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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Feb 17. 2020

결국은 발목 잡힌 목감기

때 이른 봄타령 후에 오는


사실 신종 코로나가 됐건 코로나 19가 됐건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매해 겨울 독감은 이름을 바꾸어가며 유행처럼 돌아오곤 했던 거니까. 그땐 주로 홍콩 더하기 알파벳으로 독감 이름이 정해졌었다. 그래도 해마다 찾아오던 홍콩발 독감에 발목을 잡혀 본 기억은 없다. 독감 예방 주사 같은 건 맞지 않는다. 감기가 들어 일 년에 이삼일 갈게는 일주일씩 앓아누울 때도 있지만 그건 오히려 건강한 심신에 대한 반증의 짧은 휴식 같은 것이다. 목감기와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어 아로마 오일을  방울 떨어트린 휴대용 가습기를 하루 종일  두고 있다.


독감으로 고생해본 기억보다는, 일신의 자유를 속박하는 병증은 주로 여행 후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예측 가능한 수준이 된 여러 가지 증상을 동반하는 여독이 무섭다면 제일 무섭다. 더욱이 낮에 다닌 길을 꿈속에서 다시 돌아다니는 일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잠을 자는 동안 내 머릿속 해마는 낮에 보고 들은 정보를 처리해 기억으로 저장하느라 과부하 걸려 혹사를 당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긴 여행 후에는 잠을 자는 일이 너무나 괴로운 거다.


잦은 여행이 가져오는 후유증은 다양하고 기발하다. 한국을 거쳐 지구 반대편으로의 일 년에 서너 번씩 주기적인 출장을 감행하던 남편은 어느 날 밤 드디어 일시적으로 시간 공간 방향에 대한 분별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패닉 해져 전화를 걸어왔다. 회사가 지정한 호텔 스위트룸을 매년 같은 시기에 방문하고, 생활 시간대가 하루 만에 바뀌고 수면이 교란되다 보니 자다 일어나서 정신이 나간 거다. 나가서 수영이라도 하고 노란색이나 맘에 드는 색 sticky note를 모니터에 붙여놓으라고 했다. 다음번 출장 땐 빨간색 노트를 그다음엔 다른 색 노트를 붙여서 출장 차수를 확인하는 식으로 시간을 칼라 코딩하라고 전해주는데 이 사람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30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와했던 말 반복하며 “나 인셉션을 찍고 있는 거냐’는 웃기지도 않는 멘트를 반복했다. 아직 인셉션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하도 현란해서 주의집중이 되질 않는 영화였기에 뭐라 대답해줄 말이 없었다. 인셉션에 비하면 차라리 영화 메멘토는 일목요연하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때가 되면 이웃나라에서 발생한 역병으로 긴장해 왔는데, 세월이 흘렀으나 역병은 잡히지 않고 세계화된 통행량과 함께 긴장의 스케일만 커졌다. 봄의 한국행도 불확실성만 커져가는데, 그래도 봄꽃은 기다리지 않고 피고 흐드러지겠지. 따뜻한 봄날이 돌아와 바이러스가 무력해지기를 이렇게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지구가 따뜻해지는 온난화 현상은 이럴 때는 소용도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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