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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1. 2020

개인 간 정보처리 채널의 효율성 차이가 빚어내는 오해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는 어느 날, 이웃에 이사 온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왔다. 아이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며 놀았던지 궁금했던 나는 새로 온 친구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 친구들의 성격이 어떤지,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물었다. 아이는 무심한 얼굴을 한 채 엄마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몰라"라며 도리질만 되풀이한다. 여자 아이들 같았더라면 이런 상황에서 종알종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고해바칠 텐데.... 아이가 친구들과 행복한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엄마는 모른다는 대답만 되풀이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에 구름이 드리워지고 의문은 커져간다. 이럴 수가.... 하루 종일 같이 놀았는데 이름을 모른다니... 이 아이가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는 것일까? 혹시 소셜 스킬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친구들과의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관심이 없는 것일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고민의 수렁에 빠져들기 직전 엄마는 급기야는 아이를 다그친다.  높아지는 엄마의 목소리에 눈빛이 흔들린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한다. "친구의 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 그리고 나는 적혀있는 것을 눈으로 봐야 기억을 할 수 있어 엄마.  같이 놀았던 친구는 나이스하고 재미있었어."라고 대답한다. 아 그랬구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 이름이나 인상착의를 잘 기억 못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네가 그중의 한 명이구나. 아 미안해라.... 알려줘서 고마워.  소녀였던 엄마는 소년이 아니었기에 자신이 키우는 소년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아이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혈압이 올라가곤 한다. 그런데, 눈으로 보지 않으면 들은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아이의 대답은 기특하게도 아이를 이해하는데 힌트를 주었다. 내가 낳아서 기르는 아이들이지만 각자의 내면세계와 개성이 무르익어 갈수록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게 말해주니, 아이를 이해하는데 단서가 될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돌이 되기 전에 짐보리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놀이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적정 월령이 되자 짐보리 뮤직 클래스에 등록을 했다. 뒤 똥 거리며 겨우 걷는 연령의 아이들이라 주로 다양한 타악기들을 만지고 소리를 듣고 박자감 리듬감을 익히는 놀이 같은 수업이 진행되었다. 클래스에 들어간 아이는 막상 타악기가 만들어 내는 다채로운 소리들을 무시하고 자그마한 악기들이며 놀이실 곳곳에 새겨져 있는 손톱만 한 크기의 짐보리 로고들을 찾아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마치 보물 찾기에서 보물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이 악기와 놀이실 구석구석에서 짐보리 로고를 발견할 땐 희열을 느끼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흥미를 끄는 것은 타악기들이 만드는 소리, 청각 자극보다는 짐보리 로고라는 시각적 자극이었다. 자동차 뒷좌석의 베이비 시트에 앉아 엄마를 따라다니며 제일 먼저 익힌 알파벳 역시도 멕도널드의 사인인 M자와 SK 였다. 멕도널드와 SK주유소의 거대한 로고는 도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고, 돌도  되지 않은 아기의 눈에는 무작위로 눈에 띄는 거리의 시각적 자극이 여간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M자와 S를 식별하게 된 아이는 티브이 브라운관에 붙어있는 samsung의 엠블럼에서 m자와 s를 그 작은 손가락으로 꼭꼭 짚으며 또다시 희열에 가득한 표정을 짓곤 했었다. 말도 못 하는 어린 아기였지만 눈으로 보고 세상을 배우는 시각 학습자였던 것이다.

