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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Oct 19. 2019

암스테르담-라보엠 호텔의 안주인 미미 양

 



비엔나 공항의 외벽은 물론 실내의 대형 광고판엔 삼성 갤럭시 노트와 전화기의 광고로 도배가 되어 있어 반가웠다. 이번 여행에서는 미국 공항 두 개,  유럽 공항 두 개, 총 네 개의 공항을 이용했는데 놀랍게도 모든 공항에서 요원들이 내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심지어는 삼엄하고 무섭기 그지없는 우리 동네 조지 부쉬 공항에서 조차도 그랬다. 비자에 스탬프를 찍거나 키오스코로 안내하는 요원들은 옅은 미소와 함께 안녕하세요, 또는 감사합니다를 짧게 건넸는데, 그럴 것 같지 않은 장소에서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알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지... 심지어 내 여권의 발행국은 캐나다인데도 말이지. 그들이 건넨 인사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는 것을 인식하는데 몇 초가 걸렸다.. 의례적으로 thank you, have a nice day 하고 돌아서던 나는 그들을 다시 뒤돌아보면서 “지금 안녕하세요 라고 하신 겁니까?”라고 되물어야 했다. 우리 동네 그로서리와 꽃가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유럽의 공항 요원들조차 나를 알아보다니!! 한국 여행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제 아무리 한류가 유행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다 전 유럽의 공항 안과 밖을 광고판으로 뒤덮은 삼성 갤럭시의 국위 선양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드골 공항에서는, 수하물을 리셉션 하던 노란 머리의 프랑스 아가씨가 “(당신 가방 무게가 초과돼도) 나는 괜찮아~~ 그냥 가~~” 이렇게 한국말로 나풀거리며 정해진 룰을 뛰어넘는 호의를 베풀기도 했었다. 다이나믹 코리아를 실감한다. 대한항공 같으면 100불의 추가 요금을 물어야 하는 경우였다.


저녁 일곱 시 비행기로 비엔나를 떠나 두 시간을 날아서 대륙의 가장자리 북해 연안의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어둠이 내리는 구대륙의 지상은 비에 젖어 있었고, 밤을 맞는 도시의 노랗고 하얀 불빛은 드문 드문 빛나고 있다. 비행에는 빈자리가 많았고, 승무원은 영화배우가 대사를 읊듯 감정을 실어 입체적 멘트를 내보내고 있어 온통 주의를 집중시켰다. 형식적이고 건조한 안내 방송을 저렇게 드라마틱하게 내보낼 수 있다니... 안내 방송을 하는 승무원은 배우 지망생이거나 전직 배우가 아니었을까... 공항을 빠져나오기까지 수하물을 찾는 대합실과 터미널이 연결된 공간은 참 어수선해서 한국의 고속버스 터미널을 연상케 했다. 우버는 10분 정도 걸려 도착했는데, 친절한 기사분은 인도 출신인 듯 보였다. 우버 앱을 통해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비용 지불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간편하고 드라이버와 탑승객의 언어가 달라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앱에는 예약된 차량이 움직이는 궤적이 실시간으로 표시되면서 탑승까지 몇 분이 남았는도 표시되어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차에 오르면 간단하게나마 인사라도 하고 몇 마디 나누게 되기 마련인데 대화를 편하게 하는 기사들은 대개 아랍인들이거나 인도인들이다. 파리나 비엔나의 자국인 우버 드라이버들은 실내의 온도를 높이거나 낮춰달라는 간단한 주문을 하면 못 알아들어 난처한 기색을 보이곤 했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어 울렁증은 만국 공동 현상인듯해서  말을 안 붙이는 것이 예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뉴저지의 공항에서 뉴욕으로 들어가는 길에 만났던 우버 기사는 중동에서 이민을 온 대학생이었는데, 강의가 없는 날과 강의를 마친 오후에는 우버를 운행하며 생활비를 번다고 했다. 그는 이미 30대였지만, 공부를 마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다. 자신의 나이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일과 공부를 독립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미국이라는 시스템에 감격하고 있었고 -그는 중동국가에서 이민 온 젊은이였다-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직업으로 우버를 운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대학생이든 가정주부든 여건만 허락하면 언제든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고 제공자와 소비자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 공유경제는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한다... 아닌가.....? 택시 기사 자격증이 국가 공인 영업 허가증인 런던과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제도의 도입을 막는 한국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밤이 꽤나 깊은 시간이었지만, 공항에서 숙소까지 달리는 동안 거리를 밝힌 숫한 상가의 불빛과 잠들지 않는 심야의 활기에서 암스테르담이 내륙의 유럽과는 북미대륙과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지난 도시임을 짐작했다. 어두워 거리의 모습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자유분방한 분위기로는 마치 한국에 돌아온 것 같기도 했는데, 열 시가 넘은 시간에 자전거를 탄 젊은이 무리들이 거리낌 없이 고속으로 질주를 하는 모습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 온 것인가?’라는 의심을 일순간 자아냈다.. 그들은 헬멧이나 그 어떤 보호장비도 없이 가방을 메기도 한 채로 마구 달리고 있었는데, 심지어 젊은 연인들은 손을 잡고서 각자의 자전거를 달렸다. 헬멧도 착용하지 않은 심야의 스피드 레이서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남편에게 “재들이 들으면 아마 스투피드양키고홈.”이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말해 주었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델프트 공대 출신의 동료는 암스테르담에 가거들랑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었다고 했다.



