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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y 18. 2020

5월의 아가판터스,  강 마을 여행

5월 중순 대학들은 바야흐로 온라인 봄학기가 끝나고, 가을 학기 개강을 준비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그제 학기 끝나고 나서야 큰 녀석은 방 밖으로 나와서 가족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할 양이 많고 학점을 받기가 생각 만큼 쉽지 않아 울음을 터트리던 고난의 시간도 있었다. 공부의 양으로 승부하는 미국식 대학교육 전반에서 특히나 엔지니어링 공부하면서 잠을 편히 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강의가 대면수업이냐 온라인 수업이냐는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 지난 두 달 내내 조깅하러 나가는 잠시의 시간 외엔 방 안에서 두문 불출하던 녀석이 며칠전엔 뜬금없이 엄마, phd 과정을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쥬니어를 마치는 아이나 할법한 질문을 했다. 이제 대학 2학년 끝나는 시점이라, 그 질문에 놀란 것은 나였다. 열심히 해야지...GRE도 봐야하고.... 철학을 먼저 세워야지. 나는 왜 이 공부를 하는가. 그리고 statement를 서술해서 교수님들을 설득해야지. 준비할 거 많아.. 근데 왜 묻니? 고등학교 때 들어놓은 선수 과목들 덕분에 한 학기 당겨서 졸업할 수 있으니까.... 1년 반 남았으니까....지금부터 진학준비할거라는.... 미처 예상못한 대답을 아이는 내 놓았다. 그래.. propulsion & explosion 연구할거라더니, 세월의 추진력에 니가 폭발장치를 다는구나. 미래를 계획하는 아들의 대답에 나는 잠시간이었지만, 또 시간의 강물 아래로 떠내려 가고 있었다.

산책길에 처음 만난 하얀 오리는 머리에 깃털이 왕관처럼 돋아나 있었다. 왕관 쓴 오리는 처음 봐서 신기했다. 키 큰 잿빛 물새와 흰 새는 사이가 무척 안 좋은듯 서로 피해다니는 사이. 왤까...


큰애가 다니는 퍼듀는 STEM school이라 일전에 학교 내 한 연구실에서 코로나 검사 테스트 개발을 자체 완료했다. 학생들 전수 검사와 치료 대책 준비가 구상이 되었는지 가을 학기 in class 개강할거라는 발표를 대학들 중 가장 먼저 했다. 엔지니어링 스쿨이라 학생 대부분이 젊고 건강한 20대 남자애들인 덕분에 총장님과 이사진이 자신 있으신지 그렇게 결정... 학생들은 8월 시작과 더불어 캠퍼스로 복귀해야만 한다. 가을학기 모든 휴일은 없애 버리고 thanks giving 과 동시에 겨울 방학 들어가는 걸로 이동을 최소화 할 방침이라고...그러면 이번 겨울 방학은 최대 한 달 반 집에 돌아오는 것이 가능하다.


오늘은 큰 도로 하나 건너지 않고 호수 건너 이웃동네로 산책 (여행)을 다녀왔다. 겨우 왕복 5000걸음 되는 거리였지만 편도 500 킬로쯤 다녀 왔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정말로 그런 기분이다. 산책하며 뉴스를 듣는데, 옆 동네 아리조나 대학의 총장 역시 ..’내 학생들은 내가책임진다’ 며 가을학기 in class 결정 했다는 소식. 총장님 본인이 메디컬 닥터라 이 학교도 자체로 코로나 검사 테스트 개발 완료했고 학생들 테스트 해서 총장님 본인이 직접 검사 결과를 읽고 관리하실거라고 한다. 바야흐로 전국적인 각자도생 시대의 개막인가.


아가판터스 꽃그늘 사이를 지나가는 산책 나온 꼬마 아가씨. 엄마 아빠랑 유머차 탄 동생이랑 강아지 이끌고는 신나서 앞장서 가고 강아지는 언니야 기다려 하고 뒤에서  왕왕 짖는다. 그리고 아가판터스의 개화. 나일강의 릴리라는 애칭을 가진 아름다운 푸른꽃이 만개했다.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이 신비스런 푸른꽃의 개화다. 뉴욕의 현대 미술관에 가면 모네가 그린 아카판터스 그림이 있다. 그 미술관에도 아카판터스가 피어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꽃말이 환상적이다. 사랑의 편지 사랑의 방문이라니... 가끔은 쌀쌀한 올 해의 기온 때문에 예년보다 길게는 두 달, 짧게는 한 달이나 늦은 개화다. 나는 어쩌다 동물원에 가서 기린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세계로 공간 이동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키도 큰 동물이 목까지 길어서, 기린의 눈을 바라보다가 기린이 걷기 시작하면 정말 낯설고도 신비한 공간 속을 기린이 떠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아카판터스가 무리지어 피어 있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 기린을 볼 때 느껴지던 그 신비감같은 것이 느껴진다.


인간 세계가 잠시 멈춘 것의 반대급부가 지구의 체온이 내려가고 지구의 호흡이 편해진 것이라면 그것도 감사할 일. 그리고 락다운 되면서 변화된 동네의 풍경은 산책자들이 종종 눈에 띈다는 것, 공을 들여 조성한 공원을 즐기며 소요하는주민들이 늘었다는 것, 그리고 캐나다에서나 보던 갖가지 자전거에 부착하는 유아용 탈 것들을 휴스턴 내려와 처음 보게되었다는 것인데, 이 모두 기온이 온화해진 덕분이다. 예년같았으면 100도를 웃돌고 있었을 때인데...70~8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으니..




벽돌과 라임스톤을 섞어서 지은 집이 대부분인 우리 동네는 집들이 멋진  외양을 갖고 있지만 식생이 다양하지 않다. 한국에서 자란 내게는 무미건조한 식생에 가깝다. 그런데 지어진지 몇 해 되지 않은 이 동네는 생경스럽게도 콜로니얼 스타일의 목조 주택이 주를 이루고 주택가 한 가운데는 인공의 개천이 흐르고 있어 여지껏 보아온 주택가의 분위기와 전혀 다르다. 레트로 풍으로 조성된 동네는 정말로 낯선곳에 여행온 기분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다양한 식생에 조경이 잘 정돈되어 있어 마치 동부의 오래된 동네를 방문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 동네를  그 이름도 광대하게 river vill 이라 불러 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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