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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Oct 16. 2019

비엔나-암스테르담 ; 분주한 거리의 익숙한 느낌


평소에는 커피 한잔을 아침 식사로 점심을 훌쩍 넘길 때까지 버티곤 하지만, 여행 중에는 계획한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제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기가 쉽지 않기에 아침 식사를 꼭 챙겼다. 미국 호텔들이 대체로 아침 식사에 필수적인 아이템들을 한 가지씩만- 여러 종류의 시리얼과 견과류의 토핑, 몇 가지 종류의 빵, 따뜻한 오플렛과 소시지, 과일 몇 가지, 커피와 음료 등을 - 제공하고 있어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기보다는 얼른 먹고 일어나 목적지를 향해 출바알~하게 되는 것과 달리, 유럽의 호텔들은 대여섯 가지의 치즈와 대여섯 가지의 햄과 소시지 때로는 훈제 연어까지, 그리고 갖가지 종류의 방금 만든 요거트를 기본으로 온갖 종류의 곡물과 씨앗을 넣어 구워낸 각양각색의 따뜻한 빵과 과일, 여러 가지의 향긋한 과일차와 에스프레소 등으로 브랙퍼스트를 제공하는 덕분에 식사의 속도는 느려지고 시간은 기꺼이 길어진다. 과일차는 티팟에서 7-10분 정도 우려내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무척이나 달콤해지고 맛이 풍부해져서, 식사를 거의 끝내고도 과일차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곤 한다. 작년에 묵었던 프랑크푸르트의 호텔에선 중국식 면과 베트남식 쌀국수까지 준비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동양식 음식까지 갖추어 놓은 것은 EU의 금융중심지라 금융 관련자들의 비즈니스 출장이 많았던 덕분이라 생각했다.



유럽 여행은 어디까지나 걷고 걷고 또 걷는데 의의가 있는 바, 일주일간 매일 걸었던 거리가 약 10km/day, 15000보 정도 되었다. 든든하게 식사를 한 후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걸었으나 전혀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친 다리를 쉬기 위해 한번쯤 카페엘 들러야 했으니, 백 년도 더 된 오래된 카페로 가득한 도시에서 당연한 듯 sperl cafe 스펄 카페를 골라 들어간 것이 둘째 날이다. 셋째 날은 미술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프 버그 왕궁의 2층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펄 카페는  25년 전 소년과 소녀의 티를 갖 벗은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심야의 비엔나를 종횡무진 걸어 다니다 들렀던 바로 그 심야의 카페다. 스펄카페 역시 굉장히 높은 천정에 세월을 증명하는 듯 부스의 패브릭은 닳아 있다. 미국에서는 절대 안 먹는 휘핑크림 얹은 커피, 아인슈페너를 180년 된 스펄 카페에 온 김에 한번 마셔 주었다. 얇은 밀가루 반죽 위에 사과 슬라이스를 산처럼 얹고 계피와 설탕을 술술 뿌려 밀가루 반죽을 통째로 여러 번 둘둘 말아 구운 애플 스트루델은 켜켜이 쌓인 사과의 결을 셀 수 있다. 일습으로 판매되는 애플 스트루델 키트를 사다가 아이들에게 자주 구워주곤 했으나, 그것은 애플 스트루델의 이름과 향기만 빌린 손쉽게 굽는 빵이었다. 홑이불처럼 얇고 길게 펼쳐놓은 밀가루 반죽에 사과 슬라이스를 잔뜩 얹고 시나몬 설탕을  술술 뿌려 돌돌 말아 굽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서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애플 스트루델을 한번 구워보고 싶었지만, 게으름은 호기심보다 힘이 셌다. 형태가 뭉개진 진득한 애플 코블러나 애플파이보다 비엔나의 애플 스트루델은 훨씬 산뜻하니 집에 돌아가면 적은 양이라도 만들어 보고 싶어 졌다. 우리 앞자리에 앉은 젊은 부부들이 갓난아기를 데리고 와 식사를 하는 모습은 무척 편안해 보였다. 한 상 받아든 식사를 마치고도 느긋하게 오후를 즐기며 아기를 얼르다가, 창 밖을 내다보다가, 카페에 들어온 사람 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는 젊은 부부들에겐 세상에 바쁠 일이라곤 없어 보였다. 평화로운 평일 오후.


