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쓴 인터뷰 기사
짧은 한국 방문 후 서둘러 집으로 귀국하느라 대면 인터뷰할 시간이 나지 않았던 반디앤루니스 조은혜 편집자와의 서면 인터뷰. 나리타 공항의 동양미 가득한 조용한 라운지에서 환승 비행기 기다리던 동안 작성한 인터뷰 기사를 추억의 힘으로 긁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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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100인의 큐레이션 : 내 인생의 책] #69_ 윤현희 심리학 박사『아웃라이어』
심리치료, 미술관을 넘어 일상으로
기분 전환을 위해서, 영감을 얻으려고, 또는 큰 가치가 있어서.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미술관을 찾는다. 이번에 만난 심리학 박사 윤현희는 미술관에서 치유의 경험을 했다. 한 시대를 산 누군가의 정신이 작품 안에서 오롯이 숨쉬는 것을 느꼈고, 개인적인 일로 슬픔을 겪던 당시에 큰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심리학을 통해 본 시각예술을 차곡차곡 모아 『미술관에 간 심리학』에 풀어냈다. 윤현희 작가가 꼽은 인생의 책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에서 성공의 이유를 읽었지만, 그는 저자의 심리학 연구 스토리텔링 방식에 주목했다.
“미술관에서는 예술작품과 화가들이 시각언어를 통해서 치료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술 작품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림을 통해 작가와 굉장히 긴밀하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성공의 법칙’이라는 키워드로 알려지다 보니, 정작 이 책이 심리학 책이라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현대 심리학 연구의 용처가 궁금하거나 심리학을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매력적인 입문서가 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앙리 마티스의 〈붉은 방〉앞에 선 저자.
안녕하세요. 독자 분들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미국에서 아동청소년 임상신경 심리학으로 박사를 마친 후 대학에서 심리학 강의를 해왔습니다. 요즘에는 배운 것과 임상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된 것들을 바탕으로 글을 쓰면서 독자 분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심리치료는 면대면으로 사람을 돕지만 강의를 하면서 심리학 이론이 개인들의 생활을 돕는 살아있는 공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미술관에 간 심리학』을 썼습니다.
출간 전부터 브런치에 ‘치유를 위한 글과 그림, 생활 속 심리학’에 대한 글을 연재하셨다고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학령기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말을 쓸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심리학자라는 일이 말과 글로 의사소통을 하는 일인데, 주된 의사소통 언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섬세한 표현에 한계도 느꼈죠. 어려서부터 말하기보다는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는데, 브런치라는 공간은 무제한 글쓰기를 허용하는 고마운 공간이었습니다. 심리학을 쉽게 풀어 대중에게 전달하는 연습도 하고 사적인 에세이 같은 글을 쓰다 보니 독자들과 우리말로 소통하는 즐거움도 느꼈지요. 브런치 북프로젝트에서 제 이름을 불러주는 고마운 일도 있었고요.
심리학과 미술을 연관지어 보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심리학자로서의 그림에 대한 저의 관심은 진단과 치료도구로서의 미술이라는 임상경험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미술을 통한 심리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환자와 내담자는 자기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흔히 느끼고, 그들의 그림은 심리학자들에게는 진단과 치료의 단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환자와 내담자는 창작과정에서 자신 문제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높이면서 아픈 부분을 치료받기도 하지요.
미술의 본질이란 시각언어를 통한 자기 표현,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관람객과의 대화라고 봅니다. 병원이나 학교 등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그분들은 자신의 문제나 고민 또는 가장 좋아하는 것, 당면한 욕구 같은 것들을 그림 속에 반드시 표현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볼 때, 말하자면 심리학자로 훈련된 직업적 습관 같은 것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예술작품에 공감하는 순간엔 저 역시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미술은 적극적인 창작의 행위가 되었건, 수동적인 감상의 경우에서든 상당한 심리치료적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와 퀘백주, 그리고 영국에서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생기는 마음의 이완작용과 미술작품에 대한 공감이 가지는 치료적 효과를 인정하고 의료 정책에 이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그 일환으로 보건당국과 미술관이 협력하여 가정의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미술관 관람을 처방하고 의사의 처방전을 받은 환자들은 무료로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료정책의 도입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미술감상의 행위는 상당한 정신의학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미술관에 가기를 즐겼고, 그곳에서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심리학의 세계와 시각 예술의 체계가 교차하는 지점을 발견하곤 했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빅뱅’을 경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빅뱅의 경험은 회화라는 새로운 별로 나를 인도했고, 나는 나침반을 들고 그 세계를 탐험해나갔다.”
- 윤현희, 『미술관에 간 심리학』 중에서
『미술관에 간 심리학』은 어떤 책인가요?
그림을 보면서 위로 받고 힘을 얻었던 경험, 다시 말하면 제가 내담자가 되어 미술관이 심리치료실로 변하는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심리 상담자를 찾고 심리치료실을 찾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은 누군가에게 내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고 공감을 얻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어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상담자나 심리치료사들은 언어로 그 작업을 돕는 조력자들이지요.
