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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1. 2020

감각 예민성: 소리에 대한 그녀의 유별난 감각

나를 미워하는 누군가 나를 직간접으로 고문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내 근처를 맴돌며 휘파람을 줄곧 불거나, 아침 이른 시간이나 밤늦은 시간에 음역대를 넓게 쓰는 피아노나 바이얼린 소나타, 또는 수십 개의 악기가 동시에 연주되는 교향곡을 틀어 놓으면 된다. 가늘고 높은 소리를 흡수할 때의 내 귀는, 내이 (inner ear) 의 헤어셀들이 전기 자극의 과부하로 빠지직 빠지직 타오르면서 아주 피카츄 전기 구이가 된 기분이다. 이런 예민한 귀가 느끼는 고통을 남편에게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어느 자정이 넘은 밤, 남편은, 바이얼린과 피아노가 서로를 향해 긁어대는 부부의 대화 같은 베토벤의 크로이쳐 소나타를 한번은 정경화의 연주로 한번은 앤 소피 무터의 연주로 비교해 가며 나에게 감상을 물어왔다. 남편에게 대답을 하는 대신 마음 속으로 하나부터 열 까지 세는 동안, 문득 초등 3년 애니의 처절한 외침과, 왜 미국의 선생들이 그토록 철저히 단순하게 학생들을 제어하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카페테리아에서의 소음에 압도당하는 애니는 초등학교 3학년인 여학생이다. 애니는 점심시간의 소음이 너무나 괴로워, 카페테리아 정면의 무대 위에 쳐전 커튼 뒤에 숨듯이 혼자 앉아 식사를 하거나 교실에서 그룹 활동을 할 때면 교실을 뛰쳐나오곤 했다. 내가 도우러 갔을 때, 소녀는 점심시간의 급우들을 이렇게 말하며 내 앞에서 울었다; 수천 명의 원숭이 때가 소리를 바나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 참을 수가 없어요.... 도와주세요오오오... 애니의 외침처럼 나도 외치고 싶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크로이쳐 소나타는 내 귀와 머리를 너무 아프게 해요오오오. 



예민한 감각과 지각이 대인 간 상호작용에 갈등을 불러오는 경우는 종종 발견된다.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까칠하게 구는 사람들, 별 일 아닌데 공격적으로까지 변하는 사람들....남달리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긴장하거나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작은 바스락거림에도 신경이 곤두서거나 때로는 초인간적인 현실과 상상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지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임신 중 장거리 운전을 해야했던 어느 날, 고속도로 위에서 장대비에 갖혀 버렸던 어느 날 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누운 내 귀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남편에게 전화를 받든지 끄던지 해 달라고 여러번 되풀이해 말했을 때 남편의 그 당황하며 흔들리던 눈동자는 "이 여자가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는 불안을 전하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를 어떻게 하라는 나의 닥달에 집 밖으로 나갔다 온 그는 100미터 정도 떨어진 아파트의 반대쪽 복도 끝의 어느 집에 전화벨이 울리고 있더라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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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의 신경은 살짝만 가속페달을 밟아도 신속하게 발진하는 자동차와 같다고나 할까


감각 예민성 sensory sensitivity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병리적 특징이기도 하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주요 인식 기관은 청각, 시각, 촉각, 미각, 후각 등 다섯 가지 통로가 있지만 사람마다 주되게 사용하는 인식 기관은 다른데, 아스퍼거나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 소리, 빛, 냄새, 촉각, 맛 등에 특이한 예민반응을 보인다. 신경학적으로 말하자면 빚의 입자라든가, 소리의 진동이라든가, 냄새라든가, 피부에 닿는 감각을 느끼는 물리적 자극이 감각기관을 통해 대뇌에 전달되어 전기적 신호로 발화되는데 필요한 역치가 상대적으로 낮아 미미한 물리적 자극조차도 쉽게 전기적 신호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촉각이 예민한 소아들의 경우 책을 읽을 때 책장을 자기 손으로 터치하지 않고 꼭 엄마 손을 잡고서 자기가 원하는 부분을 가리킨다거나, 입에 닿는 촉감이 싫어서 특정한 음식을 거부 하기도 한다. 필라멘트에 전류 흐르는 소리가 성가셔서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하는 경우는 매우 곤란할 것이다. 



