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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양 Jun 07. 2018

나의 아름다운 가방에 대하여

너무나 시시콜콜한, 아주 개인적인, 어쩌면 흥미로운 이야기들

0. '소비를 전시하는 일'을 그만두었음에도 소비를 전시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소비 그 자체만을 단편적으로 전시하는 것은 내게 더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일이다. 나는 더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사사로이, 모든 것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아주 작은 요소로부터도 의미를 찾으며, 모든 순간에 맥락을 만들며 소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를 내 방식으로 전시한다. 자칭 '작가', 수다스럽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야기꾼이 가방 하나를 가지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1. 지난 겨울, 가방을 하나 샀다.

별다를 것 없을 수 있는 문장이지만 내게는 남다른 무게를 지닌다.

나는 '예쁘다'라는 감상이 '사야지'라는 생각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 그 사이에 더 많은 생각의 단계를 만들어 두었다.

'왜 내 눈에 예뻐보일까?', '저 물건의 어떤 면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을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다른 대상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저 물건이 내 일상 속에 들어왔을 때 어떤 풍경을 만들어 낼까?', '비슷한 기능을 하는 다른 물건을 이미 갖고 있진 않은가?', '이미 가진 물건이 나에게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감동이나 찬사를 자아냈던가?', '(그랬다면) 왜 그 소중함을 잊고 있을까? 그 친구도 아주 아름다웠지!', '(아니었다면) 그 소비를 왜 했을까? 썩 만족스럽지 않았음에도 왜 그 물건으로 골랐고, 값을 지불했었을까?'

... 이런저런 생각들을 이어가다보면, '소유하지 않아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소유 대신 사유를 선택한 것이다. 당장 내 입에, 내 뱃속에 넣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충분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얼른 호주머니에 넣어 내 공간으로 옮겨놓는 대신, 머리와 마음 속에 담고 훌쩍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에는 미처 몰랐다.

좁아지지 않고, 낡지 않고, 먼지쌓여 잊혀져 마침내 버려지지 않는 또 다른 소유의 방법론을 스스로에게 가르쳐준 나는, 나로부터 배운 바를 잘 실천하고 있다.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을 여럿 중복으로 소유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점검한다. 예컨대, 색과 디자인만 다른 유사한 재질과 기능의 외투를 여러 벌 구비하지 않는다. 비슷한 크기의 가방을 여럿 갖지 않는다. 백팩 하나, 옆으로 매는 가방 하나, 에코백 두 개(하나는 회사에, 하나는 집에 두었다), 아주 많은 짐이 들어가는 가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운동화 세 켤레, 구두 한 켤레, 긴 부츠, 비 올 때 신는 작은 부츠, 샌들 한 켤레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분했다.

이런 내게, 가방 하나를 샀다는 사실은 어쩌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소유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당위성을 가졌던 그 가방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목소리로 나를 설득했을까? 무슨 면모가 나를 홀린걸까.


2. 가죽 가방이다.(이 사실은 조금 부끄러우므로...)
나는 3년 전부터 하루 한끼 채식을 실천하며 더는 동물 소재로 만들어진 소장품을 구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그 결심을 잘 이행하고 있다. 그런 내게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약간의 변명을 덧붙이자면, 빈티지 제품이다. 누군가가 사용하던 것을 중고품 매장에서 구입했다. 


3. 그 분은 동독에서 오셨다. 

그 '동독'이 맞다. 엄밀히는 동베를린 정도? 나는 지난 겨울,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살았던 베를린에 다시 다녀왔다. 이번에는 여행이었다. 보고싶던 동료들과 친구들을 만나러 간 그리운 도시에서, 내가 주말마다 혼자 사부작사부작 돌아다니던 거리에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다. 몇 달을 주말마다 지나다니면서도 있는지도 몰랐던 가게. 그 가게를 알게 되고, 들어가게 된 에피소드도 웃기다.


4. 친구가 그릇을 깨트렸다.

돈을 많이 준다는 회사의 신입사원이 될 날이 머지 않았으나, 당면한 현실은 어쨌거나 기구했다. 나는 문구점 탐방을 겸해 베를린 한달 살이를 해보러 온 친구 '뭉'의 에어비엔비 한 켠 소파베드에 얹혀 지내는 처지였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골목이었던 Eberswalderstrasse를 뭉에게 추천했다. 그녀가 -내가 50번쯤 간- 마우어파크 벼룩시장을 구경할 동안 나는 다른 친구를 만날 약속이 있었고, 아주 잠시 그녀 곁을 떠났다.

