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슬론 - 20세기 초의 맨하탄 연대기 1
옥상 풍경
뉴욕의 화려하지 않은 주변부의 삶과 서민 정서가 깊게 베인 풍경을 연민을 담아 그려냈던 존 슬론Joan Sloan 1871-1951의 작품들은 20세기 초기의 뉴욕의 풍경을 보여주는 연대기이다. 그는 가난했으나 재능이 있었고, 재능과 노력으로 사회의 변화를 꿈꾸었고, 도시의 서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안았던 화가였다.
건물의 꼭대기는 도시의 풍경을 관망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풍경들을 멀리서, 그리고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다보면 왠일인지 마음이 느긋하지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순위다툼을 한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게 만든다. 세상 모든 인간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갖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런 이유만으로 건물의 옥상과 옥탑방은 서민 감성을 대표하는 꽤나 낭만적인 공간이다. 존 슬론 역시 그랬다. 그는 맨하탄의 그리니치 빌리지14번가와 6번 애비뉴 사이에 있는 플렛 아이언의 모양을 한 빌딩 꼭대기에 작업실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눈 아래 펼쳐진 옥상의 풍경은 도시 위의 도시와도 같았고 옥상에서 바라본 서민들의 생활을 정감있고 유머러스한 풍경을 30여점의 그림에 담았다. 그곳은 무방비 상태의 이웃들이 재미있는 코메디 극을 연출하는 무대같았다고 그는 말하곤 했다. <그리니치빌리지의 뒷골목>은 뉴욕의 그리니치의 아파트 창 밖 풍경이다. 고양이가 겨우내 쌓인 눈더미 위에서 놀고 있고, 창밖으로 그것을 내다보는 소녀의 표정엔 즐거움이 가득하다. 고양이와 소녀의 표정 모두 생동감이 넘친다.
우리는 실상 화면의 상단에서 뻣뻣하게 말라가는 빨래를 주목한다. 슬론에게 있어서 “빨래”는 도시 서민의 삶을 상징한다. 에드가 드가가 파리의 화려한 거리 밑바닥 생활을 하던 세탁부들을 관찰하며 즐겨 그렸듯이 말이다. 드가는 빨래를 하는 여인들을 관찰했지만, 슬론은 빨래가 말라가는 풍경속에 사람들의 여유와 따뜻한 유머의 코드를 섞어 놓았다. 햇살에 하얗게 표백되고 바람에 흩날리는 빨래는 상쾌한 느낌을 주는 이미지이지만, 날아갈듯 가벼운 감각적 이미지 뒤에 자리한 생활의 진실, 노동의 수고로움을 암시하다. 세탁기도 없던 시절, 저 많은 하얀 빨래들을 빨아서 표백하고 말리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을 여인들의 수고로운 일상을…. 주민들의 대부분이 가난한 이민자와 예술가들이 주를 이루는 첼시와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슬론에게는 눈을 뜨면 대하는 풍경이 그런 것이었다. 현재는 갤러리와 세련된 카페가 즐비한 첼시지만 100년 전에 그곳은 가난한 예술가들과 유럽의 이민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보헤미아였다.
햇살 아래 펄럭이는 이불과 옷가지는 평화로운 여느 가정의 일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웃과는 팔 하나를 사이에 사이에 두고 비좁은 난간이 담장의 역할을 한다. 좁은 난간 위에서 위태롭게 몸을 내밀고 흰 빨래를 한아름 널고 있는 여인은 노동의 풍경이다. 그는 서민과 노동자의 수고로운 일상을 직시하지만, 그것은 비관적이거나 우울하거나 분노와는 거리가 먼 분위기이다.
“나는 연민의 마음으로 대상을 그렸을 뿐 어떤 사회적 의식과 관련한 정치적 프로파겐다도 담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열렬한 사회주의 지지자였다는 이유로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에 프로파겐다의 성격을 덧씌우려했지만 그런 시도를 그는 달가와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햇살과 바람은 빨래를 표백하고, 완성된 빨래의 깨끗하고 뽀송한 느낌은 상쾌감과 만족감을 되돌려 주기도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실주의자라고 주장했던 에드가 드가가 바라본 노동 현장이 무미건조한 느낌이었다면, 그것은 그가 노동 생활의 실상을 모르는 부르주아 출신이었다는 사실과 관계깊을지 모른다. 자기 일상의 풍경을 자유로운 필선의 사실주의적 분위기로 그려낸 슬론의 그림에서는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생명력, 사람들 사이의 역동이 느껴진다. 도시의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과장없는 삶의 진솔한 모습이고, 세상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들, 그들 삶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슬론이 이민 여성의 노동 현장에 주목한 것이라면 일러스트레이션처럼 보이는 <첼시의 옥상>은 캐나다의 여성 작가 마가렛 엣우드가 쓴 가난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알리아스 그레이스는 기근이 든 영국을 뒤로하고 캐나다로 이주한 가난한 집안의 장녀 그레이스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소설이다. 그리니치 빌리지와 첼시의 테너먼트에도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그레이스들이 살았을 것이고 그녀들은 하얗게 표백되어 나부끼는 빨래를 보면서 천사나 흰새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그레이스에서 빨래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때로는 비 개인 후 하늘에 순백의 하얀 구름이 휘몰아 갈 때, 나는 천사들도 그들의 빨래를 널어 말리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 햇살 좋은 날 바람에 펄럭이는 셔츠와 나이트 가운은 거대한 흰새 또는 비록 머리는 없지만 마치 천사들의 환호성 같았다. 그러나 똑같은 빨래를 쟂빗 여명이 비치는 실내에 널어말릴 때는 그것들은 다르게 보였는데, 어둠속에서 맴도는 창백한 유령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