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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Oct 31. 2019

3. 감정표현 불능증


동.서양 사회가 허용하는 감정 표현의 적절성: Display rule of emotion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감정을 표현할 것인지를 암묵적으로 규정한 사회적 준거가 있기 마련인데 이를 Display rule of emotion 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감정표현에 있어서 엄격한 유교의 영향권 아래 놓인 동양 사회는 서구 사회에 비해 다소 제한적인 규범을 설정해놓고 있다 (display rule of emotion). 감정표현을 내비치는 것을 성숙하지 못한 행동, 호들갑스런 행동, 단체의 조화를 깨트리는 행동 등으로 암묵적으로 규정하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감정표현이 소극적이고 표정의 움직임이 적다. 반면, 서양에서의 감정 표현에 관한 display rule of emotion 상대적으로 매우 허용적이고 특히 긍정성의 힘, 긍정적 감정의 표현을 독려하며 공교육지침으로 삼고 있다.

        유교의 레거시가 남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감정 표현이라는데 더해, 한국 청소년들,  특히나 고도의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하루 24시간 중에 절반 이상을 책상 앞에 앉아 지력의 개발에만 몰두케 함으로서 정서와 신체의 발달이 가지는 가치를 완벽하게 차별받으며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소아나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명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도와주는 일이 교육과 사회화를 담당한 부모와 선생님의 중요한 몫 일터이나, 앞서 말했듯이 지독하게 지력을 편식하도록 만드는 한국적 상황은 개인의 신체와 정서의 텃밭은 황폐하게 내버려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상황에 처한 개인들은 지적 발달과 정서적 발달 간에 상당한 괴리를 겪게 될 확률이 높다. 청소년기를 관통하는 공부라는 이름의 지력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경쟁력까지 만충전된 상태로 성장하는 학생들이 스스로의 감정과 마주 앉아 진지한 시간을 가져볼 시간적 여유. 심리적 여유란 없다.  높은 학업적 성취가 지상 최고의 과제인 한국이라는 사회의 규준이 얼마나 아이들을 서둘러 애어른으로 만드는지...  머리는 어른인데 정서적으로는 미숙한 성인으로 자라난 개인들이 겪게 되는 문제 중의 하나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할 것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유전이나 신경학적인 문제로 발병하는 자폐나 아스퍼거를 앓는 것이 아님에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못해 타인과의 정서적 의사소통에 곤란을 보이는 사람들이 주변에는 있다. 청소년들에게는 지식의 가이드는 차고 넘치지만,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앉아 감정 인식과 자기 감정을 다루는 법에 관해 배워볼 여유가 없었고, 스스로 깨치는 지혜를 터득하기엔 그들은 아직 어리다. 그나마 책상 앞에 자아성찰이라도 붙여놓고 애매하고 모호한 자신의 감정과 자아의 상태의 노려보는 고통의 시간을 자처했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교문을 빠져 나왔을 때에는 너무 촘촘해진 신피질과 반대로 신피질의 무게에 억압당한 멍한 상태의 변연계를 갖고 졸업을 하는지도 모른다.


얼어붙은 감정: 감정표현 불능증 Alexithymia, Emotion Blindness


          어휘력이 부족하고 감정체계가 한참 발달 중에 있는 소아와 청소년들의 경우는 발달 과정 상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청년기에 들어서고 장년기를 지나면서도 이 자신의 감정을 감지하고 표현해내는 것이 곤란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이 느끼는 어떤 감정적 흥분의 정체를 정확하게 꼬집어 인식하기도 또 그것을 정확한 단어로 이름 붙이기가 쉽지는 않다. 일찌기 정신의학자 Sifnoes (1973)는 심인성 통증(psychosomatization)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이같은 공통된 성격특성을 Alexithymia라 명명하고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라틴어를 합성한 단어로 a= lack,  lexis=word, tymos=emotion 이 성격적 특징은 그 명칭에서 자명해진다. 감정표현 불능증이라 하는 이 상태는 임상적 진단명이라기보다는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신체적 장애로 표현하는 신체화 장애를 보이는 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성격 특징이다. 누군가는 뭣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나쁘고 기분이 나쁘기에 그날 하루는 모두에게 불친절하고 오랜 시간 마음에 정체 모를 앙금이 남아 있는 날들을 경험한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 일 수도 있고, 무엇인가를 향한 억울한 감정일 수도 있고, 누구를 향한 질투이거나 또는 분노라는 감정일 수도 있고, 한계에 부딪힌 좌절이라는 감정일 수도 있고, 자신에 대한 실망 또는 친구에 대한 실망의 감정일 수도 있다.  

