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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Jun 07. 2020

삶의 주기성. 달의 주기성.

the sea of clouds on the moon


내 인생에 그 어느 때 이렇듯 꼬박꼬박 정확한 주기로 되돌아오는 보름달을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지상의 혼돈으로부터의 피난처다. 달의 남쪽 분화구에서 열 한시 방향에 보이는 어두운 표면은 자그마치 구름의 바다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라틴으로 mare nubium..... 새벽에 자다 일어나 삼각대도 없이 안방에서 달의 증명사진을 찍고 놀았던 지난 새벽의 풍경은 코메디스런 면이 있다. 새벽 두 시를 향해가고 있던 그 시간, 서재에서 놀다 와 잠을 깨운 남편은 내 손에 망원경의 파인더 스콥을 장난감인양 쥐어 주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자신의 청소년기를 회상하며 80년대 음악을 틀어대거나 하이피치의 바이얼인곡을 귀에 갖다대며 놀자하는데 오늘은 망원경이었다. 남편의 저 못된 습관 덕분에 내 명은 10년쯤 짧아질 것이 분명하지만...나는 화를 낼까 하다가 의자에 올라가 달 사진을 찍기로 했다. 인간 삼각대에 망원경을 올려놓고 의자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천창으로 쏟아져 들어오고파 하는 달은 참 선명했다. 동전 크기만한 뷰파인더에 걸린 달빛은 말할 수 없이 쨍한 노란빛을 발했고, 그 빛은 잠을 달아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색을 하고 달의 얼굴에 촞점을 맞추었을 때 달은 예의 표정없는 까맣고 하얗기만 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달의 표면에는 남쪽 분화구 티코 바로 위에 구름 바다가 있다. 웃게 만드는 놀라운 이름이다.  어린 시절 스쳐지나며 달의 지도를 본 적이야 있었겠지만, ‘마른 땅을 바다라니... 거짓말 하시네.’...라며 그땐 감흥없이 흘려 보냈을 것이 분명하다.


  

실내와 실외에서 바라본 딸기달

자다가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나는 서재로 거실로 옮겨다니며 밤을 꼴딱 세고 만다. 정해진 시간에 잠들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있겠는가만, 세월을 건너온 댓가는 그 단순하고도 쉬운 일을 애써서 내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두 시간 주기로 끊어지며 불안정한 잠을 자던 어느 날은 새벽같이 운동을 하러갔다. 바이러스로 상황이 지금처럼 변하기 전, gym은 새벽 네시면 오픈을 했고 첫 새벽 요가 클라스에 들어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운동 시작 전에 잠시 담소를 나누던 한 여인은 초등학교 교사라고 했다.  초등학생 둘을 키우느라 너무 바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방도로 매일 새벽 세시에 일어난고 했다. 체력이 매일같이 방전이 될 육아전의 시기인데도 자신만의 세계를 잃지 않으려는 그녀의 모습은 감동스런 면이 있었다. 더 이상 학생도 아니고 더 이상 직장인도 아닌 이 즈음에는 일과적 규칙성을 유지하는 일이 과제 아닌 과제가 되기도 한다.

이틀 전 산책길의 달무리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 지라도 최소한의 운율은 있다.

생각의 궤도를 따르는 주기적 반복성이 정신의 경험을 관장한다. 거리는 가늠되지 않고, 간격은 측정되지 않으며, 속도는 확실치 않고, 빈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것은 확실하다. 행복은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있다”고 영국의 수필가 엘리스 메이넬은 백년쯤 전에 썼다. 예리하고도 근사한 문장이다.

“내면 관찰자들의 일기는 케플러의 주기 같은 법칙성을 발견하진 못했다. 토마스 아 켐피스 같은 독일의 신비주의자는 마음의 주기를 측량하진 못했지만 주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몇몇 성인들의 영혼은 비할 데 없이 단순하고 고독한 삶을 살며 주기성의 법칙을 완벽히 따랐다. 황홀과 적막이 철따라 그들을 찾아왔다. 적막한 시간 동안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버리면서 얻으려 했던 모든 것의 내적 상실을 견뎌냈다. 그리고 약속되지 않았던 달콤한 행복이 마음에 빛날 때 행복했다.”고도 썼다. 성인과 수도사는 못되어도 인생의 긴 리듬과 짧은 리듬을, 주기적으로 되돌아 오는 마음의 밀물과 썰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기를....   


6월이면 안정적인 적운이 하늘 가득 피어나는 것도 주기성을 따른다. 전형적인 여름 하늘의 구름과 함께 더위가 돌아오긴 했지만 아침 햇살에 가로수와 호수가 반짝이는 풍경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모처럼 아침일찍 드라이빙 레인지에 나갔다가  돌아 나오는 길에 주차장에서 넘어져 무릎을 깼다. 겨우 겨우 그늘을 만드는 작은 나무 아래 주차를 해 두었는데 차가 있어야 할 자리에 보이지 않아 내심 당황하며 걷는 틈에 일어난 일이다. 보는 사람은 없어 다행이었고, 살짝 까지고 멍이 들긴 했지만 발목은 문제 없었다. 산책로로 들어섰다. 산책 나온 정다운 가족. 유모차에서 일어난 아기가 위태로운 걸음으로 뒤뚱거리며 가족에 앞장서서 자연을 탐색 중이다. 긴신히 두 발로 설 힘이 생긴 아기는 뒤둥거리며 처음 맞는 계절을 탐색 중이다. 아기는 신기함과 경이로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표정을 가득 담고 있다. 정확한 주기로 꼬박 꼬박 되풀이되는 계절의 순환 오십번쯤  맞이해 가지만. 나는 여전히 매번 처음 계절을 맞는 기분이다. ‘신기한 것이 참 많지?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란다 뒤뚱거리는 아가야. 나는 오늘 넘어져 무릎을 깨기도 했는 걸, 너는 넘어지지도 않으니 오늘은 네가 나보다 나은지도 몰라 ㅎㅎㅎ ‘ 유모차와 강아지를 데리고 천천히 뒤를 따르는 어머니의 여유로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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