반면에 역시 달리는 차의 뒷좌석에서 베이비시트 자란 둘째는 카오디오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끝나면 방금들은 멜로디를 반드시 흉내 내며 흥얼거리곤 했다. 엄마랑 대화할 때면 엄마의 말을 되풀이해서 말한 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들려주곤 했다. 귀를 간지럽히는 공기의 울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어린 청각 학습자였던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경험하는 감각기관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촉감으로 느끼는 오감의 입력 기관이지만, 세상으로부터 들어오는 인지적 정보를 처리하는 두 가지 주된 기제는 시각정보 처리와 청각정보 처리다. "보고" "들어"서 세상을 경험하고 학습하는 기제는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편하고 쉬운 쪽이 있어 개인의 학습 스타일은 두 가지로 나뉜다. 언어적 정보를 귀로 들어 이해하는 것이 편한 사람들, 즉 청각정보  처리가 효율적인 사람들 (Auditory learners) 이 있는 반면,  눈으로 보아야 이해와 기억이 분명 해지는 시각정보 처리가 효율적인 사람들 ( visual learners)이 있다. 청각이 발달한 사람들은 음성정보나 강의를 들어서 이해하는 편이 훨씬 편하고 효율적인 사람들이다.  청각 처리가 일어나는 두뇌의 주요 부위는 귀 주변의 신피질 -측두엽이다. 반면에 활자나 그림의 형태 등 시각적으로 제시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훨씬 편안한 사람들이 있다. 시각적 정보가 궁극적으로 통합되고 처리되는 부위는 두뇌의 후두부인 후두엽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고사성어는 시각정보의 압도적 효율성을 증거 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 인구의 65%는 시각정보를 주로 사용하는 학습자 ( visual learners)라는 사회과학연구 네트워크( Social Science Research Network)의 보고도 있듯이, 이들의 비율은 압도적이다. 매우 적은 퍼센트이기는 하지만, 만져보고 만들어봄으로써 학습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한글로 굳이 번역해 보자면 그들을 촉각 운동 학습자들 tactile/kinetic learners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엄마가 아이의 나이였던 그 시절의 기억은 어떠했던가. 한번 들은 것을 잘 잊어버리지 않는 습성이 있었던 나는 초등학교 입학해서는 구태여 알림장 같은 것을 쓰기를 귀챦아했고, 친구의 전화번호를 적어둔다거나, 약속 시간이나 장소를 적어두는 것을 귀챦아했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듣고 있으면 자동 기억이 되기 때문에 알림장이나 메모나 노트를 하는 일이 귀챦게 느껴지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칠판에 판서를 하지 않고 한 시간 내도록 음성으로 수업을 끝내는 영어 시간이 가장 몰입도가 높은 시간이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수업을 이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한 번 쓰느니 여러 번 읽는 것이 편했다.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기 위해서 손을 움직여서 뭔가를 만들어 보는 일은 더더군다나 귀챦았다. 청각을 주로 사용하는 학습자들의 특성이 그러하듯이 어학과 음악에 강했다.  중학교 들어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시에서 주관한 영어 듣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두 해 연속 참가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의 한국에서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청소년기의 내 행동 습성과 학습 방식은 매우 전형적인 청각 학습자 auditory learner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청각 학습자의 행태를 한 가지 더 부연하자면, 근래에 새로 생긴 취미는 산책하고 운전하면서 오디오북 듣기이다. 오디오북은 매우 엄청나게 좋은 효율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시초 역시 노래였다.


 이 모든 정보를 정리해 보면, 엄마가 아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그리고 오해와 갈등을 불러왔던 원인은 아마도 아이가 주로 사용하는 정보처리 채널과 엄마의 주된 정보처리 채널이 상반됨에 따르는 결과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아이와 엄마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심의 초점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엄마와 아이가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차이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살아갈 때, 엄마와 아이들은 또 아내와 남편들은 얼마나 많은 오해와 갈등을 겪을 것인가? 확률적으로 말하자면 엄마는 30%에 속하는 청각 학습자이고, 아들은 매우 보편적인  시각 학습 + 운동 학습인 70% 에 속하는 시각 학습자이다. 때문에, 그때의 하루 종일 같이 놀았던 친구의 신상명세를 기억하지 못해 엄마를 당황하게 했던 일을 비롯한 아이의 이해하기 어려웠던 행동들은 아직 어린 유아들의 보편적인 반응이었던 것이었다. 엄마가 아이의 행동의 원인을 추론하기 위해 가용할 데이터가 너무나 협소했던 것이다. 미안하다 아들아.


