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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onica Apr 11. 2021

짧고 굵게 세상과 만나는 방법

출근길,종이 신문을 읽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길에 집 앞에 배달 온 종이 신문을 챙겨 나간다. 역까지 바쁘게 걸어 지하철에 올라타면 자리에 앉지 않고, 구석 자리에 선 후 가방에 있는 신문을 꺼내 읽는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 지 4년여 남짓, 아주 좋아하는 출근길 루틴이다.



  종이 책을 보며 공부한 세대라 그런지, 스마트폰은커녕 화면이 넓은 태블릿 PC나 노트북으로 글을 읽는 습관은 좀처럼 길러지지 않았다. 긴 시간 집중하기도 어렵고 머리에 잘 들어오는 느낌도 아니라서 여전히 종이 책을 사 모은다. 몇 년에 한 번씩 중고 서점에 몇십 권이 되는 책을 되파는 일을 반복하더라도 여전히 글은 종이로 읽어야 제대로 읽는 것 같다.


  아침 출근길 신문 읽기는 이런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신문을 구독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구독을 위해 신문사에 전화했을 때,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그 신문사의 종이 신문을 구독한 유일한 사람이라, 주소를 자세히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가방이 작아서 미처 신문을 넣지 못하고 손에 쥐고 출근한 날엔, 몇 번이고 종이 신문을 읽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인터넷 기사가 메인이 된 시대, 종이 신문을 읽는다는 게 그만큼 고집스러운 신념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을 읽는 이유는 기사를 편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나 페이스북 링크로 만나는 기사는 ‘클릭’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접속이 가능하므로 아무래도 개인의 성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반면, 매일 아침 종이 신문으로 접하는 기사는 ‘종합 일간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치부터 사회, 경제, 문화까지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골고루 접할 수 있다는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있다. 평소 관심이 없었더라도 특정 분야의 기삿거리가 재미있는 기획 기사로 버무려져 소개되는 경우, 생각지 못한 새로운 지식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인터넷으로는 연속성을 갖고 챙겨 보기 어려운 연재 기사 또한 강력한 의지가 없어도 물 흐르듯 챙겨볼 수 있다.


  아침에 읽는 종이 신문이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은 출근 길이 주는 중압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거다. 아무리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이른 아침 눈을 떠 회사로 향하는 길이 가볍지만은 않을 텐데, 그 길에 읽는 짤막한 신문 기사가 의무와 책임의 스트레스의 덜어주는 건강한 콘텐츠가 되어준다. 녹초가 된 퇴근길, 일 때문에 생긴 짜증이 덜 풀리거나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에도 신문은 현실을 떠날 수 있는 좋은 탈출구다.


  누군가는 종이 신문의 쇠락을 논하지만, 난 그래도 여전히 사명과 실력을 가진 프로페셔널이 편집해 보여주는 세계의 가치를 믿는다. 신문 한 부를 만들기 위해 들인 수십 명의 노력에 감사하며 20분 남짓, 짧지만 깊이 있게 이 사회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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