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처녀 본성
하늘에서 보자면, 한반도라는 지형은 대륙의 끝자락이 바다를 향해 내리 달린 거대한 산등성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고, 그런 환경에서 나서 자란 한국 사람들의 정서의 근간은 산골 소년 소녀들의 그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외국 생활을 하며 가장 그리운 것은 산, 푸른 산과 깨끗한 바다다. 그리고 청명하고 싸늘한 가을 아침의 대기.
지금은 아마도 매워졌겠지만, 모교에는 계곡이 두 개나 있었는데, 학교 한가운데로 흐르는 두 개의 계곡을 따라 군데군데 설치된 벤치와 모임을 위해 조금 다듬어 놓은, 모래와 자갈이 깔린 호젓한 공간들을 발견한 것은 입시 전날 예비 소집일 이었다. 앉아서 쉬었다 가세요 하는 듯한 계곡을 발견하고 선 입시 전날의 긴장과 불안은 많이 진정이 되었고 낯설고 거대한 캠퍼스가 금세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중간고사 때가 되면 산등성이 가득 차오르던, 밤이 뿜어내는 숲의 향기와 아카시아 향기를 따라 그리고 계곡의 차분한 물소리를 따라 길고 긴 저녁 산책을 나서곤 했었다. 산책을 끝내고 도서관으로 돌아가기가 아쉽던 봄 밤의 기억들은 엄마가 되어서도 언제나 선명하게 그리운 시간들이다. 황지우 시인은 "스펀지 같은 봄 밤"이라고도 했다.
아, 그리고 비 그친 후 학교의 가장 높은 건물을 감싸고 피어오르던 안개. 산 속에서 피어오르는 여름 한 낮의 안개도 자연의 마술이다. 비 개인 후의 무지개만큼 장관이다.
대학 시절, 마음 답답한 어떤 날들은 힐을 신은 채로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산길을 오르곤 했었다. 산 정상에 있는 이제는 납작해진 오래된 성벽에 걸터앉아 저 멀리 바다를 한참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다가 하늘인지 하늘이 바다인지, 바다에 떠 있는 것이 섬인지 하늘의 구름인지 도통 헷갈리게 되는 순간이 오곤 했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순간을 감동하며 즐기던 기억도 여전히 선명하다.
그러나 이제 산에 오를 수 있는 때는 언제나 여름, 그래서 귀국한 다음 날 아침이면 시차는 비행기에 두고 내리기라도 한 듯, 집 뒤의 산으로 곧장 산책을 나서곤 한다. 아쉽게도 내가 이십 대를 보내며 오르내리던 멀리 있는 높은 산이 아니라, 시댁 뒤에 있는 언덕 같은 대모산이다. 대모산은 산이라기엔 부끄러운 높이로 해발 300미터가 채 되지 않고, 조금 덩치 큰 언덕이라고 하면 적격이겠다. 해서 등산이라기 보단 산책이란 말이 어울린다. 산책길은 너무나 아기자기 다채롭다.
산책길 입구에 무리 지어 나를 반기는 원추리 정원을 지나며, 산의 색깔이 가장 아름다울 시절을 떠 올려본다. 여름의 산은 비교적 단순한 색을 입고 있을 테지만, 이 산책로의 봄과 가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그리고 그 가을 아침의 공기는 얼마나 맘을 설레게 할지 매우 그립다.
언제 세웠는지 언덕의 꼭대기 즈음엔 이정표를 이리 세워놓고 지붕씌운 휴식 공간도 설치해 두었다.
여러 가지 수종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숲의 향기는 언제나 반갑다.
친절하게도 나무를 가로놓아 계단을 만들어 놓은 섬세한 손길.
산책길의 끝에는 어린이 놀이터.
이른 아침, 나를 보러 건너온 친구 같은 연경이 언니와 함께 오른 두 번째 산책길에선, 불국사 앞마당에 핀 귀한 꽃들을 발견했다. 자라면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하얀색 짐슨 위드를 불국사 앞마당에서 발견하였는데, 조지아 오키프도 이 꽃을 그린적이 있다.
그러기에 세월이 갈수록 드러나는 것은 이십대를 산 속에서 보낸 산골처녀 본성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