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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Oct 07. 2020

Autumn Songs

 

"고독 행성에 호롱불이 켜지는 점등의 시간이 오면 생의 비등점에선 주전자의 물이 끓어오르고 톱밥 난로의 내면을 가진 천사들은 따스하게 데워진 생의 안쪽에서 영혼의 국경선을 생각하네

.......................
여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저 홀로 펄럭이며 아득하게 깊어가는 한 잎의 고독 행성"


박정대 시 - 고독 행성




지난주 비가 며칠 내렸고, 대지가 젖어가는 소리를 좋거니 하고 즐겼다. 비가 그치자 실외의 온도는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 지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와와 함성을 질렀다. 그러자 바람은 가을 속으로 날아가 버렸고, 여전히 여름의 열기를 품은 햇살은 머리 위에 머문다.  찬물 수도꼭지에선 시간차도 없이 찬물이 바로 흘러나온다. 한낮의 햇살과 바람이 각자의 온도로 서로 다른 계절에 속하기 시작할 즈음이면 변함없이 추석 돌아왔고 나는 변함없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곤 했다. 늦어서 수업에 못 들어갔다거나, 약속시간을 깜빡 잊어서 중요한 미팅을 놓친 것 같은 황망한 기분으로 며칠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10월을 위해 차이코프스키는 가을 노래 october-- autumn song을 준비해 두었고, 박정대 시인은 고독 행성의 몇 구절로 계절을 위로한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 여름의 열기를 떨치지 못했지만 바람은 가을의 온도다. 관악기의 음색은 가을 바람의 온도와 잘 어울린다. 도입부에 또르르륵 낙엽처럼 굴러들어 오는  플룻 소리가 마음에 감기는 vince guaraldi trio의 the great pumpkin waltz를 반복해서 듣는다. 이 짧지만 정감이 넘치는 음악과 함께 꼬마 시절의 보낸 나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을이 오면 펌킨 왈츠를 습관처럼 듣게 될까.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은 해마다 때가 되면 반복해서 꺼내 듣는 음악의 레퍼토리가 고정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요요마가 연주하는 피아졸라가 9월을 열면, 빈스 과랄디 트리오의 찰리 브라운의 테마들이 잇따르고, 이작 펄만과 앙드레 프레빈이 연주하는 오래된 재즈....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가을 노래를 여러 버전의 연주로 듣는다. 언제나 베리 메닐로우와 함께하는 10월의 마지막 주.  


나는 오랫동안 10월이 좋았다. 숫자 10이 가진 그 완성된 안정감이 좋았고, 10월에 세상은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색채를 띄고, 머릿속에는 따뜻한 계절에는 찾아오지 않던 여러가지 흥미롭고 재미있는 생각들로 가득차는 계절이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대기의 온도는 다채로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바람의 감각이 가장 풍부하다. 겨울이 가깝긴 하지만 아직은 같은 편인 11월이 종말의 느낌 충만한 12월 사이의 버퍼가 되기 때문에 안심해도 되는 달이다.


https://youtu.be/cP8 ZfRZCy1 c


https://www.youtube.com/watch?v=IHbuPPRzzsc



과열되어 무너져 내리는 몸과 마음을 식히기 위해 선택한 몇 년간의 안식년. 그리고 올해는 시절의 요구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니, 불현듯 세상과의 교신이 궁금해졌다. 책 이야기하면서 수다 떠는 복고풍의 음성편지 같은 팟캐스트도 나쁘지 않겠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대륙과 대양을 실시간으로 넘나드는 유비쿼터스의 시대에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의 충실한 소비자 노릇을 해왔다. 이제와  불현듯 가상의 놀이 공간이 궁금해진 것은 말하자면 존재론적 의기소침의 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시그널인지도  모른다.


3학년을 시작하는 멀리 있는 아들에게 격려의 텍스트를 보냈다. 적극적 선제공격은 언제나 승리한다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땐 직진할 것을 잊지 말라는 아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뜻밖에도 스스로를 향한 트리거가 되었던 것일까. 심정의 변화를 대화의 소재로 삼으니, 대륙의 동쪽과 서쪽 끝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기특한 발상이라 반겨마지 않는데, 역시나 남편은 음성이 건조하다느니, 책을 왜 그렇게 읽느냐느니 하면서 다리 걸기에 들어간다. 아닌 게 아니라 저녁이 되면 이유 없이 목이 잠기곤 한다. 환절기면 눈과 목의 점막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10년 전과는 다른 현상이고. 나이를 먹어가는 일은 또 한편 지니고 다녀야 할 안약과 연고의 종류가 늘어가는 귀챦은 과정이기도 하다.


팟캐스트 방송은 참 좋은 방식이다. 여러 해를 꾸준히 지속하는 팟캐스트는 드물어 청취자의 입장에서는 아쉽기는 하지만,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그만두고 싶을 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으니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옵션이다. 각자의 개성과 주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locality와 지리적 경계를 초월한다는 universiality의 양면성을 동시에 가진 것이 현대의 오디오 방송이 가진 묘미가 아닌가. 윤소라 씨가 잡담 없이 깔끔하게 읽어주는 소설 듣기도 좋아했고, 여러 해 전 문학동네를 진행하던 평론가 권희철이 프로그램을 종료했을 때는 배신감이 들 지경이었다. 언어를 바꾸어서는, 캐나다의 젊은 남자 둘이서 책 읽어주고 토론하며 티격태격하는 방송도 재미있었다. 이 젊은이들이 또한 자기들이 제조하기를 즐기는 탄산수 레시피를 열거하는 덕분에 나도 반짝이는 크롬으로 디자인된 멋진 탄산수 제조기를 들여놓기도 했다. 집에서 만든 탄산수에다 매실 진액을 섞거나 비타민을 타서 마시는데, 가끔은 스타벅스 레시피로 탄산 냉커피도 제조하곤 한다. 어떻게 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카트리지 교환을 위해서 윌리엄스 소노마를 매번 방문을 해야 하는 일은 참 귀챦다.  


 조던 피터슨 선생님은 한국에도 번역되어 널리 알려진 <인생의 열두 가지 법칙>을 저술한 심리학자다. 토론토 대학의 임상 심리학자인 이 달변가는 긴 버전은 두 시간을 넘어 세 시간에 육박하며, 짧은 버전은 5분 이내로 끝나는 두 개의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보통 심리학자들이 학문적 엄격성에 갇혀 자기 분야의 바운더리를 엄격히 지키는데 반해, 신앙으로 정신의 기초를 다지고 정치학으로 거시적 세계관과 공격적 전투력을 몸에 익힌 이 달변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정신적 지향과 심리학에 기반한 진취적인 생활수칙을 단호히 설파한다. 검증된 삶의 지혜와 가치를 잃지 말기를 강권하는 이 원칙주의자의 조언은 난장판이 되어버린 이 세대를 위한 삶의 가이드다. 하지만 꼰대의 느낌이라기보다 포스트 모던을 넘어선 해체와 분열의 시대에 근본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파이터의 풍모를 강하게  풍기는 지성이다.


https://youtu.be/7eO-vPYHx5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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