ‘다니엘라’다. 기차 위에 얹혀서 멕시코 국경을 넘어 텍사스로 들어온 여성 삼위일체가 펼치는 생사의 승부는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산전, 수전, 공중전을 포함하는데, 영화의 화룡정점은 회개와 화해와 치유의 전령사로 돌아온 아놀드 오빠다. i will be back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던 터미네이터는 인간이 되고 싶어 텍사스로 돌아왔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자의식을 확보한 결과는 항상 인간과의 대결 구도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인간적 감정의 갈구로 향할 수도 있음을 역설하고 있어서 이후의 영화 전개가 무척 안심이 되었다. 그를 터미네이터의 임무로부터 해방시키고 개과천선시킨것은 스카이넷을 부셔버리겠다는 세라 코너의 자기 희생적인 선택에서 기인한 것임을, 여전히 분노로 펄펄뛰는 세라에게 전하면서, 자신은 이제 사랑넘치고, 기저귀 잘 갈아주고 엄청 웃긴 남편(인줄알고)으로 살아간다고 로봇처럼 말하는 한때의 터미네이터는 세월과 함께 품위도 갖추었다. 회개와 화해의 말을 건넨 아놀드의 엄청난 무기고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강변한다. 그리고 아놀드는 말한다. 여기는 텍사스라고..... 극본을 쓴 사람이 텍사스여 들어라라고 하는듯 하다.


극본을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시대의 가치와 기독교에 기반한 미국적 세계관의 은유를 듬뿍 담아놓은 종합선물세트 같다. 현대의 가치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도 있고, 이야기의 맥을 이어가는 매개가 되는 지점도 있지만.... 결론은 다른 생각 한 순간도 들지않게 만드는 몰입도 높은 영화라는 점. 대스타의 아우라는 나이가 든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더라. 린다 언니는 은발의 스타일이 너무 멋졌고, 길죽길죽한 근육으로 무장한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가장 고생 많이 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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