"언니 걱정마! 나 여기서 잘 구경하고 있을게!"

그리고 그녀는 내가 알려준 영역을 금세 벗어나 골목 사이사이를 배회하다가 작은 상점에 들어선다.

채 두 시간이나 되었을까, 내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그 가게에서 여섯 개 들이 컵 세트 중 하나를 깨먹고, 나머지 다섯 개의 컵 세트를 구입한 뒤였다.

"언니, 나 어떤 가게에서 컵을 하나 깼는데, 물어내야 할 것 같아서 나머지 세트를 다 샀어. 다섯 개." 

해맑게 웃는 그녀를 바라보며 망연자실, 혹시 이 자가 사기라도 당한게 아닐까, 인종차별은 없었을까, 별 생각을 다 하며 쉬익쉬익 콧김을 내뿜던 내게 뭉은

"근데 언니 거기 정말 멋있어! 가보면 언니도 완전 좋아할걸?"

나를 끌고 들어선 그 작고 괴랄한 상점은 정말 별세계였다. 동독 시절의 소장품들을 매입해서 판매하는 중고품 매장이었는데, DDR(동독)박물관에서 보았던 놀라운 디자인들이 거기 다 있었다. 물자가 부족해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섬세하게 설계해서 최대한 자원을 아끼는 방향으로 생산했다던, '그 와중에 매우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제품들을 복각해서 판매하기도 하고, 실제로 당시에 사용했던 제품들이 중고 매물로 나와있었다. 뭉이 깨트렸다던 컵 세트는, 참으로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그 자리에서 그 컵을 깨트린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바로 나였어야 했다고 생각했을만큼. 자비로운 뭉은 나에게 세트를 하나 선물해 주었다. 자기 가족은 네 명이니까, 세트 하나가 남는다며.


5. 그분은 파묻혀 있었다.

사실 그 아름다운 박물관, 아니 박물관이래도 손색이 없다, 골동품 가게에서 옷가지나 가방들은 아무래도 뒷전이었다. 식기류나 기계, 각종 인쇄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문구류들만 보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밀리터리 덕후인(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가장 소중한 운동화 1위는 바로 BW sports의 독일군 운동화다. 복각이 아닌 오리지널 모델로,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독마존을 통해 구입했다.) 나는 군복과 군모 등이 쌓여있는 구석의 먼지 구덩이를 뒤적였고, 그러다 이 가방이 눈에 띈 것이다. 정말이지 아무도 보지 못했음이 틀림없는 구석 오브 구석에서, 처음에는 회색인줄 알았던 먼지 더께가 내 검지손가락 끝에 매달려 건져올려졌다.


6. 모두로부터 존재조차 잊혀졌었다.

먼지를 털어내자 마법진이라도 활성화된듯 모래폭풍이 몰아쳤다. 작은 가게 안의 손님들이 죄 나를 쳐다보더니 얼굴을 찌푸리곤 멀찌감치 떨어졌다. 뭉은 눈이 휘둥그레해져서,

"언니, 대체 그건 어디서 찾아낸거야? 내가 몇 바퀴를 돌았는데 그런건 본 적이 없어!"

가게 직원들도 그런 것이 우리 가게에 있었니? 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7. 추정키로, 60살쯤이시다.

직원들이 수군수군 하더니 가게 주인을 불렀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였다. 내게서 가방을 건네받곤 유심히 살펴보더니,

"이건 나보다 나이가 많아. 50년은 훨씬 더 됐을거야. 60년, 어쩌면 70년쯤."

뭉과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50년도 더 된 가방이, 물론 먼지로 옷을 지어 입으셨지만, 새 것처럼 사용한 흔적 하나 없이 봉긋하고 탱탱한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열어보았더니 어머나, 열리고 또 열리는 이중 삼중 구조의 신기한 형태였다. 


