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바다 Jul 20. 2020

바이러스란 무엇인가요? 인생인거죠. 바로 그거죠 뭐.

카뮈는 코로나를 겪지 않고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았을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었다.

———-

페스트에 감염된 도시 안으로 바깥 세상이 들여 보내는 격려와 응원을 라디오에서 듣거나 혹은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의사 리유의 생각은 적어도 그랬다. 비행기나 육로를 통해서 보내진 구호품들은 물론이고 동정이나 찬양일색의 논평들이 이제는 외따로 버려진 도시로 폭포수 처럼 솓아져 내렸다. 그럴 때마다 영웅적인 무훈담이나 수상식 연설과도 같은 어투에 의사 리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마음 씀씀이가 거짓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

밤 12시경 인적없는 도시가 깊은 침묵 속에 빠져 있을 무렵, 잠시나마 눈을 붙어기 위해 잠자리에 누우려던 리유는 라듸오를 켰다. 그러면 세상 저 끝에서부터 수천 킬로미터를 거슬러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우정 어린 목소리가 서투르게나마 연대감을 표현하고자 애를 쓰고 있었고, 또 실제로 연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든 자신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고통을 진실로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가혹한 무력감도 동시에 드러내고 있었다.

------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사람들조차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가 죽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그 이유는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섭리가 이미 그렇게 때문이고, 누군가를 죽도록 만드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몸 한번 움직이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페스트에 처해 있음을 깨닫고 계속 부끄럽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또 어느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적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지금도 여전히 평화를 찾고 있어요.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더 이상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한다는것, 그리고 바로 그것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를 희망하도록 한다는 것,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편안한 죽음이라도 기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시름을 덜어 주며, 인간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가급적 나쁜 짓을 덜 끼치며, 심지어는 이따금씩이라도 약간의 선을 행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상관없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상관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또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죽이는 상황을 정당화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

단언컨데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각자 자신 안에 페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왜냐하면 실제로 아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 부터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또한 잠시 방심한 사이에 다른 사람 낮짝에 대고 숨을 내뱉어서 그자에게 병균이 들러붙도록 만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제대로 단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병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머지 것들, 예를 들어 건강함, 성실함, 순수함 등은 이를테면 의지, 그러니까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의지의 산물이죠. 존경받을 만한 사람, 즉 어느 누구에게도 거의 병균을 옮기지 않는 사람이란 되도록 마음이 헤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결코 헤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이죠.

------------

잠시 침묵이 흐르자 의사는 살짝 몸을 일으켜 마음의 평화에 이르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럼요, 공감이지요.]

--------

우리 도시의 모든 종들은 오후 내내 기세좋게 울렸고, 그 종소리가 햇빛이 넘실대고 화창하게 맑은 하늘을 온통 채웠다. 실제로 성당들마다 감사 미사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축제가 한창인 장소들에서는 사람들로 터질 듯했고, 카페들에서는 다음 날을 걱정할 필요 없이 남아 있던 마지막 술들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들 중에 쌍을 이룬 수많은 남녀들은 자신들이 구경거리가 되든 말든 아랑곳없이 부둥켜 안고 있었다.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큰 소리로 웃었다. 각자 자신의 영혼을 등잔 심지처럼 조금씩만 빼놓은 채로 조심스럽게 지내 왔던 지난 몇달 동안 비축해 두었던 생명력을 마치 자신들이 살아남은 기념일이 바로 오늘이라는 듯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다음 날이면 늘 그렇듯이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될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서로 팔꿈치를 마주 대고 형제애를 나누고 있었다. 즉음 앞에서 실현되지 못했던 평등이 해방의 환희 속에서 단 몇 시간이나마 이루어지고 있었다.  

--------

어떤 사람은 그만 추억이 지닌 감미로운 불안감에 빠진 채 자신의 연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바로 이곳에서 나는 넌를 간절히 원했지만, 넌 여기 없었어.] 이렇듯 어떤 상념에 사로잡힌 채 길을 걷는 사람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그들은 길을 따라 걷다가 소란의 한복판에서 귓속말을 하며 속내를 털어놓느라 작은 섬을 만드는 것 같았다. 진정한 해방을 알리는 것은 네거리마다 나와 있는 악단들이라기보다 바로 그들이었다. 왜냐하면 말도 없이 기쁨에 취해서 서로를 꼭껴안고 있는 연인들은 행복을 누리는 승리감과 행복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은 채 난리법석의 한가운데에서 페스트가 이제 완전히 물러났고 공포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파리들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흔한 일이던 그 미쳐 버린 세상을 분명히 드러난 그 야만성을, 철저히 계산된 그 광란을, 그 밖에는 모두 오로지 구역질 나는 자유뿐이던 현재라는 그 감옥을, 죽지 못해 살아가던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던 그 죽음의 냄새를, 그들은 명백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부정하고 있었고 그렇게 그들은 결국 자신이 얼이 빠져 살아가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

적어도 얼마간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사람들이 언제나 절실히 원할 수 있는 어떤 것, 그래서 가끔은 손에 쥘 수도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애정임을 이제 그들은 알게 된 것이다. 

-------

한데 말입니다. 페스트란 무엇인가요?인생인거죠. 바로 그거죠 뭐...



페스트 - 알베르 카뮈, 최윤주 역, 열린책들



카뮈님은 왜 하필이면 전염병이 번진 도시를 소설의 소재로 선택했을까? 천재적인 선견지명으로 2020년의 지구를 위해 이 소설을 남겼다. 전염병에 사로잡힌 사회의 단계적 심리 현상을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 놀랄만큼 정확하게 그려나가는데, 이 작가를 천재라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 부르리. 카뮈가 미리 써 둔 이 시대의 자화상이 연대와 공감의 철학을 일깨워 우리를 살려낼 수 있기를.... 정말 그랬으면.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에 다가온 혜성 the Neowis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