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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Oct 31. 2019

1. 감정의 해부학



인간의 구성 조건, 인간의 존재 조건


    사람 人 자가 두 획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인 것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어야 성립하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두 사람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서로에게 마음을 기대는 일이고, 기댄다는 말은 의지하며 신뢰한다는 말이다. 느끼고 생각하는 일, 감성과 지성은 인간의 구성 조건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감정을 주고받는 일은 실은 논리적 관점을 일치시키는 일보다 원초적이고도 선행되는 조건이다.


        뇌의 해부도가 보여주는 발달 과정은 인간이 감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동물임을 입증하는데, 이는 또한 진화론적 관점과도 일치한다.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 사람의 뇌는 순차적이고 위계적으로 발달한다. 우선 호흡과 신체의 체온 유지 움직임의 밸런스 유지 등 기초적인 생명 유지를 담당하는 소뇌 (또는 파충류 뇌)는 척추와 연결되어있다, 감정중추로 불리는 변연계는 (포유류 뇌) 소뇌보다 상층부, 뇌의 심층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소뇌보다 나중에 발달한다. 원시 뇌는 감정을 담당하는 중추로서 감정 경험과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에 필수적인 기관인 해마와 히포 캄푸스, 시상과 시상하부 등을 포함한다. 이 기관들은 출생 시에 이미 발달이 완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영유아들은 비록 자신의 감정적 경험을 언어로 표현해 낼 도리는 없지만, 그들의 감정을 경험하고 기록하는 일과 관련된 하드웨어는 이미 충분히 기능을 발휘한다. 마지막으로 인간 고유의 이성적이고, 고차적 논리를 가능케하는 영장류 뇌라고 불리는 신피질은 출생 이후 긴 시간을 거치면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청년기에 와서야 성장이 완료된다. 이 같은 발달 해부학적 사실을 두고 볼 때, 인간이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기 마련인 감정의 동물이라는 말은 수긍이 가는 사실이다. 변연계 (또는 포유류 뇌)와 신피질 (영장류의 뇌)은 뉴런들의 접점인 시냅스라는 지극히 마이크로 한 공간을 통해 교환되는 무수한 전기적 화학적 활동을 통해 감정과 이성의 명령들을 기능적으로 의사소통하도록 되어 있다. 실은 교육의 목적이란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이성과 감성의 통제센터인 (영장류 뇌와 포유류 뇌가) 두 구조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제어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훈련을 하는 데 있기도 하다.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흥분했을 때, 냉철한 논리적인 조언이라는 직구를 던지는 것 보는, 감정적인 공감을 우선 보여주어 포유류 뇌를 진정시키는 1차 응급 처지를 하고, 신피질의 작용인 이성과 논리적 조언이라는 붕대를 2차로 감아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설득의 코스라는 사실은 뇌구조의 위계를 살펴볼 때 충분히 납득이 된다. 따라서 너와 내가 서로에게 마음을 기대고 감정을 돌보아 준다는 것은, 위계적으로 구성된 뇌의 원초적 기능을 잘 다스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 과정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관계 맺기와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90년대 이후 쏟아진 수많은 심리학의 정서 이론들은 정서지능, 감성지능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모델들을 제시하며 성공적인 삶과 행복에 이르는 키 포인트로 지능 담론의 무게에 짓눌린 감정 능력을 회복하고 어려서부터 잘 개발하여 행복한 삶을 향해 인생을 들어 올리는 지렛대로 쓰기를 강조하여 왔다.


감정의 해부학: 감정에 관한 앞선 논의들.


        그렇다면 인간을 이루는 질료의 하나인 감정 emotion 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겼는가. 감정은 외부 자극이나 대상에 대해 유발되는 주관적인 기분과 감정, 그에 근거한 행동적 대처, 그리고 대상에 대한 인지적 평가까지를 포함한다.  데카르트는  일찍이 정념이란 (Passion) 단어로 감정과 정서의 개념을 설명하였다. 그는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감정을 경이(驚異), 애정, 증오, 욕망, 비애(悲哀)등 다섯 가지로 보았는데, 이런 감정들은 타인들에 대한 반응으로 유발되는 것이지만, 정작 개인들은 이 같은 감정들이 자신 안에서 스스로 유발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하였다. 정념에 대한 논의는 곧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하는 도덕 행동의 차원으로 이어진다. 데카르트와 동시대를 살았던 스피노자는 그의 저서 Ethica에서, 48가지나 되는 감정을 정의하고 분류한 바가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윤리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  스피노자가 파악한 48가지의 감정에는 데카르트가 정의했던 다섯 가지의 기본 감정은 물론, 흥미롭게도 음주욕, 박애, 동정, 연민, 후회, 과대평가와 같은 복잡한 차원의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다아윈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동물의 행동 양상들을 다룬 책 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 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란 경험이나 훈련을 통해 획득된 것이 아닌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파하였다.  다아윈은, 인간과 동물의 정서에는 연속성이 있다고 보았다. 즉,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과 동물이 공히 기본 기쁨, 슬픔, 즐거운, 공포 등의 기본 감정을 느낀다고 보았다. 

