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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r 29. 2020

가재가 노래하는 곳-외로움에 관한 생태학적 보고서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에 일독을 권하고픈...

"외로움에 대해서는 내가 좀 알지. 너무 외로워서 숨쉬기도 힘들 때가 있거든요."

대륙 서쪽의 산악과 대평원이 어우러진 아이다호의 자연에서 혼자서 살아가는 70세의 소설가는 반백의 긴 머리를 어깨뒤로 늘어뜨린 채 웃으며 말했다. Delia Owens. 지난 10년의 세월을 외로움에 관한 생태학적 보고서와도 같은 이 소설을 쓰며 견뎠다. 자다가도 일어나 몇 문장을 써놓고 다시 잠들곤 하던 시간이 흘렀다. 10년간 홀로 쓴 첫소설을 70의 나이에 발표했고, 뜻밖에도 세계적인 밀러언셀러가 되었다. 첫 소설을 쓰기 전 그녀는 젊고 에너지 넘치던 동물행동학자로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사자와 코끼리들의 삶에 관한 보고서를 여러권 썼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야생동물 연구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 8년간 사막생활을 함께하며 사자와 코끼리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남편과는 무슨 이유인지 오래 전 헤어졌다.


<where the crawdads sing>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crawfish라고 불리는 crawdad는 말하자면 바닷가재가 아니라 미국남부의 습지에서 포획되는 민물가재다. 그래서 루이지애나 어디쯤이 아니면 메인이 배경일까 했더니 노스 캐롤라이나의 아우터 뱅크스 해안 사구 안쪽의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습지다. 작가가 조지아나 노스캐롤라이나쯤 습지를 관찰할 수 있는 곳에 거주하고 있겠다는 기대와 달리 대륙의 반대쪽 아이디호의 품에서 오늘도 외로움을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10년 걸려 소설 한권을 쓰고 나니 작가는 70이 되었다. 바야흐로 70-80 인생의 황혼에 대작가로 거듭나는 신인할머니 대작가들의 전성시대인것 같다. 오웬스 박사님, 남은 시간 소설 두어권 쯤 더 써주시면 참 감사하겠다...이번에는 10년씩 걸리지 않아도 괜챦을 작품들을...


오랫동안 예상해 왔던 세균전의 시대가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혼자갖는 시간이 패닉을 유발한다는 농담이 있을만큼 서로간의 거리가 가까워진 시대, 서로 간의 물리적 거리의 확보만이 생존을 보장하는 이 어려운 시절에, 외로움의 궁극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권의 소설은 잠시 시절을 잊게하는 시의적절한 선물같기도 하다. 바이러스 생화학 무기 (?)가 지구의 엔진을 꺼트린 이 초현실적인 시절에, 생존과 외로움에 관한 생태학적 보고서와 같은 이 소설은 인간이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혹은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야생에 내던져져 시간을 살아낸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한번쯤은 해보게 만든다. 보석같은 소설이다. 두해쯤 전에 출간되었고 한국말로는 지난해에 출간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테리와 영화적 요소도 골고루 갖추었다. 카뮈의 수필을 떠올리게 할만큼 치밀한 아름다움을 가진 첫 단락은 읽기도 숨이 차다.


가족이 뿔뿔이 떠난 습지의 오두막에 홀로 남은 소녀는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가족들에 관한 일용할 기억의 양식조차 가지지 못했다. 유기된 어린 생명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 이야기일까 싶지만, 갈매기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새들과 끼니를 나눠먹는 식구가 되고, 밧딧불이와 조류들에게서 생존의 법칙을 배운다. 조개껍질과 새의 깃털을 정성스레 모으고 그것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동안 어른이 되었다.



습지는 늪이 아니다 .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꾸물꾸물한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 -애초에 비행이 존재 목적이 아니라는 듯- 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 오른다. 습지 속 여기저기서 진짜 늪이 끈쩍 끈적한 숲으로 위장하고 낮게 보복한 수렁으로 꼬불꼬불 기어든다. 늪이 진흙 목구멍으로 빛을 다 삼켜 버려 물은 잔잔하고 시커멓다. 늪의 소굴에서는 야행성 지렁이도 대낮에 나와 돌아다닌다. 소리가 없진 않으나 슾지보다 늪이 더 고요하다. 부패는 세포 단위의 작업인 탓이다. 삶이 부패하고 악취를 풍기며 썩은 분토로 변한다 죽음이 쓰라리게 뒹구는 자리에도 삶의 씨앗이 싹튼다.

이 지역의 토지 소유권은 1500 년대 이후 별로 편한 게 없다 습지 소유권은 법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고 자연스레 말뚝으로 구획 되었다. 이쪽은 개천으로 경계를 짓고 저쪽은 죽은 참나무로 표시를 하는 식이었다. 대부분 무법자 들이었다. 인생 막장에 다다랏 거나 도망자가 아니라면 수렁에 판잣집을 짓고 살리가 없다. 초창기 정착민들은 갈라진 해안선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습지를 "대서양의 공동묘지" 라고 불렀다.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의 해안선을 따라 이안류, 맹풍, 얕은 모래톱이 종이 모자를 구기듯 선박을 박살내기 때문이다. 육지다운 육지를 찾는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쳐 계속 향해 했다. 악명 높은 습지는 반란 선원, 조난자, 빚쟁이, 전쟁이나 세금이나 법을 피해 도망친 떨거지들을 그물처럼 건졌다. 말라리아에 목숨을 잃지도, 늪에 잡아먹히지도 않은 사람들은 다인종 다문화의 나무꾼 부족을 이루었다. 이 사람들은 자귀 한 자루만 있으면 작은 숲 하나는 거뜬히 베어버리고 몇 킬로미터씩 개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돌아 오실거야 조지가 말했다 .