8. 귀신이 들린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내가 베를린에 살 때 지어진 집은 200년 전에 지어진 집이었다. 혼자 살았던 나는 늘 '혹시 이 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면?', '나치가 여기 살던 누군가를 습격해서 죽였다면?', '이 삐걱거리는 바닥 밑으로 피가 배어들었더라면?'하고 상상하며 부르르 떨곤 했다. 이 가방이 지난 오랜 세월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누가 이 가방을 잃었을지... 상상하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9. 15유로 되시겠습니다.

뭉의 말이었다. 뭉은 이렇게 아름다운 가방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했다. 자기한텐 절대 보이지 않던 것이 언니에게 보인 것은 언니를 선택한거라고 했다. 자기 에어비엔비에서 지내는 동안 가방과 함께 지내면서 귀신이 나오는지 보고, 나오면 그 때 버리자고 했다. 왜냐면, 주인이 그 가방의 값으로 15유로를 불렀기 때문이다. 약 2만원 정도였다. 모든 면이 통가죽으로 된 아름답고 독특한 가방이 15유로라니! 샀다가 귀신이 나오면 버려도 아쉽지 않을 값이기는 했다. 물론 얹혀 사는 처지에는 좀 부담스러운 값이긴 마찬가지였다. 뭉은 아주 쿨하게, '우리 집에서 지내면서 숙소 값을 아끼고 있으니, 이정도는 그걸로 퉁치라'고 말했다. 나는 계면쩍게 인정해야만 했다.


10. 가방끈을 '누가 갉아먹었'다.

가장 무서운 부분은 그거였다. 가방끈을 누가 갉아먹었다. 그게 개였을까, 고양이였을까, 혹은, 사람이었을까. 나는 또 상상을 금치 못했다. 사람이라면 큰일이었다. 주인에 따르면, 이 가방은 사용하지 않고 보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니, 어째서 사용하지 않고 보관된 가방의 끈이 갉아먹혀있단 말인가. 혹시나 좀벌레나 가죽 곰팡이 따위라면 또 그 나름의 큰일이었다. 독일의 정체모를 바이러스, 균, 벌레 따위가 지구 반대편 서울에 간다면 어쩐단 말인가. 뭉은 또 무심하게 말했다.

"언니, 우리 집에 돌아가서 잘 닦아보고, 며칠 좀 둬보고, 벌레가 생기는 것 같거나 곰팡이가 피는 것 같으면 버리자."


11. 버튼마저 떨어져 있었다.

열고 또 여는 삼중 구조의 가방에서, 두 번째로 열어야 하는 버튼이 빠져있었다. 나와 경연은 손짓발짓으로, 아주 서툰 독일어 그리고 오십보백보인 영어를 섞어가며 이 다소 불량한 상태가 15유로에는 합당하지 않음을 어필했다. 주인은

"그렇지만 이 가죽은 아주 훌륭해! 보존 상태도 좋고."

라고 손을 좍 펼쳐가며 주장했지만 뭉과 내가 짐짓 

"역시 귀신과 벌레만으로도 조금..."하고 한숨을 쉬자 조금 눈치를 보았다. 됐어, 안 팔아! 할지, 그래도 이 친구를 건져낸데다 당장 구입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얼른 팔아치울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이 단점은 다른 고객들에게도 보일 것이고, 그들은 현지 사정을 이 동양인 젊은이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독일 지하실에는 괴 곰팡이 벌레 바이러스가 산다는 사실을 이 두 여자애들만 빼곤 다들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팔아치워야 했다. 또 언제 이 친구를 갖고 싶어하는 이상한 사람을 만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이 신비로운 할머니가 마음에 드는 친구가 나타날 때까지 또 그 작은 상점의 먼지 속으로 영영 자취를 감춰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뭉과 나는 한번 더 제안했다.

"이것 봐, 여기 이 버튼을 세탁소에 가서 붙이려면 돈이 또 들거야. 그럼 이 가방은 더 비싸지잖아."

주인은 결국 2유로를 깎아주었다. 그리고는

"가방을 먹은 것은 아마 쥐일거야. 확실히, 사람은 아닐거야. 좀이 슨 것도 아니야."

라고 말했다.

나는, "오케이, 딜. 아윌 겟잇."하고는 10유로 그리고 짤랑이 동전들을 그러모아 3유로를 내밀었다. 사실은 짤랑이가 조금 모자라서 더 깎아주기를 바랬으나, 하나하나 헤아려보니 3유로 더 되었다. 있는 동전을 모두 내라고 할까봐 조마조마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12. 그렇게 해서, 13유로에 동독에서 60년간 지하실에 감금되어 지내시며 모종의 생명체에게 끈의 끄트머리를 조금 갉아먹힌 할머니 가죽가방을 만났다.