현대 심리학에서의 정서 연구는 이같은 철학적 논의의 바탕 위에서  진행된다.

         가까이로는 1970년대에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경험적 연구를 토대로 다윈이 주장했던, 감정의 생득적 기원에 관한 증거를 밝힌 바가 있다. 그는 문명의 이기로부터 고립되어 살아온 섬사람들의 기본 감정을 살펴봄으로써, 전 지구적이며 보편적이고 생득적인 것으로 보이는 여섯 가지의 기본 감정을 확인하였다: 기쁨, 슬픔, 화남, 놀람, 공포, 혐오. 추후의 연구를 통해 경멸이라는 감정도 기본 감정의 목록에 추가하였다. 폴 에크먼이 영화 제작에 컨설턴트로 참여했던 작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놀람과 경멸을 뺀 다섯 가지 감정을 주제로 다루었던, 정서의 해부학에 관한 좋은 영상 교재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영화는 또한 감정이라는 추상성을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분석하여 접근하는지, 감정을 대하는 미국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인간이 경험 가능한 정서와 감정의 종류를 연구한 보다 최근의 결과에 의하면 , 문화권에 따라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종류에 300가지가 넘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다



기본감정과 이차적 감정


    앞선 철학자들이 확인하고 명명했던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들은 원초적이며 생득적인 것으로 변연계의 흥분으로 각성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과정은 신체의 각성을 동반한 자동적 반응이며 의식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반면에 어떤 대상을 경함한 후에 대상에 대한 판단을 내리거나, 인지적 숙고를 거친 후에 발생하는 감정을 이차적인 감정이라 하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신피질의 의식작용 또는 인지적 작용을 거친 후에 발생하는 것으로 일차적 감정과 행동 사이를 중재한다고 볼 수 있다. 감정적/정서적 반응들이란 대채로 무의식적으로 발생하지만, 의식작용이나 인지적 작용에 의해서 우리는 유발된 감정에 기초한 그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흥미롭게도 화가 났을 때 우리 신체에서 가장 많은 혈액의 집중을 보이는 부위는 주먹이고, 공포를 느끼거나 놀랐을 때는 다리에 가장 많은 혈액의 흐름이 집중된다. 변연계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의 유발은 즉각적으로 생리학적 신호를 유발해 신체 부위에 다음 단계의 행동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신피질의 작용으로 이 과정에 의식의 작용이 개입했을 때, 화남에 대한 반응으로 즉각적으로 주먹을 날리는 대신 다른 대안적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그 과정을 중개하는 것은 교육과 사회화 과정이다.   


감정의 통치학: 예와 수치심이라는 도덕적 장치


        인간을 구성하는 질료로서의 인간의 감정에 관한 동양의 논의를 살펴보면, 사회의 통치철학의 근간이 되어왔던 공자의 논어에서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 칠정을 들고 있다. 하지만, 감정을 논하는 데 있어 핵심은 감정의 본성 자체를 논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질서를 위해 이러한 원초적 감정들을 어떤 식으로 통제하고 조절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었고, 결과적으로 도덕 행동과 도덕 교육을 논해왔다. 희로애락 애오욕을 다스리기 위해 제정된 행동 지침은 "인(仁), 의(義), 예(禮), 지(知), 신(信), 도(道), 관(寬), 문(文), 불기(不器)"의 도덕 행동 규범이다. 이를 "예법"이라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규범이자 행동지침으로 삼고 독려하여왔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한 것이라고 믿었던 공자께서는, 이 선한 본성이 예를 범함으로써 사회의 질서와 균형을 깨트렸을 때, 또는 사회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겪게 될 사회적 지탄과 수치심을 행동 통제의 장치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한편, 공자의 통치철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경전이 나열한 "예의"를 행하는 것을 사회적 규범으로,  "학문"을 숭상하고 일생을 통해 학문에 힘써 입신양명하는 것을 군자의 최고 가치로 숭상하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가치체계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대한민국 건국 백 년... 한국의 정신세계는 유교의 통치철학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을까. 지. 덕. 체의 지독한 불균형이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까지 지 (知)와 문 (文)을 숭상하고 입신양명이 지상 최대의 가치로 추앙받는 현실은 어째서 21세기에도 유지가 되는가? 모두의 눈길이 서로를 쳐다보는 집단주의의 정서에서는 모두가 한쪽 방향으로 달린다. 이런 사회의 일치성은 혼자 다른 쪽으로 뛰는 행위를 덜떨어진 것으로 또는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고, 이로 말미암아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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