미술관에서는 예술작품과 화가들이 시각언어를 통해서 치료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술 작품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림을 통해 작가와 굉장히 긴밀하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타인이 만들어낸 작품에 공감한다는 것은 결국 그 작품을 창조한 작가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자신의 자아가 타인에게로 확장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의 키가 커지는 것이지요. 책에 풀어낸 스무 명의 화가들과 글 속에 간간이 등장하는 저의 이야기에 공감하신다면 21명의 존재만큼 자아가 확장되는 것 아닐까요?
“내 마음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작가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는 순간, 미술관은 치유의 장으로 변했다. 내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다. 예술을 통해 우리의 정신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잠시 세 들었다 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위안이 아닐 수 없다.”
- 윤현희, 『미술관에 간 심리학』 중에서
미술사, 역사, 화가 등 배경지식을 쌓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심리학자로서는 그림을 임상적으로 접근하지만, 원래 그림 보는 일을 좋아해서 자주 미술관에 다녔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림을 보면서 공부하고 감상을 정리해 놓은 것들을 이번 기회에 엮은 것이기 때문에 전에 해보지 않았던 차원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아니고요. 책을 집필하면서 그간 서재에 모아왔던 화집과 화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한번 죽 훑어보았습니다. 평소에 언제 이 많은 화집들을 다 볼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었는데, 실행에 옮길 좋은 기회였습니다.
저서에서 다양한 화가와 심리학 이론을 연관지어 풀어내셨어요.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애정을 갖고 계신 화가 또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 이유와 함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책『미술관에 간 심리학』에서 소개한 스무 명의 화가 모두 다 제가 좋아하는 화가들인데, 그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저는 파울 클레라는 독일 화가를 매우 좋아합니다. 현대 디자인의 산실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예술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림을 그렸던 분인데, 다양한 아방가르드적 유파가 명멸하는 시대를 살았던 분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유파로 자신을 한정짓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회화적 실험을 추구해 나갔어요. 형태적 실험뿐만 아니라 정신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지적 추구를 회화로 그려낸 분이지요. 무엇보다도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세계관에 변화가 많이 왔을 텐데, 사람과 사회에 대한 예리한 냉소를 따뜻하게 그려냈지요. 굉장히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화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이 예쁘기도 하고요. 맨해튼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걸려있는 그의 그림은 대표작인데, 웃고 싶을 때 그의 화집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 「마망」으로 잘 알려져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같은 분의 예술관과 인생관에 무척 공감합니다. 인생은 고독한 장거리 경주이고 자기는 외로운 장거리 마라톤 주자라고 표현하셨었지요. 인생의 종국에는 일생 불화했던 모든 것들과 화해하고 대통합을 이루기도 하셨고요.
파울 클레 〈Cat and Bird〉 1928
파울 클레 〈Fish Magic〉 1925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기 전의 감상과 그 후는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상상의 여지를 줄이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인데,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를 안다는 것이 그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꼭 그것과 한정지어 그 틀에 가두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림을 보는 눈이 훈련된 분들이 아니라면 배경지식이나 단서 없이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대개는 막막하다 느끼거나 작품을 더 깊이 들여다 보기는 쉽지 않은데요. 그림이 구상을 벗어나 추상으로 갈 수록 더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그림 감상에는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감정에 따라 같은 작품도 그날 그날 달리 보일 수 있으니까요. 숨겨진 이야기를 아는 것은 작품의 감상을 돕는 퍼즐의 한 조각을 얻게 되는 것이죠.
작가님의 책을 읽고 미술관 탐험을 앞두고 있을 독자 분들께 감상법을 한 가지 권하신다면요?
그림에 대한 약간의 배경 지식을 갖추게 될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상상을 넓혀갈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갖게 된다고 봅니다. 책에서 풀어낸 이야기와 배경 지식으로 작품에 대한 감상의 폭을 넓히고, 깊이 있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치유를 위한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계시지만 그 역할이나 효과는 비슷하면서도 꽤 다를 것 같습니다. 실제 어떤가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통해서 생각이나 감정을 가시화함으로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명료해지고 정리된다는 점, 결과적으로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 가시적 결과물로 나타났을 때의 약간의 성취감은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아울러 글을 쓸 때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쓰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림을 그리면서도 같은 대상을 수십 번 바라보고 정확하게 관찰해야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 내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약간의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효과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치유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림은 최근에 시작한 일이라 더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타인에게 전달될 때는 글보다 시간압축적이라는 장점도 있겠죠. 일단 색깔이 들어가니까 화려하고 재미있죠. 기분도 좋고요.
저자의 작품. 〈칼란 책방 앞의 풍경〉20*17inch 캔버스에 아크릴
저자의 작품. 〈가을의 아스펀 숲, 콜로라도〉 20*17inch 캔버스에 아크릴
조금은 다른 이야기인데, 작가와 화가들을 비교할 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유명한 화가들은 장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예요. 피카소, 샤갈, 조지아 오키프, 모지스 할머니는 한 세기를 살았고, 심지어는 일생을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뭉크마저도 여든 넘게 장수했습니다. 반면에 글을 쓰는 작가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우도 많고 일찍 요절한 경우도 많다는 것이 대조적입니다. 한때는 유명 작가들과 화가들의 생애 요인들을 찾아내고 비교해서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규명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습니다.
