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바다 Oct 31. 2019

2. 마음의 다양성


 행동과학으로 분류되는 심리학은 역사가 100년을 조금 넘는 신생 과학이다. 심리학을 탄생시킨 학자들이 주로 북유럽 출신 엘리트 남성들이었고, 미국의 심리학계는 그들의 후예들이 주류를 이루어 왔기에, 그들이 발견한 심리학적 진실을 인간 마음이 작용하는 보편적 원칙들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마이너리티를 포함한 사회 저변으로 심리학의 영향권이 확대되기 시작하자 "인간의 마음이 작용하는 보편적 원리=심리학적 진실"을 둘러싼 마이너리티 학자들과, 백인 남성 중심의 주류 심리학계 간에 관점차이와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보편성"에 대한 연구가 심리학계의 백인 주류로부터 받아들여지 않자 그들만의 독자적인 리그를 구성하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해 나가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미국 흑인 심리학회, 미국 히스패닉 심리학회, 그리고 미국 아시안 심리학회다. 그러자 주류의 백인 남성 심리학자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믿었던 "인간의 보편성"에서 고개를 돌려 인간의"다양성"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다양성의 원천으로 보이는 "문화"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화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합의된 가치체계와 아울러 사회적 준거들을 통괄해 지칭하며, 이는 특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세대를 관통해 전승되고 공유되어 온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정의된다. 가치체계란 그 사회가 지향하는 "선"과 "올바름". 그리고 "바람직함"에 대한 관념을 의미한다. 사회적 준거란 그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하는 규칙, 상황에 적절한 행동,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또는 용인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지침 같은 것을 포함한다. 학문과 연구의 주된 목적은 인간에게 내재한 보편적인 사고 원리와 행동 원리를 밝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과제는 현실이 봉착한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현실의 요구란 시간과 공간이 엮어내는 지정학적인 조건, 기간 산업의 차이, 사회의 구조, 교육 조건 등에서 파생하는 것이기 마련이다. 이같은 차이가 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서 상이한 가치체계와 사회적 준거를 발달시켜왔고, 문화 심리학에서 그 연구의 초점은 문화의 차이에 따른 지능, 감정의 종류, 감정 표현방식, 사고방식,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 자아개념의 차이 등을 포함한다. 


 미시건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리처드 니스벳은 저서 "생각의 지도 The Geography of Thoughts”에서 최근 집단주의적 문화를 가진 서양과 개인주의적 문화를 가진 동양의 차이를 분석한 방대한 연구결과를 제공한다. 개별 해양 도시 국가들로 이루어졌던 고대 그리이스에서 기원한 서구의 정신은 단순성을 추고하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발전시켰다. 그들은 초월적인 존재 -신, 이데아-를 설정하고 그를 향해 나가려는 힘을 선이라고 규정하고 반대로 나아가는 힘을 악으로 규정했다. 절대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이 존재할  미와 추, 정의와 불의, 적과 동지의 이분법은 절대적이다. 이러한 가치는 불변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분석과 논리를 통해 대상의 특성을 파악하고, 사물의 행위를 지배하는 규칙을 찾아내 인과 관계를 추리하는 전통을 발전시켰다.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치 않고 단순한 모델로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려는 정신적인 전통은 과학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반면, 고대 중국의 전통에서 기원한 동양은 복잡성을 추구하고 인간들의 관계나 사물들간의 관계를 통해  대상을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결국 동양은 전체적인 맥락에 주목하고 전체론적인 세계관을 발전시켰다.


 동양인들은 세상의 사물이 변화하면서도 언제나 원래의 출발점으로 회귀한다는 순환적인 세계관이 있다.음양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나타내는 동양의 이원적 가치관을 대표한다. 동양적인 인간관은 개인은 전체의 한 부분이며 관계망 속에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자아를 정의한다. 이와 관련해 ‘자아’관이나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 동서양에서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다시 말해 서양적 자아관은 자신의 가족의 지위나 경제적 맥락과 독립적인 자신으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반면, 동양적 자아관의 관계라는 가족의 사회적 상황과 처지라는 맥락속에서 자신의 정의된다. 사회적인 지향에 있어서 서구의 개인들은 개성과 수월성, 자아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추구하는데 반해 동양적 자아는 관계성과 하모니, 융통성과 적응성을 추구한다. 과학을 대하는데 있어서도 서양적 전통은 진리 그 자체의 탐구가 목적이었던 반면, 동양은 진리의 실용성을 중시한다. 이런 차이점에 기반해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점들을 찾아보면 사물을 지각하는데 있어서 서구는 요소와 대상을  파악하는데 주력하는 반면 아시안들은 전체적 맥락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자아개념