        청각 학습자와 시각 학습자의 비율에 관해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꾸린 가정에도 고스란히 투사된다. 우리 집 구성원들의 75%는 남자이며 그들은 현재의 엔지니어와 미래의 엔지니어들이다. 그들은 일관되게 시각 정보처리를 주로 하는  Visual learners이며, 아울러  보고 만지고 만들어 봄으로서 대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운동/촉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kinetic/tactile  3차원적 학습을 주로 한다. 반면에, 25%에 해당하는 유일한 여성 멤버는 청각 처리를 주된 학습 기제로 사용하며, 이 여성 구성원에게는 만들어보고 움직여 봄으로서 무언가를 배우는 방식이 오히려 집중과 몰두를 떨어트린다. 추상적 개념 일색인 심리학을 공부한 청각 학습자와, 더없이 구체적인 엔지니어와 시각 학습자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은 무척 다른 것이었다.


        이처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보처리의 주된 기제가 달랐기 때문에 엄마 된 입장에서는 아이를 오해하는 일이 잦았다. 한참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은 성격, 행동방식, 그리고 학습 방식이 한참 형성되는 중이기 때문에 본인도 스스로를 잘 모르고, 엄마 역시도 아이의 특성이 의문스러운 것이다. 육아라는 길고 어려운 과정은 아이가 어떤 특성과 개성을 지닌 객체로 성장해 가는지를 지켜보는 과정이므로 아이를 다그칠 것이 아니라 엄마의 생각 범위를 넓혀야 한다. 더군다나 엄마가  25% ~ 30%에 속하는 청각 학습자 즉, 마이너리티의 일원일 경우에는 더더욱. 다행히 우리 집의 마이너리티인 청각 학습자는 심리학적 지식을 근거로 가족 구성원의 다름을 이해하며, 청각적 정보처리방식에서 비롯된 자기중심적 이해의 한계로 아이들에게 저지른 실수를 사과하며 살아가고 있다. 성격과 언어의 차이는 금방 표가 나는 반면, 가족 구성원이 어떤 식으로 정보처리를 하느냐의 문제는 쉽게 한눈에 파악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정보처리의 효율성은 성격차이 못지않게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극복해야 할 간극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시각적 학습자들의 특성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두 단계 이상, 여러 단계 과제를 지시할 경우, 구두지시보다는 리스트를 작성해서 보여 주는 방법을 권한다. 큰 아이에게 이거랑, 저거랑, 조것을 해 두어라.라고 한 번에 지시하는 일은 화를 부른다. 한 번에 하나씩만 지시를 한다. (엄마가 하라는 그거 다 했니? 그러면 그다음에는...)  

*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연을 보아야 한다. (미국의 매우 이름난 기업에서 산업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직업이 말해주듯이 이 친구는 매우 강력한 visual learner이다. 언젠가 내 레시피와 음식 만드는 과정을 서너 단계로 매우 쉽게 설명해 주었더니, 자신은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보아야 이해가 된다면서 내가 만드는 과정을 비디오 촬영해서 보여달라고 한 적이 있다. 청각 학습자들은 대게 음식의 조리 과정을 전해 들으면 이해하고 재현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 장황하고 긴 설명이나 프레젠테이션이 길어질 때는 종종 주의를 상실한다. 이들에게 설명은 짧고 간단하게

* 무언가를 기억하게 하고 싶을 때는 구두 지시보다는 노트나 문서의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 시각적 학습자들은 주로 대상이나 개념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 이미지를 기억 속에 저장한다.

* 언어적 정보를 시각적 이미지로 번역하여 처리하기 때문에 시각적 학습자들의 언어 처리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 수업시간에는 들은 내용을 모조리 받아 적는다. 시각적 기록을 만든 후 정보를 처리한다.  강의 노트가 앞에 있더라도 본인의 노트를 작성한다.

*그러므로 텍스트로 가득한 교재보다는 다양한 그림과 그래프 등의 시각적 정보가 포함된 교육자료를 훨씬 편하게 받아들인다.

*음악보다는 미술을 좋아하고 미술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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