숙소는 Leidseplein이라는 지역에 있었는데, 미술관과 극장이 밀집된 곳으로 젊은이들 모여드는 환락가 한가운데다. 맨해튼으로 치자면 브로드웨이 한가운데 숙소를 잡은 거였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토요일 밤이었는데, 숙소가 가까워지자 경찰이 도로를 막아놓고 교통통제를 하고 있었다. 우버 기사님이 경찰에게 무어라고 설명을 하자 경찰은 길을 터 주었다. 호텔 정문에는 “run around and go panic. we are fully booked and closed.”라는 문구와 우리를 놀리는 고양이 한 마리가 그려진 사인이 붙어 있다. 이 무슨 정다운 인사냐....?? 벨을 눌러 리셉션과 통화를 하는 동안 문이 열렸다. 리셉션 로비와 바와 아침 식사 공간을 겸한 협소한 공간에 들어서자 약 20년쯤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백 년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Hotel La Boheme은 고전적인 혹은 전통적인 암스테르담 주택 양식을 고수한 건축물이었던 반면, 운영하는 분위기는 아주 개성 강한 젊은 영혼이다. 수천 개의 리뷰 평점이 4.4/5.0로 나쁘지 않았지만 규모는 평생 다녀본 중 가장 절대적으로 아늑했다. 가족이 경영하는 방 열일곱 개짜리 호텔의 리셉션 통로는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일층이라면서 2층에 위치한 우리 방은 무려 퍼스트 클래스 급이다. 방이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만큼 작다. 침대 하나와 클로짓이 놓여 있는 공간엔 케리어 두 개를 들여 넣으면 운신할 공간이 없다. 이건 잠만 자는 공간이라는 뜻인데....... 오전에 떠나온 비엔나의 레지던스급 호텔에서 암스테르담의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급 규모로의 공간 압축은 순간적인 패닉을 유발했다. 여기에 욕실까지 들어가다니, 일본인들도 못 해낸 암스테르담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깎아지른 좁은 계단은 평균 사이즈의 여유 있는 체격을 가진 미국인들은 이용이 불가능할 듯해 보인다. 평지뿐인 네덜란드에서 계단 오르기 등산 체험을 하는 것은 덤이다. (이틀 후에 다녀온 렘브란트가 살았던 집의 계단은 이 보다 더 좁고,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다. 3-4층 정도 되는 어두운 계단이었다. 이 극장가 한가운데가 아닌 좀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 체인으로 운영되는 이름 있는 호텔이 비용대 효과면에서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화적 충격과 예상 밖의 체험 상태라면 나도 뭔가 일탈적인 행동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여행가방에 넣어온 베트남 믹스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이 상황은 우리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는데, 달달한 커피는 진가를 발휘했다. 중요한 것이 호텔 내부가 아니라 분명 바깥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잠을 이루기 싫었지만, 내 옆에는 자정을 넘은 시간에 여행지 탐색에 나서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안전제일 주의자가 버티고 있었다. 우리가 이 호텔에 묵게 된 것은 이렇게 허탈하게 웃다가 잠들라는 뜻이 아닐 거라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내 주장은 무시당하고 다음 날 아침을 기다렸다. ‘잘 생각해봐... 지금이 잠을 잘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밖에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읋조리며 잠에 빠졌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가서 미미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는 가장 넓은 부스를 차지하고 앉아 미동 않고 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이 미미이고, 호텔 라보엠의 주인공은 열아홉 살 난 고양이 Mimi다. 미미는 호텔의 마스코 트라기보단 안주인에 가까워 보였다. 실내 벽에 그림을 걸 수 있는 모든 공간에는 미미의 사진이 걸려있어, 열아홉 살 미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이곳은 명실상부한 미미 박물관이 되는 것이다. 브랙퍼스트 공간에는 미미의 코, 미미의 수염, 미미의 오른쪽 눈을 글로즈 업 한 사진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미미는 좋겠네.... 이렇게 지극한 사랑을 받으니.. 우려반 기대 반이었지만 아침에 만난 주인장은 친절하고 서글서글했고, 올게닉으로만 준비한다고 하는 오이와 방울토마토는 힘찬 색이었고 싱싱했으며 네덜란드식 아침 식사는 간소했으나 만족스러웠다. 호텔의 정면에는 초현대식으로 단장한 붉은 조명과 유리벽의 극장이 위치하고, 창 아래로는 전철이 지나다녔다. 그리고 역시 그랬던 거다. 우리가 곧 미미 박물관이 될지도 모르는 퍼스트 클래스급 호텔방에서 웃다 지쳐 잠을 청하며 시간을 낭비하던 그 무렵, 차량 통행까지 제한된 호텔 뒤쪽의 거리에서는 온갖 극장 공연을 마치고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밤새 파티를 벌이며 토요일 밤의 불야성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토요일 밤은 비도 내리지 않았고, 기온도 너무 차갑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든 토요일 밤의 암스테르담의 브로드웨이는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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