자허 토르트 (자허 케익)는 비엔나를 대표하는 디저트인데, 신 살구잼과 다크 초콜릿으로 만들어 시고 쓴맛이 난다. 첫날 아침 들렀던 훈데르바서 빌리지에서 자허 토르트- 자허 케이크를 통조림 캔에 담아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 신기했는데, 전쟁을 많이 치른 나라라 그런지 케익조차도 비상식량처럼 또는 군인 식량처럼 포장해서 팔고 있었다. 신맛과 쓴맛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초콜릿 케익이라 반가웠으나, 스펄 카페의 자허 케익은 쓴맛이 강하지 않고 케익은 케익이라 달고 신 쨈 맛이 났다. 별것 아닌 비엔나 소시지의 톡톡 터지는 소리와 가늘게 저며서 내는 무말랭이 모양으로 생긴 호스 레디쉬와 겨자에 소시지를 찍어먹는 것에 재미가 들린 남편은 가늘고 긴 두줄의 소시지-프랑크푸르터-를 매일 한 접시씩 주문했다. 순전히 뜨겁게 익은 가느다란 소시지가 씹힐 때 내는 톡톡 터지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렇게 별것 아닌 것들에 마음이 환해지고 소소하기 그지없는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는 마음은 나이룰 잊는다. 그렇다고 매일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만 먹고 다닌 것은 아니었고, 점심 대신 골른 카페의 메뉴들이 그랬다.


스펄 카페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조용한 언덕배기 동네에 위치한 Alt & Neu라는 중고 레코드점이 나타난다. 여기까지 와서 중고 레코드점이라니.... 하지만 들러야 했다. 결혼하기 전 우리가 늘 다니던 코스는 광복동의 신보들을 판매하던 대형 레코드점과 뒷골목을 돌아가면 나오는 중고 레코드점... 부산의 유명한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는 71년도 발매된 이작 펄만과 앙드레 프레빈이 연주했던 a different kinf of blue를 간절히 구했으나 찾을 수 없었고,  전위적 오페라로 간주되는 필립 글래스의 "아인슈타인 온 더 비치"는 구할 수 있었다. 무려 세장의 시디에 담겨 다섯 시간 동안 연주되는 이 곡은 참 충격적이었는데, 구입한 뒤 두세 번 들었고,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을 골려주기 위해 틀어주곤 했다.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백남준의 비디오의 배경음악 같은 곡이고, 좀 더 고전적으로 표현하자면 싸이 트왐블리의 scribble 같은 전위적인 음악이다.


Alt & Neu 옆집은 중고 책방이었는데,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신기하게도 낡은 책방에 가득하기 마련인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글을 몰라도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화집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고, 독일어로 쓰인 책을 읽을 지력은 되지 않아 곧 옆집인 중고 레코드점으로 옮겼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예상치 못했던 신기루 같은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바꾸어가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 듯 꽤나 많은 젊은 사람들로 붐볐다. 율리아 피셔의 바흐 소나타와 파르티타, 안네-소피 무터의 차이코프스키 연주를 골랐다. 남편은 마음 좋아 보이는 얼굴이 발그레한 주인장에게 말을 걸었고, 주인은 잘 안다는 듯, 익숙하게 케이트 블룸의 Come Here를 틀어준다. 아는 사람만 알고 찾아오는 곳일 텐데 한국 아가씨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몇이 있었다. 그들도 영화를 보고 순례 중이었을까?

 