         Nemiah라는 또 다른 정신의학자는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일이 명확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대인관계에 있어서 타인의 감정인식도 부재하다고 전한다. 예를 들면, "기분이 꿀꿀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차분히 앉아 그 꿀꿀함의 기원과 정체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는 편이 "꿀꿀함"을 털어내는데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지만, 우리는 또 "그런거지 뭐" 하고 "꿀꿀한 기분"을 존재의 조건인 양 치부하고 가슴에 묻고 지나간다. 그런 날들이 연속되다보면, 어느 순간 대인관계의 곤란을 느끼고, 때로는 분노 폭발을 보인다든지, 갑작스럽게 눈물을 터뜨리거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 물으면 "내 마음 나도 몰라.." 대답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마주해야하는 날이 오기도 한다. 기본적인 희노애락이라든지 공포 놀람 혐오 등의 감정을 경험 할 때, 신체적인 각성이 동반되기 마련인데 (심박수가 변한다든다, 손에 땀이 난다든가, 주먹이 쥐어진다든다, 얼굴이 찌푸려진다든지, 눈이 휘둥그레 진다든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고조를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신에 신체적 각성을 감정 해석의 단서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분노나 슬픔 걱정이 있을 때 이를  복통, 두통, 위장장애, 과민성 대장염 등등으로… 신체척 증상으로 대채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이런 문제들로 심인성 증상으로 오인받기도 하고, 따라서 과도한 의학적 감사나 치료법을 동원하게 되고 여타의 합병증들을 낳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진 사람들은 높은 불안장애 발병률을 보인다 (시험을 앞두고 배아프고 머리아픈 청소년들은 시험이 불안한 것이다).  또한 공황장애 환자들의 45-65%에서 감정표현 불능증이 병발 comorbid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역시 불안이 기저에 놓인 강박장애의 경우에도 높은 비율로 감정표현 불능증을 보고한다.


유교의 전통, 한국 사회가 낳은 심인성 장애 : 홧병


         감정표현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세대간 편차가 클 것이라 짐작되지만, 한국 사회에 통용되는 감정의 디스플레이 룰은 전반적으로 많이 인색하고, 유교의 레거시는 특히 한국 여성들에게서 또 하나의 문화 특징적인 심인성 장애를 남겨 주었다. "홧병"은 정신 신체적 장애의 하나로,  미국의 정신장애 진단 편람

(Diagnistic and Statistical Manual - 5)의 정식 진단체계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문화특징적인 (한국에 유일한) 정신과적 장애의 하나로 부록에 수록되어 있다. 홧병은 불안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감정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억압하는 소극적 및 내성적 성격이거나, 혹은 그 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화를 잘 내는 다혈질 성격에게서 잘 드러난다. 남여가 유별하고, 남존여비의 가부장적 유교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였던- 여전히 그러한- 여자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예법의 무게는 명백히 남자보다 무거웠고 촘촘했으며, 담장은 커녕 입 밖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었던 억눌리고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은 신체를 압박하여 탈출을 시도한다. 흔히 말하는 신체화 장애의 원인이며, 한국에서는 특히 중년의 기혼 여성에게서 특징적으로 발병한다.  억눌린 감정과 장기적 스트레스로 인해, 세로토닌의 분비가 저하되어 가슴이 답답함, 우울감, 불면, 식욕저하, 폭식, 소화불량 등의 증상을 보인다.세로토닌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즉각적으로 함께 떠오르는 한국사회의 남자들의 무뚝뜍함과 감정표현 없음을 유교적 전통에서 연유한 엄격한 디스플레이 룰에 책임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기본 질료인 감정을 서로간에 주고 받고 확인하는 일이 원할하지 않을 때, 즉 자기 감정을 인식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해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결여되어있을 때, 개인의 안녕은 물론 관계는 순탄치 않아진다. 개인 대 개인이든, 세대 대 세대간이든, 국가 대 국가이든, 인종 대 인종 간에도....

홧병이 정신장애 진단 편람으로부터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제시된 척도는 토론토 대학에서 제작한 원래의 감정표현불능 척도를 (TAS-20) 한국의 서울대학교의 신현균과 원호택이(1997) 한국형으로 표준화한 23문항으로 구성된 척도이다. 본인이 감정표현 불능증일 가능성이 궁금하신 분은 테스트를 해보시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여...

✿ = 정서를 인식과 신체적 각성을 구분하는 능력에 관한 질문

✦ =  타인과 정서적 언어소통하는 능력에 관한 질문

✱ =  외향젹 사고에 관한 질문


총점을 문항 수 23으로 나눈 값이 점수이다.

1.9 > 별 문제 없음

1.9 - 2.3 = 신체화 증상의 가능성

2.3 < 심리적 장애가 생길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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