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본질적으로 친사회적이고 타인을 돕는 행동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감정이다. 철학자 토마스 맥컬러우(Thomas McCullough)는 도덕적 상상력이 교육을 통해 함양할 능력이자 시민이 정치권에 요구해야 할 능력이라고 정의하면서 “도덕적 상상이란,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며 이는 혼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느끼고 타인의 기분을 살피는 경험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다” 고 설명한다. 최근 수십년간 축적된 뇌영상을 이용한 신경심리학 연구의 결과들을 비롯해, 포유류와 유인원의 공감 행동을 오랜 세월 관찰한 동물학자 프란츠 드 발 Franz de Vaal 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인간과 동물이 종으로서의 공존을 도모하는데 기본 동력이 되어왔던 것은 경쟁과 이기적 행동보다는 공감이라는 생물학적 기제에바탕하고 있다. 공감이란 적대하고 경쟁하기 보다는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능력이다. 또한 공존하며 상생하는 가운데 행복을 느끼는 일이 가능한 것은 우리 머릿속의 거울 세포-뉴런 회로를 통해 감정이 공명을 일으키고, 타인의 입장에 나를 비춰볼 수 있는 인지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피엔스가 혈연으로 구성된 종족과 부족이라는 집단적 단위를 넘어서 커뮤니티와 국가라는 단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의 가치 (value system)를 공유함으로서 가능했다. 종교와 이념이라는 추상적인 집단의 가치를 학습하고 공유하여 후대에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앞의 상대방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끼고 상대방과 동일하게 행동하려는 공감 작용의 결과이고,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결정지워진 기제이다. 그러나 거울세포라는 정교한 신경심리학적 기제인 하드웨어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 기능이 강화되고 개발되지 않는다면 퇴화될 수도 있다. 우리 머릿속 거울 세포는 비출 대상이 었어야 거울로서의 존재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인간은 포함한 모든 동물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관계를 형성하고 타인들의 느낌을 탐색하고 감정을 교류하여 서로에게 필요하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행복한 삶의 조건
대인간의 높은 공감 수준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유대감의 토대를 구축한다. 2017년도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다 나은 삶 (better life index) 지표를 살펴보면 개인이 느끼는 행복과 삶의 만족도에 가장 높은 기여를 하는 요인은 사회 구성원간의 높은 신뢰도라는 사실을 보고한다. OECD 국가들 중 최상위권의 행복지수-삶의 만족도-를 기록한 나라들과 최저 점을 기록한 국가들 간의 가장 큰 차이는”공동체 ”와 교육, 경제력, “타인에 대한 신뢰도”에서 나타났다. “공동체”는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을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항목인데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가 85~89%였던 반면 한국은 78%로 40개 국가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인들의 “삶의 만족도”는 40개 국가증 33위를 기록했다. 한편, 자살율은 국민들의 불행감과 정신건강의 문제를 암시하는 지표인데, 한국의 자살율은 2011년 십만명당 33.3명으로 최고를 기록한 이후 29 명으로 감소하기는 했으나 1991년 이후 20년간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2013년 OECD 보고서는 회원국가들 중 최고를 기록한 한국의 자살율이 증가하는 패턴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지표들이 가리키는 바는 한국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북유럽 국가들이 가지는 타인에 대한 높은 신뢰도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북유럽국가들의 행복감과 대조되는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율 근저에서 교차하는 요인은 사회적 공감의 수준이다. 덴마크의 연구자 마이크 비킹은 덴마크 국민들이 타인에 대한 신뢰도와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를 공감능력과 협동심 배양에 주안점을 두는 교육에 있다고 본다. 비깅에 의하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학생들에게 성공이 꼭 제로섬 게임일 필요는 없다고 가르친다. 학생들을 서열을 메기는 교육 제도는 내가 잘 하면 누군가는 기회를 빼앗긴다는 것을 가르치기에 8학년이 될 때 까지는 이 국가들에서 성적표가 없다고 말한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아이의 학습, 사회, 정서 발달을 주제로 교사와 부모가 컨퍼런스를 하는 정도로 아동의 발달 상태를 체크 하는 정도다. 구성원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성공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행복은 나누어도 작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침으로서 상대방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초석을 다진다고 마이크 비킹은 설명한다. 또한 캐나다의 브리티쉬 콜럼비아 주정부 산하 교육부에서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공교육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을 필수 항목으로 교육하는데 주정부 교육부의 자료에 의하면 그들은 사회적 책임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회적 책임감이란 사람들간의 상호의존성과 사람과 환경과의 상호의존성을 고려할 줄 아는 능력과 성향, 자신의 가족과, 지역사회, 공동체, 그리고 환경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능력과 성향,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성향, 타인과 공감하고 타인들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과 성향, 그리고 건강한 관례를 형성하고 유지할 줄 아는 능력과 성향을 의미한다. 사회적 책임감은 사회 정서 학습 (Social Emotional Learning)과 관련된 세 가지 서로 관련된 능력 증의 하나이다. 긍정적인 개인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 개이적 인식과 책임감, 사회적책임감.(https://curriculum.gov.bc.ca/sites/curriculum.gov.bc.ca/files/pdf/SocialResponsibilityCompetencyProfiles.pdf)