인생의 책으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꼽아주셨어요. 어떤 책인가요?
이 책은 미국에서 심리학을 강의할 때 부교재로 사용했던 책 중 하나인데요, 심리학의 광범위한 연구결과들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서 흥미진진하게 스토리텔링으로 대중에게 전달합니다. 한국에서는 ‘성공의 법칙’이라는 키워드로 알려지다 보니, 정작 이 책이 심리학 책이라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현대 심리학 연구의 용처가 궁금하거나 심리학을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매력적인 입문서가 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지능이냐 환경이냐 하는 문제는 ‘nature vs. nurture 심리학’의 오래된 화두인데, 저자는 이 책에서 나름의 답을 정리하지요. 말콤 글래드웰은 책에서 양육환경, 즉 nurture 결정론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환경과 노력을 성공의 요인으로 꼽습니다. 이른바 ‘만 시간의 법칙’이죠. 지능 결정론을 반박하는 여러 가지 환경과 문화적 요소들을 메타적으로 분석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달하고 있지요. 특히 책의 뒷 부분에서는 동서양 문화를 비교하고 미국 내에서도 지역적, 역사적 특성에 따라 지역구성원들의 상이한 정서와 행동패턴의 장단점을 분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교 문화 연구 부분이 제가 타지의 낯선 상황에서 지내던 시기에 읽어 나갔던 비교 문화 심리학 분야의 논문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어 반가웠고, 객관적으로 규명된 상이한 문화적 특성을 알게 되면서 안도감과 위로를 얻기도 했던 책입니다.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어서 뜻밖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유로 이 책을 꼽아주셨나요?
독자의 입장보다는 글을 쓰는 저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선택했는데요, 말콤 글래드웰은 〈뉴요커〉 와 〈토론토 스타〉 등에서 기자 생활을 오래했던 언론인인데, 연구논문의 딱딱한 언어를 매우 흥미롭고 구체적인 일상의 언어로 바꾸어 이야기를 전개하지요. 그 능력은 금세기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유발 하라리와 더불어 금세기 최고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에, 그에 대한 부러운 마음과 존경심으로 이 책을 꼽았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어머니가 토론토에서 활동한 심리치료사였는데, 심리학 관련 저술을 많이 발간하셨다고 해요. 말콤 글래드웰이 자라면서 그런 어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는 본성과 양육, 양자를 모두 갖춘 셈이죠. 그가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제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평소 어떤 독서를 즐기시나요?
‘공감’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상이한 각도에서 접근한 심리학적 저술과 소설들을 즐겨 읽습니다. 박사 논문 연구 주제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공감발달에 미치는 영향이었기 때문이죠. 다시 말씀드리면 공감, 기억, 불안을 키워드로 심리학을 그 영역 밖으로 확장시킨 이야기들이에요. 미국이나 영국의 심리학자, 신경과학자들은 ‘기억’, 공감부재로부터 겪은 ‘트라우마’와 같은 자신의 삶의 화두를 과학적 연구 주제로 연결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삶의 주제가 연구의 주제로 그리고 성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콜럼비아 대학교의 생의학자 에릭 캔델 박사는 ‘기억’이 형성되는 생물학적 기제를 연구해서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그의 저서들은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언어와 정체성의 관계를 담담한 어조로 파고드는 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의 소설도 좋아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에 대해 여쭙습니다.
두 번째 책을 준비해야겠지요. 한국 사회에는 공감과 소통의 부재가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과도한 경쟁사회가 되면서 타인을 배려하는 공감이라는 능력은 배척되고 극단적으로는 ‘혐오’가 또 하나의 키워드가 된 것 같은데, 그에 대한 답은 역시 ‘공감’이 아닐까 합니다. 공감은 인간 관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질료이죠. 공감을 주제로 여러 각도에서의 심리학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
미술과 심리학은 우리 생활에서부터 시작되고, 도처에 깔려있는 어쩌면 생활 밀착형 주제라 할 수 있는데도 많은 분들이 어렵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미술과 심리학, 이 두 가지로부터 제 삶이 도움을 받기도 했고 또 배운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 제가 할 일인만큼 미술이라는 아름다운 것과 심리학이라는 유익한 학문이 만들어 낸 성과들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윤현희
한국, 캐나다, 미국 3개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후, 학생들을 가르치고 정신과병원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왔다. 심리치료의 영역이 치료실을 벗어나 글쓰기, 그림 그리기, 정원 가꾸기 등 일상생활의 여러 가지 풍경 속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믿으며 실천하고 있다. 아카데미즘을 바탕으로 한 소수를 위한 글쓰기보다는 대중적 글쓰기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최근에는 심리학과 시각예술의 접점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일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