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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May 15. 2021

디오니소스의 부활 - 카라바지오

fear 방탄소년단


한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은 연말 연시 시상식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축하 무대를 펼친다. 솔방울이 달린 디오니소스의  지팡이 티르소스를 들고 퍼포먼스를 펼치며 도시의 디오니소스임을 자처하는 그들의 노래는 카라바지오를 연상시킨다. 아이돌 그룹은“투명한 크리스털 잔 속 찰랑대는 예술”  “시대의 고통”과 “너와의 소통”을 외치고 “미친 예술가에게 취하고 예술에 취해 밤새도록 마시자”고 권한다. 무대 뒤의 화면에는 일그러진 진주와  포도 덩굴로 치장한 멤버들의 모습과 빛을 형상화한 머리 장식, 포도와 잔을 채우고 흘러 넘치는 와인의 영상이  가득 드리워졌다. 그것은 바로크의 상징인 동시에 카라바지오의 초기 화풍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다. 짙은 어둠을 배경으로 유혹적인 표정의 멤버들을 전면에 클로즈업 한 화면은 디오니소스와의 동일시가 아니라면 영락없는  21세기 아이돌 그룹의 카라바지오에 대한 헌정이었다. 미켈란젤로 카라바지오는  바로크 회화를 창시한 대가일 뿐 아니라  21세기에 다시 주목받는 화가다. 그가 우리 시대와 갖는 접점 중의 하나는 반복되는 유행병으로 사회가 혼란을 겪던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이다.


카라바지오가 직설적인 빛과 어둠의 대립을 화면에 도입하고 전에 없던 창작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르네상스 회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던 것처럼, 방탄 소년단의 직설적이고 폭발적인 퍼포먼스는 21세기의 글로벌 쇼비즈니스를 정복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매우 격정적인 인간적이었던 바로크의 대가 카라바지오는 빛과 어둠의 극한 대립을 설정해 선과 악의 이분법을 표현하고, 과장되고 직설적인  감정을 토로라는 바로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지극히 대중친화적이고 현실적인 세계관을 성화 제작에 투영함으로써 초월적 세계와 논리적 균형을 정수로 삼는 르네상스적 미학관을 무너트린 것이다. 16세기 밀라노 출신 카라바지오가 창조해낸 바로크의 빛은 자연의 광휘를 모방하던 플로렌스의 빛과도 달랐고, 신성을 상징하던 로마의 빛과도 달랐다. 암흑과 빛이 교차하는 연극의 스틸컷 같은 그림은 순교와 박해, 개종의 순간, 그리고 신앙적 단죄의 순간에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을 근접 묘사함으로써 감각적 충격을 극대화 한다.


그러나 빛과 어둠의 대립을 통해 들려주는 폭력적인 순교와 단죄의 이야기보다도 더 극적이었던 것은 화가의 현실적 삶의 행보다. 가톨릭의 총애를 받는 천재 화가로서의 삶이 빛이었다면 폭력과 살인 전과에 따른 수감과 도주를 반복하다 객사한 그의 삶은 암흑의 그림자다. 빛과 어둠의 극단적인 대립 구도로 성과 속에 속한 두 세계를 조명한 바로크의 빛은 그 시대 회화의 기준이 되었고 그를 추종하는 숱한 카라바지스트들이 양산되었지만,  통제되지 폭력적인 광기는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고 말았다.  여성성과  남성성, 천재성과 광기를 동시에  지닌 양면성의 신, 바쿠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으로 미술계에 등장한 이후 카라바지오는 도발적이고 속된 캐릭터로 자기 그림에 얼굴을 내비친다. 유작이 된 <골리앗의 목을 든 다윗>에서는 마침내 다윗의 돌에 맞아 죽은 괴물 같은 골리앗의 얼굴로 등장한다. 준엄한 자기 정죄의 마음을 담은 듯한 유작 속 다윗과  골리앗의 얼굴은 천재 예술가와  광인의 삶을 동시에 살았던  한 인간의 비극적인 종말을  기록한 자화상이다. 양극단을 오갔던 그의 이중적인 삶은 그 어떤 대가들보다 흥미로운 심리학적 주제를 제시할 뿐 아니라 그림에 투사된 지속적이고 일관된 폭력성의 흔적은 병리 분석적 접근의 단서를 제시한다. 슈퍼스타였던 한 화가의 반사회적 폭력의 광기는 가톨릭의 엄호로도 구원할 수 없는 것이었고 죄의 대가로 받게 될 참수형의 공포는 망령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 Young Sick Bacchus> 1593, Oil on canvas, Galleria Borghese, Rome


Caravaggio <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10, Oil on canvas, Galleria Borghese, Rome

이탈리아의 사진작가 롱기 (Roberto Longi)가 1950년대 카라바지오 전시를 개최하면서 재주목받기 시작한 이후 서구의 영화감독과 사진작가들은 그의 예술과 기법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영국의 영화감독 데릭 저먼이 1986년 제작한 <카라바지오>는 화가를 둘러싼 동성애, 살인과 폭력의 주제를 연대기적으로 풀어가며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투사했다. 할리우드가 아닌 유럽적 정서를 담은 영화로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재현하는데 화면의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연극처럼 진행되는 독특한 스크린플레이를 선보이는 이 영화에는 유명한 여배우 틸다 스원턴이 거리의 여인 역할로 등장하여 마리 막달레인의 모델 역할을 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카라바지오의 그림 전반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카라바지오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암흑세계를 그려냈다’고 말한다. 카라바지오가 창조한 빛과 암흑의 대립은 마치 현세기의 할리우드 조명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는 카라바지오가 빛을 연출한 기법에 관한 논평일 뿐 아니라 성과 폭력성의 상품화라는 미국 영화산업의 주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회화계의 쿠엔틴 타란티노라고 말한다. 카라바지오가  20세기 후반에 가장 주목받는 거장으로  부활한 이유는 바로 그가 다룬 성과 속, 빛과 어둠의 대립이 연주하는 격정적 드라마라는 주제와  헐리우드의 키워드가 맞물린다는 점이다. 카라바지오의 흡인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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