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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Jun 03. 2020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


5월의 마지막 주에는 달님과 새턴과 주피터가 나란히 서는 모습을 보게 될 저녁이 꽤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비가 자주 내렸고 지평선에 너무 가까워 초저녁에는 셋이 나란히 선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 백 야드에서 올려다본 새벽 세시의 하늘에선 주피터가 위용을 반짝이고 있었는데 조만간 클로즈업 증명사진을 찍어 볼 수 있기를... 새턴과 주피터 옆으로 반인반마의 궁수가 있다. 어깨에 견장처럼 얹힌 nunki가 빛나고 그 아래 겨드랑이에 ascella가 있다. 내가 이 지경인 눈을 가지고도 먼지 알갱이 같은 작은 빛을 이토록 잘 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ㅎㅎ 내 시력이라기 보단 아이폰의 시력이 맞겠다.


조안 글래스콕이 부른 옛날 노래 켄타우로스-센토-는 고등학교 때 영희랑 즐겨 듣곤 했었다. 비장미 넘치는 센토..... 운이 좋으면 6월 4일에는 (태평양 부근 지역에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재미있는 주피터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멕시코만에서는 가능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도는 해보겠다.



애플 펜슬로 아이 패드에 글씨쓰기란 미끌미끌 펜이 넘어질 지경. 키보드만 두드린지 25년. 펜으로 한글쓰기가 부끄러울지경으로 손글씨는 엉망이다





5월은 비의 장막 속으로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져 갔고 나는 캔버스 위에 탱탱한 물방울을 그리면서 5월을 보내주었다. 내가 그린 그림은 무엇이든 열렬히 좋아하는 친구는  이 그림도 좋아했다. 그녀는 내게는 단 한 명의 열렬한 팬이다.


체로키 족은 6월을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이라고 했다. 왜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는 걸까. 거미에게서 깊은 미학적 묘미를 발견하기라도 한 걸까? 더워서 나른해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달이라는 뜻이었을까? 옥수수수염 나는 달, 잎사귀 다 자란 달  거북이 달이라고 한 부족도 있었고 대체로는 곡식이 번성하는 달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수다 떠는 달이라고 한 부족도 있다. 달을 정해놓고 수다를 떨다니... 아주 웃긴다.


하얗고 파랗기만해도 충분히 사랑스럽다


6월의 첫날 아침이 여전히 서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느끼며 서둘러 아침 산책을 나섰다. 훤한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잘못 들어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걸었다. 적당히 두께감이 느껴지는 구름의 장막이 살얼음처럼 지상을 덮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시원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에 고마움을 느낄 때, 살얼음 아래 차가운 물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평화로운 아침을 위협하는 뉴스에선 미국 전역 시위가 과격해지고 있단 소식.... 동시다발적인 방화와 약탈이 경찰 폭력에 대한 항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갑자기 변해 버린 미국의 우울한 풍경에 현실은 디스토피안 무비 같다. 정보에 대한 선택적 주의집중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자신이 주워 담은 정보의 버블 세계 속에 갇혀 버린 사람들은 점점 더 요령부득이 되어 간다.



펜데믹에도 패턴이 있었던듯 100년을 주기로 전염병이 대대적으로 창궐했지만 그것들은 어느 날인가는 반드시 사라졌다. 백년 전엔 스페니쉬 플루가 또 그보다 백년 전엔 콜레라가... 20세기 초반은 얼마나 끔찍한 시절이었던가. 세계적인 유행병과 그 무서운 세계 대전을 두번이나 겪어야 했던 세대도 있고, 세계각국에서 내전을 겪어야 했던 세대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 무서운 풍파를 하나도 겪지 않았던 나는 너무 운이 좋다고 생각해 왔다. 이번에 딱 걸렸지만.... 이건 지난 세기의 환란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는가. 아직은...  세월이 흘러 이때를 회상 한다면 사람들이  달팽이처럼 집과 한 몸이 되어 지내야 했던 해 달팽이 해 2020이라고 하지 않을까..숫자의 모양도 달팽이를 닮은듯. ㅎㅎ

조금씩 다른 풍경과 구름의 모양에 홀려 걷다 보니 집에서 한 시간이나 떨어진 곳까지 걸어갔다. 앵그리 버드 같이 생긴 카디날과 날개에 장미꽃잎을 단 것 같은 까만 새도 만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어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할 요량이었는데, 가족들은 그 누구도 잠에서 깨지 않고 있었다. 깨우기가 미안해서 다시 집까지 걸어왔다.
아침 산책을 두 시간이나 했지만 오전이 충분히 남아있었고 만 오천보를 걸었다. 기운찬 유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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