국민의 행복감이 높은 국가의 이같은 교육 환경과 철학은 입시위주의 교육을 지향함으로서 경쟁일변도에 놓인 한국교육과는 무척 대조된다. 역사적으로도 그래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교육은 특히나 계급 상승을 향한 사다리로 수단화되었다. 교육의 목적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나, 시험을 통해 관료와 지배층을 선발해 왔던 유교에서 비롯된 교육의 가치관을 이어온 조선에서 학업 성취란 양인을 벗어나 양반으로 이어지는 계층 상승과 입신양명을 위한 제한된 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녀왔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점수 기계’를 양성하는 한국의 교육제도는 성공이 제로섬 게임임을 강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학생들을 학업 성취라는 단일가치 아래 한 줄로 세우고 목적만을 위해 몰아세울 때 타인들은 나의 성공에 방해물로 인식되며, 공감을 발휘하고 타인을 도우는 것은 자신의 자리를 내주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인식을 굳혀가게 마련이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통해 제로섬 게임, 점수 경쟁에만 내몰렸던 청소년들이 적절한 공감능력과 이타심을 갖추고 사회적 책임에 헌신하는 개인들로 자라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같은 교육 풍토는 공감결핍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근원적인 상처이며 인류가 수천년간 개발해온 생물학적인 공존의 법칙을 위배하는 환경이다. 아울러 이같은 현상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정신건강 문제, 왕따로 지칭되는 학생들간의 정서적 폭력, 물리적 폭력, 청소년들의 높은 자살율이라는 부정적인 문제들 파생시킨다. 12년간의 공교육 과정의 목표가 입시를 통한 입신양명이라고 각인 시켜온 결과는 지난 20년간 한국의 자살률은 점점 증가했고 2011년엔 OECD국가 최고를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사회 구성원들을 길러내기 위해 기초적인 교육의 영역은 공감능력을 함양하는데 경주되어야 한다. 사회 전체의 공감능력 고양은 교육적 측면 뿐 아니라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예방적인 함의를 가진다. 현대의 심리학에서 개인의 정신과 자아 발달에서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 학자들은 대상관계 이론가들 (윌리엄 페어베언, 하인츠 코후트, 도널드 위니콧)은 “유대감을 원하는 생물학적인 욕구”는 감정의 영역에 속하며, 영아나 유아의 생득적인 자기 보존 수단이자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중요한 타인을 ‘자기 대상(self object)’이라고 부르는데, 유아의 자기 대상은 부모나 가족, 중요한 보호자들이다. 대상 관계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을 통해서 향후의 대인관계들에 대한 정신적인 표상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정신적인 표상은 대인관계에 대한 기대와 예상, 관계 속에서의 자기를 인식하는데 참조틀 (지표)이 되고, 자아의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유아가 자기 대상과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이 부족할 경우는 파괴적 충동으로 귀결되기 쉽다. 유아에게 필요한 공감받는 경험이 결핍되고 욕구좌절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면, 아동은 강한 자기주장과 공격적인 성향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는 부정적인 충동이라기보다는 자아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공감능력’의 중요성에 대한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서구와 유렵의 인식은 사회 정서 기술을 위한 커리큘럼에서 ‘공감’을 첫단계에서 교육하고 훈련하는 부분에서도 확인된다. 인종적 다양성과 문화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는 현시대는 물론 미래를 준비하는 개인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성공적인 사회적 기능과 대인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감정조절능력이다. 개인의 감정과 정서 교육과 그것을 돌보는 역할은 고대와 중세에 있어서는 종교가 담당해 왔으나 탈종교화가 시작된 근대 이후,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감정 교육과 조절은 온전히 개인들의 몫으로 남았다.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감정인식과 조절에 관한 커리큘럼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아,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심리적 동인인 감정은 소외를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공감능력은 나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 다양성과 서로간의 차이를 수용하고, 포용적인 관점을 가짐으로서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감정조절과 대인관계 기술의 근간이다. 인터넷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교실의 벽이 허물어지는 현실에서 교육의 장으로서 오직 학교만이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종래의 교과목 중심의 학업적 지식이기보다는, 발전적 공동체와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의 인성과 도덕성을 함양하는 것이다.
더우기 2018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다문화 청소년은 12만 2천명을 기록하는 현실이다.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다차원적이고 다문화적인 가치를 수용하며,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다양성에 대한 사회의 공감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은 사회의 융합을 준비하기 위한 긴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이 가장 큰 나라 중의 하나인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공감적 포용에 기반하고 있다. 캐나다적 다문화주의란 이민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이민자들이 언어와 문화를 자신들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자신들이 속한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실천하고 후대들에게도 함양할 수 있도록 수용하고 격려한다는 의미다. 다문화주의를 국가의 모토로 삼음으로서 사회전반을 공감 능력의 활용장으로 올려 놓은 공감의 정책적 활용이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모여든 다양한 종교와 문화, 상이한 언어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질서를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이민자의 사회적응과정 모델을 제시한 캐나다의 심리학자 존 베리 John Berry 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국가의 문화적 포용성과 개방성의 정도가 이민자들의 사회적응과 그에 따르는 정신 건강문제를 경감하는데 핵심적인 요소라고 지적한바 있다. 그 점에 있어 캐나다가 표방하는 국가의 가치가 “다문화”와 “환경자원의 재활용”에 있다는 것은 캐나다라는 이민사회를 이해하는데 힌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