개인주의 문화가 주를 이루는 서구 사회의 주된 신념은 개인의 독자성 혹은 독립성에 있으며 개인들은 타인과는 독자적인 개성을 갖는 존재로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개인이 사회속에서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성공적인 과업을 수행하거나 스스로 정한 목표에 도달했을 때, 이는 자신감과 자기 가치감을 고양시키는 원천이 된다. 한 개인의 자아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속성들로 구성되어있고 타인들과는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이런 특성은 그들이 이름을 부르는 방식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톰은 부인에게도 회사의 동료들에게도 형제들에게도 부모에게도 톰이다. 반면 집합주의 문화인 동양 사회에 있어서 개인은 관계 속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개인의 호칭은 본인의 이름보다는 관계 속에서 역할 또는 직함으로 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들은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역할로서 불리고 그에 따라 성격과 행동을 달리한다. 직장에서는 직함으로 불리고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직함과 이름과 역할이 바뀌므로 나는 맥락에 부합하는 행동과 감정을 보여줘야 한다. 집단주의 사회의 인간관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상호연결된 세상의 한 구성원이기에 서로 의존하고 연관성을 가지는 존재들이라고 본다. 이같은 문화에서 개인이 사회화 되는 방식은 집단에 대한 적응과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공감을 발휘하고, 소속된 집단 내에서 맏은 바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따라서 집단주의 문화 구성원에게 있어 자기 가치나 자기 존중감, 만족감은 구성원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인정받는 것으로 부터 자라난다. 개인과 타인의 경계가 중첩되기도 하며 상황의 변화에 적응적이다.자아개념 형성은 이와 같은 사회부터 호명받는 자신에 대한 호칭으로부터도 지대한 영향을 받을뿐더러, 자신과 타인의 감정 상태에 대한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대학의 강의실에서 개인의 문화적 배경이 자아개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간단하고 재미있는 실험을 해본 결과는 인상적이다. 내 강의실에는 참으로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섞여 앉아 있다. 백인 학생들은 물론 네이티브 아메리칸, 베트남, 멕시칸.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를 대표하는 인종 분포가 골고루 섞여 있다. 학생들의 자아개념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_____"이라는 스무 개의 똑같은 미완성 문장을 채우라고 했을 때, 학생들이 자신을 정의하는 내용에는 극명한 차이가 드러났다. 


인지특성


먼저, 아래 제시된 원숭이, 팬더, 바나나증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둘을 짝지어 보자. 일련을 사물을 어떠한 기준에 따라 그룹으로 묶는 정신적 작용을 범주화라 칭한다. 유사한 사물들을 범주화할 때 정보처리의 효율성은 향상되기에 "범주화"는 심리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지적 개념이다. 범주화 처리를 하는데 있어서 대상의 궁극적인 본질에 천착했던 서양인들은 대상의 속성과 본질에 착안해 범주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원숭이와 판다=털 달린 포유류 vs. 바나나=식물) 동양의 사고방식은 대상 간의 실용적인 관계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숭이와 바나나 vs. 판다). 


