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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1. 2020

성인의 주의력 결핍 과잉활동 장애 (ADHD)?


Be kind;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JOHN WATSON



        두 아이들의 첫 바이올린 선생님은 남부 출신의 고전적인 단아함을 풍기는 백인 여자 선생님이었다.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벤더빌트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실력파였다. 교수법도 매우 흥미롭고 아이들이 단박에 연주에 흥미를 느끼게끔 가르치는 재주도 뛰어났다. 겨우 바이올린을 손에 잡기 시작한 두 아이들에게 레슨을 마치고 나면  대학 노트 서너 장씩, 그날의 레슨 내용과 숙제를 적어주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아이들이 다 소화하기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과제의 페이지 수는 늘어났다. 자신이 음대를 다닐 때 워낙 한국 중국 학생들이 많아서 아시아로 유학 온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며, 한국 문화에 대한 친숙함도 드러내 나와도 재미있게 지냈다. 그런데, 다 좋은데 스케줄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선생님은 한 학기에 한 번씩은 한 달간이나 해외여행을 다녔고, 또 연말이 되면 여기저기 지역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느라 레슨 날짜를 이리저리 옮기고 메이크업을 하느라 아이들 스케줄 관리가 혼란스러웠다. 물론 개인 레슨을 여러 곳에서 하느라, 여러 곳으로 이동 중이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자동차 트렁크와 실내는 마치 이사 다니는 사람의 그것처럼 짐이 늘 가득했다. 늘 부산하고, 이동 중이고, 계획 변경 중인 그녀를 보면 내가 정신이 없고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나서 레슨을 오래 쉬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레슨이 연기되던 중, 우리는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쯤 흐른 뒤 바이올린 샵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선생님의 근황을 전해 듣게 되었는데, 또 자동차 사고를 겪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알기로도 이 선생님이 최근 5-6년간 세 번의 교통사고를 겪은 것이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개인 레슨을 여러 곳에 다니는 일에 더해 언젠가는, 인근의 중학교 뮤직 디렉터로 취직을 했다가 얼마 안 가 금방 전직을 한 해도 있다.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요가에 매진하던 중, 최근에는 어느 요가 스튜디오에 매니저 겸 요가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며 오픈 클래스에 초대한다는 초청장을 보내왔다. 조만간 그녀의 요가 클래스를 방문해 볼 예정이다.


case # 1.  사고를 부르는 성인의 주의력 결핍 과잉활동 장애


        산만함, 분주함, 한 가지 직업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보다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 전력, 게다가 결정적으로 여러 번의 교통사고의 전력까지.... 그녀를 가까이서 지켜본 최근 몇 년간의 히스토리를 감안해 본다면,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같다는  ADHD에 관한 묘사는 그녀를 설명하기에 꽤나 적합한 표현 같기도 하다. 그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통제해보려는 노력이었던지, 그녀는 미국 사람답지 않게 동양적인 정신 수련, 마인드 컨트롤 같은 문제에 심취해 있기도 하다. 조심스레 짐작해 보는 바는 그녀가 아마도 성인 주의력 결핍 과잉활동 증후군의 전형적인 증상들을 다스리기 위해 마음 수련과 요가 등을 나름의 치료방식으로 택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2. 일찍 발견되어 치료받지 못한, 진단되지 않은 ADHD        


        이처럼 정신적인 또는 육체적인 에너지가 사방으로 솟구쳐 한곳에 집중하고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태를 건설적으로 승화시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간 경우라면 매우 다행스럽고 운이 좋은 편이다. 소아기에  흔히 발병하는 ADHD라는 신경학적 장애가, 장애로 인식되지 못한 결과 조기에 치료받지 못하고, 오히려 별종 또는 공부 못하는 문제학생 취급을 받다가 성인까지 이어졌을 경우, 그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 또는 주변인들이 겪는 곤란은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들은 충동적이기 때문에 행동이 종잡을 수가 없고, 충동적으로 일을 벌이고, 시작은 하는데 계획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하고, 또 마무리 짓지 못하는 행동들을 보임으로서 대인관계나 학업이나 또는 직업 기능 수행 하기가 곤란한 것은 물론이다. 결과로 가계 경제를 꾸려가는데도 문제가 있으며, 한 가지 직업을 끈기 있게 유지하지 못하고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거나 직업 자체를 바꾸는 일이 흔하다. 사회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차적으로 겪는 심리적 갈등은, 소아 ADHD와는 달리,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분노조절 장애, 과민한 성격,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 중독이나 일탈 행위, 규범 위반 등의 이차적인 문제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하여, 보건복지부는 2016년 9월부터 ADHD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대상을 기존 6~18세에서 65세까지로 확대하였다고 한다. 


