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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Oct 18. 2019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백합 향기로 기억되는 대리석 궁전

비엔나에서 3일을 보낸 후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은 야간으로 계획되었다. 덕분에 비엔나를 떠나던 날은 미술사 박물관에서 15세기 이후의 그림 속에 녹아있는 유럽의 풍경과 이야기에 빠져들어 하루를 보냈다. 미술사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어진 거대한 궁의 실내는 온갖 색상과 패턴을 가진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었는데, 그 색상과 무정형의 패턴이 어쩜 그렇게나 다양한지.... 인간이 그린 추상화는 자연이 시간과 압력으로 돌에 세긴 추상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양한 무늬와 색상의 대리석을 마치 거대한 타일처럼 사용해 웅장한 건물의 내벽을 장식하고 있다.


 향기로도 기억될 이 미술관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서 있던 백합이 진한 향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백합향이 진하다 해도 이렇게 큰 공간을 향기로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엔나와 암스테르담의 호텔 로비와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카페나 미술관에도... 생화가 놓여서 공간에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Hofburg 궁의 일부인 미술사 박물관의 라운지 코플라 카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세상에 없을 돌 구경을 했다. 호피 무늬를 한 대리석이라니..... 라운지 기둥은 흑백 대리석인데 손풍금의 접히는 부분처럼 만들어서 검은 커튼을 드리워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돌인데도 불구하고...


미술사 박물관이 인상적이었던 점은 거대한 전시 갤러리 중간중간에 유리문을 달아 공간을 분할하고 또 단위의 공간 안에서도 작가별로 전시 패널을 마련함으로써 공간을 구획했던 점이다. 전시 패널 역시 일자로 세워 놓은 것이 아니라 끝이 벌어진 ㄷ자 모양으로 세워 놓아 보는 사람의 시각장이 한정된 범위 안에 수렴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구분된 공간 안에는 적정 인원의 관람객이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관람을 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공간을 구획화하고 유리문으로 차단해 놓은 것은, 적절하게 닫힌 시각장을 형성함으로써 관람객의 피로를 굉장히 덜어 주었던 것 같다. 또한 갤러리 가운데 360도로 앉을 수 있는 소파를 충분히 마련해 두어 앉아서도 사방 벽의 그림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관객을 위한 세련된 공간적 배려가 호프버그 궁의 미술사 박물관에서 느껴졌다면, 광활함을 자랑하던 루브르의 전시관은 대조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루브르는 공간의 섹션화가 최소한으로 이루어져 있어, 엄청난 양의 마구 걸린 그림뿐만 아니라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 많은 인파들이 시야로 함께 쏟아져 들어와 무척이나 쉽게 피곤해졌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확 트인 복도를 따라가며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란 거의 노동에 가까웠다고 말하고 싶다. 미술관 건축을 비교하려 했던 것은 아니나, 루브르 미술관은 그림을 보며 좋아한 기억보다 건물이 사람을 압도했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루브르에선 너무나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서 여행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여력도 없었던 듯.... 물론 루브르의 규모 자체가 호프버그에 비할 수 없이 광활했다. 하지만 호프버그의 적당한 웅장함과 단정한 아늑함이라니....


그림이 재미있기로는 역시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최고다.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운 16-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이 엮어 내는 바쁜 이야기들은 거대한 서사를 담고 있기보다는 현실의 생생하고 아기자기한 현장을 중계하는 듯했다. 거대 서사와 역사서를 재현했다 하더라도 설정은 당대의 풍경을 덧입혀 관객들에게 최고도의 공감을 끌어내고자 했으므로, 네덜란드의 풍석화가 피터 브뤼겔의 화면은 몰입도 최고의 화려한 오케스트라 연주 같았다.

Children’s game, 1560년.
이 그림에서 무려 230명의 아이들이 83가지 다른 놀이를 하는 풍경. 놀이에 있어서도 더치들은 못 당한다... Don’t mess with Dutches... 무질서한 듯 보여도 소실점은 유지되고 있다.


Peasant Dance, 1568년경. #KunstHistorischeMuseum, Vienna.

Peasant Wedding, 1568년 경. Flemish 농민들의 혼인 풍경. 해설에 의하면, 플레미시 전통에 의해 신랑은 잔치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아니 왜?? 주인공이 아니시던가?), 신부는 녹색 타피스트리 앞에 앉는다.  그림 전면에는 두 일꾼이 문짝을 떼어 잔치에 먹을 죽 (Porridge)을 옮기고 있다. 잔치 음식으로 죽을 먹었다니.... 좀 슬퍼지려고 했다. 한국식 국수보다 나았을까? 죽이란 아플 때 먹는 유동식이 아니던가? 어쨌건 죽을 옮기는 사람들 자세가 재미있다. 앞사람 모자에는 숟가락도 꽂혀있다! 오른쪽 끝에서 부터 잘 차려입은 이는 영주, 그다음은 수도사, 변호사.

Hunters in Snow (Winter), 1565년.
어깨에 창을 매고 개들을 이끄는 사냥꾼들. 왼쪽은 돼지를 잡아 그슬리기 위해 불을 피우는 사람들. 원경에는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Winterlandscape with Bird-Trap, 1601년.
같은 작품이 무려 100 점이나 다시 그려진 것을 보면 그의 그림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한가로이 스케이트를 타고 컬링을 (!)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새를 잡는 덫이 놓여있다. 캐나다에 가서야 그 나라의 인기 있는 실내 운동인 컬링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얼음 위에서 하는 운동이라지만, 정식 운동 종목으로서의 컬링은 계절 운동이 아니라 실내 운동이었다. 여름에도 아이스 스케이트장은 성황이듯이.... 아울러 그림에서 새 덫은 인생을 사는 동안 항상 깨어있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라는 해설이 쓰였다. 이 그림은 지난봄에  출간했던 저서의 첫 장을 장식했던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역시 유희의 인간, 노는 풍경을 담은 그림에 우리는 본능적 친근감을 느끼는 거다. 모지스 할머니가 그린 것은 미국의 원초적인 풍경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원초적 풍경이었던 도 모른다.


책과 관련하여서는.... 이번 달에 6쇄에 들어갈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불황의 출판 업계를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출간을 했는데 4월에 출간해서 6쇄까지 왔으니 출판사에게는 미안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행이다. 어느 저자인들 그렇지 않겠는가마는, 스스로 느끼기에 내용에 관해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아,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개정 증보 작업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 피터 브뤼겔이 전하는 그 옛날 네덜란드 겨울 왕국의 삽화가 들어간다면 미진한 기분이 1/20 정도 덜어질지 모르겠다. 반가워요 브뤼겔 님.....

1층의 Egyptian관에서 눈에 띈 흙으로 장난스럽게 만든 화병. 토토로 얼굴을 닮은 토기도 귀엽고 각자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넣은 눈 코 입을 가진 토기들이 무척 유머스럽다. 우리 동네 꼬마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어질 듯... 역시 유희의 인간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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