“몰라 엄마 악어 신발 신었어.” (그날 아침 엄마는 한 켤레뿐인 악어 가죽으로 만든 외출용 신발을 신고 떠났다)

“엄마들은 자식을 두고 가지 않아. 원래 그렇게 못해.”

“그래 하지만 그 여우는 새끼들을 버리고 갔다면서 오빠가 그랬잖아.”

“ 그래 하지만 그 여우는 다리가 짖어져 만신창이었어. 제 몸도 건사 못하는데 새끼 먹이까지 챙기려면 굶어 죽을 거야. 새끼들을 두고 떠나 몸을 잘 치료한 다음에 새끼들은 더 잘 기를 수 있을 때 다시 낳는 편이 낫지. 엄마는 배고파 죽을 지경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돌아 오실거야.”

조다는 콩알만한 확신도 없으면서 카야를 위해 이렇게 말했다. 카야는 목이 메어 속삭였다.하지만 어디 먼데 가는지 파란 가방을 들고 갔던 말이야 .



공터 한 가운데에 썪은 등걸이 하나 있었다. 이까가 카펫처럼 깔려 있어 얼필 보면 망토를 뒤집어쓰고 숨어있는 노인처럼 보였다. 카야는 등걸로 다가가다 멈칫했다. 등걸에 꽂혀 삐죽 튀어나와 있는 건 15센티미터쯤 되어보이는 검고 얇은 깃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저 대수롭지 않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카야는 그 비범한 깃털을 알아보았다. 왜가리과인 그레이트 블루 헤론의 눈썹이었다. 눈 위로 우아하게 휘어져 머리 뒤까지 뻗쳐 있는 깃털이다. 연안 개펄에서 가장 특별한 한 조각이 바로 여기 눈앞에 있었다. 한번도 찾은 적이 없는 깃털이지만 한눈에 알아보았다. 평생 쭈그리고 앉아 그레이트 불루 헤론과 눈을 맞춰왔으니까...


하지만 스물 두 살이 되던 해, 체이스와 펄이 약혼발표를 하고 나서 1년 남짓 흘렀을 무렵, 카야는 날마다 무섭게 내리쬐는 땡볕 아래 흙길을 걸어 우체통을 찾았다. 드디어 어느 날 아침, 우체통 속에 든 두툼한 마닐라지 봉토를 발견한 카야는 내용물을 꺼내 보았다. 캐서린 데니엘 클라크가 지은 <동부 연안의 바닷조갸> 가제본이 나왔다. 카야는 숨을 들이 쉬었다. 이걸 보여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카야는 책장을 어루만지며 조개껍데기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떠올렸다. 발견한 곳, 바닷가에 어떤 모양으로 놓여 있었는지, 계절과 해돋이, 그건 카야의 가족 앨범이었다.


혼자서 보낸 수백만 분의 시간으로 수련한 카야는 자기가 외로움을 안다고 생각했다. 낡은 부엌을, 식탁을, 텅빈 침실 안을 끝없이 평평하게 펼쳐진 바다와 숲을 바라보며 보낸 한평생 새로 발견한 깃털이나 완성한 최고의 기쁨을 함께 나눌 이 하나 없는 사람 갈매기들에게 시를 읊어주던 나날.

그러나 제이콥이 철컹 감방의 빗장을 걸고 복도를 걸어가 최후의 쿵 소리 와 함께 묵직한 문을 잠그고 나자 싸늘한 정적이 내려 앉았다. 자신의 살인 사건 재판 평결을 기다리고 있자니 전혀 다른 종류의 고독이 몰려 왔다 살고 죽는 문제는 의식 표면에 떠오르지도 못하고 습지 없이 혼자 오랜 세월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깊이 가라 앉았다. 별도 없는 장소에, 바다도, 갈매기도 없이.


데이트의 헌신으로 가야도 결국 인간의 사랑이 습지 생물들의 엽기적인 짝짓기 경쟁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지만 삶은 또한 대구인 생존 본능이 복잡하게 꼬인 인간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전이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가르침을 추웠다. 가야하는 조수간만처럼 확실한 이런 자연적 과정의 일원으로 살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만큼 이 지구라는 별과 그 속의 생명체들과 끈끈하게 유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대지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서......





** 아름다운 고전의 탄생이다. 영화로 제작될 거라는데, 미국배우로는 제니퍼 로렌스가 딱이고, 습지의 야생성을 표현하기엔 너무 예쁘고 우아한 느낌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알리샤 비칸데르도 헝클어트려 놓으면 완벽하게 카야가 될 것 같다는 생각.  


** 북미의 지형의 특이성과 아름다움을 다시 한반 발견하게 되는 것은 보너스다. 아틀란타 바다를 마주보는 동부의 해안선을 따라 해안 사구 혹은 바다 사구가 길고 길게 끈질기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지도에서 보자면 대륙의 가장자리를 하얀 실로 둘러놓은것 같다. 그 하얀 실이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길고 하얀 섬같은 사구다. 해안사구는 텍사스의 멕시코만 연안에서 플로리다로 이어지는 남부의 해안에만 형성되어 있는 줄 알았다. 텍사스 육지와 바다 사이에는 파트레 아일랜드라고 하는 해안사구가 좁고 길게 펼쳐져 하얀 모래사장을 품고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서부 해안은 수심이 깊어 사구가 미쳐 형성될 여유가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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