case #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찾은 사람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천재로 칭송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현재 생존한다면 아마 ADHD로 진단받았을 것이라는 견해가 일부 심리학자들 사이에 대두된다. 물론 정신과적 장애의 진단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만 내리는 것이기에 다빈치 사후에 그가 ADHD를 앓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과 노트들을 분석하는 작업은 성인 ADHD 의 전형적인 특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두드러진 점은 그가 생전에 굉장히 많은 예술 작품을 시작하였지만 완성작은 고작 25 점에 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인 ADHD의 경우 이들은 감각 채널이 동시다발적으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활성화되어 정보처리가 압도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동시에 많은 생각, 상상력과,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활성화되고 활성화된 에너지들을 분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멀티 태스킹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문제는 주의력이 지속되지 않고 도중에 끝을 낸다거나 다른 주제로 옮겨 가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가, 조각가, 철학자, 의학자, 소설가, 시인의 역할을 두루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필체는 판독하기가 지난 한 것으로 악명이 높고,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글을 뒤집어서 써 놓는, 미러링의 증상을 보였던 점은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과 일치한다. 난독증은 ADHD와 병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주의력 결핍 과잉활동 장애의 증상들을 보이는 유명인사들도 적지 않다. 코미디언 같은 영화배우 짐 케리와 (전혀 놀랍지 않다. ^^) 영화에서 맡은 역마다 캐릭터 완전 변신이 가능한 라이언 고슬링 역시 ADHD로 인해 어린 시절 특수 교육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이 스크린에서 분출하는 그 넘치는 에너지와 활동력을 연기에 쏟아부을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했더라면, 아마 직장을 여러 번 갈아치우며 이곳저곳을 전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락 밴드 머룬 파이브의 모기소리 창법을 자랑하는 애덤 레빈의 경우, 어린 시절 자신의 증상이 약물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증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오히려 심적인 위안이 되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올림픽 통산 22개의 메달을 미국에 안긴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의 경우는, 교장 선생님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그의  ADHD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 권유했던 것이 수영이었고, 그것이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만약 마이클 펠프스가 한국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교장선생님이었다면 그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성인 ADHD 부주의 증상은 다음과 같다.

1. 지루하거나 어려운 과제를 할 때 부주의한 실수를 자주 한다.

2. 지루하거나 반복적인 작업을 할 때 주의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3. 당신에게 직접 말을 하고 있는 타인에게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4. 조직화가 필요한 과제를 해나가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5. 일의 최종적인 세부사항을 마무리 짓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6. 많은 생각이 필요한 과제를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

7. 가정이나 직장에서 물건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8.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소음에 자주 주의가 분산된다.

9. 약속 또는 의무적인 사항(출퇴근)을 기억하는 것이 어렵다.

--> 이 중 4개 이상 해당될 때 전문가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성인 ADHD 과잉행동 증상은 다음과 같다.

1. 오랫동안 앉아 있을 때 손이나 신체를 매우 자주 꼼지락거린다.

2. 마치 모터가 달린 것처럼 지나치게 활동적이다.

3. 계속 앉아있어야 하는 회의 등에서 자주 자리를 비운다.

4.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기분을 자주 느낀다.

5. 긴장을 풀고 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6. 사회적 상황에서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한다.

7. 타인이 말을 끝마치기 전에 끼어들어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8. 순서를 기다리기 어렵다.

9. 타인이 바쁠 때 귀찮게 구는 경우가 잦다.

--> 이 중 4개 이상 해당될 때 전문가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나는 과연 후천성 ADHD인가??


        무엇이든 일렬로 세워 놓고 순위를 매겨야 직성이 풀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순위 경쟁 사회 못지않게 자본주의의 메카인 미국 사회 역시 무한경쟁의 피로감에 젖어 있다. 에너지가 바닥을 치고, 기억력은 희미해져 가며, 피로감 충만한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한 번쯤 혹시 내가 ADHD가 있는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시점이 있을지 모른다. 세월의 무게와 함께 우리에게  부여되는 역할의 다양성과 그 역할의 무게에 짓눌리고, 어깨 위에 내려앉은 책임감의 부피가 점점 커져가다 보면 정신적 에너지는 고갈된다. 논바닥처럼 갈라진 마음밭에서는 감정은 불길처럼 솓구쳐 오르고, 충동 조절도 원활하지 않게되며, 결정장애는 덤으로 따라온다. 그런 시간의 연속되다 보면 커져가는 공허감과 함께 젖은 솜뭉치처럼 쪼그라들어버린 자신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덫에 걸린 것 같은 막막한 심정이 우리를 압도하는 어느 날, 나는 혹시 후천성 ADHD가 아닐까 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작업기능 working memory의 기능 저하와 관계있는데, 연구 결과들이 일관되게 밝혀낸 것은 ADHD를 가진 사람들이 working memory 작업 기억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다는 점이다. 작업 기억은 정신적인 노트나  포스트잇이라고 은유적으로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필요한 정보를 잠시 기억하고 이용할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방금 눈으로 보거나 (시각적 기억) 귀로 들은 내용을 (청각적 기억) 적어도 일 이분 간은 기억한다. 전화번호나 사람의 이름을 몇 분간은 기억하지만,  장기 기억으로 돌리기 위해서 되풀이 반복해서 복습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린다. 학교에서 배워서 알 거나 책을 읽어 알게 된 지식은 기억에 오래 남는데, 이들은 반복 학습을 통해서 장기 기억으로 굳어진 결과이다. 결국은 보거나 들은 정보를 짧은 시간 동안 기억하면서 그것에 기반해 과제를 처리해 나가는 인지적 과정을 담당하는 것이 작업기억인데,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이 작업 기억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그 증상은 주의력 결핍 증상과 비슷하기에, 나는 혹시  ADHD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과 에너지가 재충전되길 기다릴 충분한 시간일 뿐.... 지금쯤 어딘가에서 스스로를 후천성 ADHD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진단 내리며 가슴을 치고 있을지 모르는 분들, 그리고 세상에 나가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주고 싶은 비상을 꿈꾸는 많은 분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를 포함한 그대들은 고장 난 신경계 어디쯤을  발견 못한 채 묵혀 두었기에 이리 자존감 쪼그라 든 것이 아니라, 책임감과 삶의 과제 과부하로 잠시 버퍼링의 순간을 경험하고 Working Memory가 오작동을 하는 것일 뿐, 파워를  잠시 제거해 주면 (전원을 꺼주면) 열을 식힌 후 멀쩡하게 재충전, 재작동 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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