평상시는 물론이고, 미국의 학교들에선 학기 말이나 명절 기간에는 분위기가 들뜨고 예외적인 행사들이 잦다. 일상에서 벗어난 이벤트성 행사들을 교실 안팎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은 자폐스펙트럼 상에 있는 많은 학생들에게는 종종 과도한 자극이된다. 아직 어리고 성장 중인 아동들에게 이런 상황은 통제하기 어려운 자극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경험일 것이다. 짜증을 참을 수 없는 경우에는 친구와 선생님에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심지어 학교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아무도 찾지 못하는 구석에 숨어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경우들도 있다. 반대로 통증이나 특정 자극에 둔감 하여 높은 데서 뛰어내리고 다쳐도 별다른 통증을 호소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이면서도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청각 예민성에 관해 나 자신을 관찰하여 얻게 된 결론은 재미있다. 외부 자극이나 정보를 눈으로 읽어서 처리하는 것보다는 귀로 들어서 처리하는 쪽이 좀 더 편했던 걸 보면, 나의 주된 인식과 정보처리기관은 청각인듯한데, 물론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것도 귀로 듣고 즐기는 것 못지않게 좋아한다. 매우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특이사항 중에는 특정한 소리나 특정한 악기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힘들어한다는 점도 있다. 바이얼린의 높고 날카로운 소리는 가까이서 듣기가 힘들고, 하루 중 특정 악기의 특정 음역대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어떤 사람들은 내이의 (inner ear) 헤어 셀들이 공기의 물리적 파장을 전기적 신호로 바꾸는 역치가 상대적으로 낮거나, 특정 주파수대의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이런 자극들에 대한 생리학적/심리학적 반응은 마치 살짝만 가속기를 밟아도 급발진하는 자동차와 같다고나 할까. 이러한 이유로 아이들의 바이얼린 연습을 돌봐주는 일은 실은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귀에서 북소리가 울리니...


이 문제를 대처해 가기 위해서는, 밤 열 시 이후로 그가 나와 함께 들을 음악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는 나는 애니가 아니라 미국식 선생이라야 했다. 나와 함께 밤에 들어도 되는 곡들은 브람스 Cello Sonata in E minor, 모차르트  violin sonata in E minor,  그리고 쇼팽의 녹턴들이다. 쇼팽 에뛰드는 절대 안 된다. 왜 E minor 곡들은 들어도 괜찮은가? 이유는 나도 모른다. 음악이론은 모르지만 그 스케일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하루 중 어느 때이고 내 청각에 신경학적 과부하를 걸어오지 않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밝은 봄날의 꽃핀 들판이 연상될 하게 하고 예쁘게 장식된 생크림 케이크를 먹으면서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은연중에 들고는 했으므로..... 그 경쾌함과 화사함이 내게는 부담스러웠던지도 모르겠다. 해서, 모짜르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에 계신 아빠가 돌아가신지 두 달이 지난 후, 건드리면 주저앉아 버릴 것 같던 마음을 애써 동여매고 뉴욕 상공을 날아 텍사스의 내 집으로 돌아오던 그 겨울날 저녁 어스름이었다. 눈 아래로 펼쳐친 꽃밭처럼 환한 불빛을 밝힌 거대한 도시. 수천 킬로 상공에서 그 따뜻해 보이는 오렌지빛 꽃밭의 광경에 온기를 느낀다. 헤드폰을 쓰고 문득 고른 곡은 모차르트의 바이얼린 소나타. 모차르트답지 않은 E minor의 구슬픈 곡이 그날 그 저녁의 내 마음에는  천천히 끝까지 흡수되었다. 레퀴엠을 제외하고는 장조의 곡들만 신앙처럼 작곡했던 모차르트가 만들어 낸 유일한 단조의 바이얼린 소나타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었었다. 그래서 내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구나. 그래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모차르트의 곡은 바이얼린 소나타 이 마이너...   



어느 늦은 밤 셀폰 속으로 들어간 수백장의 시디 중에서 선곡을 하던 남편의 손끝이 정지한 곡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무겁고 낮은 소리를 끌며 시작하는 첫 소절이 안심이 되었다. 3악장 끝날 때까지 편안하고 마음에 새겨지는 첼로 소리였다. 브람스와도 별로 친하지 않은데 이 마이너의 첼로 소나타는 심야에 들어도 괜찮다. E minor 소나타들이 한 밤의 내 청각을 위로하는 이유가  나도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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