또다른 특징은, 대상과 사건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배경이나 맥락보다는 타깃 자체에 주목하는 인식 패턴이 서양적인 것이라면 타깃이 배경/맥락의 일부로 섞여 들어가는 인식 패턴은 동양인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패턴이다. 일례로, 니스벳의 연구에서 물체의 길이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서양인들의 경우 제시된 물체 자체의 절대적인 길이를 판단하는데 정확성이 높은 반면, 동양인들은 제시된 물체의 상대적인 비율을 판단하는데 더 나은 정확성을 보였다. 또한 사진을 찍을 때 전문작가가 아닌 서양인들의 경우 배경을 최소화하고 대상을 클로즈업하는 반면에, 아시안들은 배경을 크게 잡아 피사체가 어디를 방문한 것인지, 장소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하는 배경맥락에  촞점을 두는 소위 말하는 인증샷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내 얼굴을 클로즈업하든 뒷배경의 유럽 고성을 화면 가득 잡아주든 문제 되진 않지만, 이같은 특성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맥락에 적용될 때는 꽤나 피곤해질수 있다. 일이 상괘를 벗어났을 경우 동양문화권의 사람들은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된 맥락을 먼저 살피고 해답을 찾기 위해 다른 상황을 가정해 보는 경우의 수를 상정해 본다. 다른 상황이었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겠는가 전후좌우 앞뒤 맥락을 짚어보는 이런 방법이 동양적 기준의”합리성"인 반면, 전후좌우가 어쨌건 일의 결과는 분명하게 정해진 것이니 그곳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토를 달지 않는 것이 서양적 합리성이다. 북미인들에게는 동양적 “합리성"이 경계의 유연함이고 그것은 warm and fuzzy  달리 말하면 사고와 논리의 모호함을 보여주는 예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거두절미하고 모든 것을 표준화하여 cut and dry 박스 안에 넣어 버리를 즐긴다.  


정서 표현


 정서 경험과 표현방법에 있어서도 동서양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감정의 display rule이라는 개념은 이를 잘 표현한다. 서양의 문화는 긍정적인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면, 동양인들은 조직의 하모니를 위해서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감정표현을 가급적이면 자제하도록 배운다. 한국사람들은 감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어려서 좋다거나 싫다는 감정을 드러내면 호들갑을 떤다고 매우 꾸중을 듣던 기억은 또렷하다. 정서 표현의 display rule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어떤가? 개인의 감정은 상황이나 진행되는 일의 맥락과는 상관없어도 괜챦은 서구 사회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양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정서 인식이 관계의 그물망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관계의 역학 속에서 감정 표현을 조율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진 속의 소년이 분명히 웃고 있음에도, 이를 해석하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관점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는 서양적 사고방식에 따른다면 그 소년의 활짝 웃는 입은 매우 즐겁거나 즐거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고 뒷 배경에 늘어선 사람들의 질문의 대상도 아니니 관심의 대상도 아닌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라면 속내와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자아와 별개로 내적 진심을 일컫는 "혼네"와 "다떼마에"를 적용하여 반대의 해석을 내릴지도 모른다.  "소년이 웃는 게 결코 웃는 게 아닐 것이야. 무슨 이유가 있어 저러고 있는 거지? 주변이 다 찡그리고 있는데 혼자 웃고 있을 리가 있겠어?"라고 한 발 더 들어간 해석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속내와 걷마음을 정의하는 단어조차 정해져 있는 일본인들의 안/밖이 다른 이중성이 가지는 함의는 한국 중국과는 달랐던 그들의 막부 사대 무사 통치의 역사적 배경, 칼찬 사무라이가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질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는......................................

나는......................................

상기의 문장을 열일곱 번 반복한 후 빈칸을 채우세요.

봉숭아처럼 붉은 뺨을 지녔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백인 남학생은 19개의 문장이 "나는 성실하다, 나는 목표가 있다, 나는 몇 살이다.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한다" 등등하며 자신의 내적/외적 특징으로 자신을 정의한 반면, 인디언 원주민 (네이티브 아메리칸)이었던 여학생은 열 개가 넘는 문장으로 관계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기술하고 있었다.  "나는 오 남매 중 장녀다." "나는 딸이다." "나는 학생이다." 나는 교회의 무슨 커미티 멤버다." 정말 신기하게도 학생들의 문화적 배경에 딱 맞아떨어지는 자신의 형용이었다. 


독자들도 스무 개의 빈 문장을 채워보며, 관계의 그물망을 벗어난 자신의 존재는 몇 퍼센트인지 재미 삼아 정의해보시기를..... ^^ 

작가의 이전글 7. 자폐스펙트럼- 공감이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