중고 레코드점을 나와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10분쯤 걸어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올라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는 교회와 약간은 무질서하고 분주한 마켓과 상가를 지나노라니 세상의 모든 도시가 이럴 것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여행을 왔다기보다 익숙한 곳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장과 버스와 걸어 다니는 행인들로 넘치는 거리의 분주함이라니.... 반갑다. 졸리는 서버번의 질서 정연함 속에 위치한 내 집을 떠나서야 나는 세상의 일반적인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인파로 붐비는 거리에서 느껴지는 반가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비엔나 상가 거리의 분주함 정도는 즐길 수 있었지만, 암스테르담의 분주함은 내가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운하를 적시는 차가운 부슬비와 비에 젖은 낙엽이 뒹굴던 보도를 밟아보는 일이 얼마만이었던지... 여행에서 기대하던 바로 그것이어서 신나 하며  국립 미술관으로부터 부둣가의 센트럴 스테이션까지 40분 정도를 걸었다. 그러나 부두가 가까워지며 점점 더 붐비기 시작하는 거리와 눈에 들어오는 압도적인 시각 자극은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우산을 썼지만, 차가운 공기를 헤쳐가며 과거의 풍경과 현대적 분주함이 뒤섞인 거리를 걷는 일은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암스테르담의 높고 오래된 -적어도 17세기에는 지어졌을, 어쩌면 그전에 지어졌을 -건물들은 엄청나게 많은 창문을 달고 있었고, 그 창문들 각각에는 개성을 자랑할 멕시멈의 자유도가 부여되어 있었던 거다. 운하의 가장자리를 따라 나란히 선 건물들은 화려한 개성을 자랑하는 수많은 창문을 장식처럼 달고서 여러 세기를 한결같이 서서 거리의 풍경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그 유구한 '바라봄'의 역사를 담고 있을 건물의 눈-창문-들을 마주보며 걷노라니 내 눈알은 뱅글 뱅글 돌지경이었다. 자극을 주지 않는 은은한 노랑색이나 밝은 회색으로 통일한 비엔나의 거대한 건물들, 그리고 같은 건물 내에서는 똑같은 모양을 한 비엔나의 수 많은 창문들이 주는 통일감과는 얼마나 대조적인 개성만발한 주인의식을 자랑하는 암스테르담의 건물들인가? 창문의 자율권을 주장했던 오스트리아의 화가 훈데르트바서의 생각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어렴풋이 알것도 같았다.  

케리어를 끌면서 비에 젖은 도로를 활보하던 그 많은 인파는 어디서 몰려왔던 것일까? 암스테르담의 무질서와 습기 가득한 거리의 극악한 분주함, 그리고 넘쳐나는 활기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는데, 20대에 다녔던 부산의 번화가 광복동과 남포동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한 느낌이었다. 부둣가의 번화한 상업지역이 내뿜는 강렬한 느낌은 말로는 형언하기는 어렵지만, 온 몸으로 느껴지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런 부둣가의 강렬하고 묘한 느낌을 부산의 광복동과 암스테르담 센트럴 지역이 나눠갖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부산을 느끼다니... 남편은 대항해시대를 선도했던 네덜란드의 조선해양기술의 본진에 들어와 정신적 고향을 느끼고 있었다. 이럴 수가.... 우리의 고향이 암스테르담이었다니..



애초에 암스테르담을 거쳐 영국을 가려던 경로를 비엔나를 거쳐 암스테르담으로 바꾸게 된 것은, 우리의 방문 시기에 영국에서 볼 것을 기대했던 레 미제라블 뮤지컬 공연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브로드웨이에서 레 미제라블이 막을 내리자, 남편은 재작년에는 유럽 출장 중에 런던으로 날아가 레 미제라블을 보고 돌아왔다. 어려서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었던 어떤 뮤지컬 애호가의 이야기를 내게 종종 들려주곤 했는데, 이야기는 주말에 뮤지컬을 관람하기 위해 런던에서 콩코드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가곤 했던 어떤 남자의 이야기였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십 대의 우리에게 참 좋은 읽을거리였다. 소년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빠른 물체들에 홀리기 마련이듯, 남편은 초음속 여객기라는 신기술에 홀렸고 뮤지컬을 동경하며 자랐다. 콩코드 운항이 중단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탑승 기회를 상실한 것은 아쉽지만, 뮤지컬은 가까이 있으니 뉴욕과 런던으로 열심히 보러 다닌다. 물론 브로드웨이를 갈 때는 늘 동행하지만, 빠르게 날아다니는 탈 것 들에도 뮤지컬에도 그다지 홀릭하지 않는 나는 그러고 보면 내세울만한 취향이라 할 것이 없는 심심한 사람이다. 런던에서 레 미제라블을 상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비엔나까지 가서 중고 레코드점과 서점을 찾아다니기로 했던 것이다. 레 미제라블의 대안이 영화 Before Sunrise의 성지순례였다. 그 영화의 주인공들보다 나이를 배로 먹은 지금 이건만, 25년이 흐르는 동안 마음이 한치도 늙지 않은 것이 신기하고 고마워서 주저 없이 따라다닌다. 카잔차키스는 또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늙을 때까지 자신의 젊음을 믿지 않으려는 마음을 거부하며 꽃피는 사춘기를 과일이 풍성하게 맺히는 나무로 키우기 위해 평생 투쟁을 계속하려는 자세 - 나는 그것이 충만한 인간의 길이라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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