가방에게서는 괴상한 냄새가 났다. 나는 예전에 우리 친할머니에게, 그녀가 내 가방 정도의 연세였을 무렵, 초등학생이던 내 남동생이 했던 말실수를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었다. 아마도 노인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난다는 체취였을 것이다. 나는 그 체취에 대한 정보를 얼마 전에야 비로소 기사로 접했다. 신진대사가 바뀌면서 어떤 특유의 체취가 난다고 했다. 그건 자연스러운 노화의 증거라고. 그러나 불행히도 그 시점에, 가족 중 누구도, 할머니 본인은 물론, 그 사실을 몰랐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고, 그 날 아주 오래 목욕을 했다고 한다. 혼자서는 걷지도 못할 만큼 거동이 불편한 우리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옛날식 욕실에 아주 천천히 가서는 아주 천천히 주저앉아, 어떻게 앉아도 불편한 자세로 오래오래 때를 밀고, 식어져 가는 물을 바가지로 떠서 여기저기 끼얹었을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어쨌거나, 내 동생은 손주들 중 할머니에게 가장 살뜰한 청년으로 장성했고 할머니는 나에겐 그 때나 지금이나 포근한 향기로 기억된다. 그저 자신이 보고 느끼고 알게 된 사실을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아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말에는 힘과 무게, 그리고 각과 모서리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아무튼 그 이야기가 생각나는 체취를 가방은 갖고 있었다.


13. 나는 할머니 가방의 얼굴에 크림을 발라 주었다.

베를린에 도착하기 전 머물렀던 도시인 파리에서 나는 '약국 화장품' 클렌징 워터를 샀다. 바이오더마? 라로슈포제? 대개 많은 글자수의 어려운 이름을 가진 그 화장품들은 구분하기가 어렵다. 내가 열심히 때 빼고 광 내는 과정을 뭉이 영상으로 찍어 주었다.

이 과정을 세 번쯤 반복했다. 계속해서 아주 검은 때가 나왔다.

14. 가방에는 곰팡이가 없었다. 귀신도 나타나지 않았다.

냄새가 쉬 빠지지 않아서, 독일식 샷시를 위로 젖혀 환기시킬 때처럼 창문을 열었다. 그리곤 가방을 밖으로 매달고 창문을 닫아 고정했다. 다행히 우리 숙소가 지상층이라, 가방이 떨어져 누군가 다칠 염려도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귀신이 붙은 가방이라 해코지를 하려 들었다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었으니까. 하여간 가방은 멀쩡했고, 귀신도 벌레도 나타나지 않았다. 좀이 슬거나 곰팡이가 피는 일도 없었다. 나와 뭉은 그 가방을 들고 잘 돌아다녔다. 


15. 동네 세탁소를 처음 가봤다.

뭉과 함께 가방을 매고 걷다가 세탁소를 발견했다. 이 동네에 살 때도 세탁소 한 번을 안 갔는데, 그래서 세탁소를 독일어로 뭐라고 부르는지도 몰랐었다. 이 세탁소를 발견한 것은 뭉이었는데, 뛸듯이 기뻐하며 문을 벌컥 젖히고 들어섰다. 나는 여기도 테어민(Termin, 방문 약속)을 잡아야 하는건지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따라 들어가서 가방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주인은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를 꺼내 수많은 버튼들을 들여다보았다. 몇 개를 꺼내 신중하게 이것 저것 대보다가 어울린다고 판단한 단추를 망치로 꽝꽝 박아 주었다. 사실 원래 버튼, 그리고 다른 금속 장식들은 모두 은색이었는데 그 버튼만 황동색? 금색이었다. 게다가 끈에 비해 조금 넙데데하니 커다랬다. 여러모로 아쉬웠지만, 일단 이중으로 잠그는 그 가방이 비로소 제 모양새를 갖춰 안심이 되었다. 한편 독일에서 버튼을 붙여 간다는 사실도 기뻤고, 이제 와 보니 어째 포인트가 되는 듯 한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일에서 자주 보던 납작하고 조그마한 지우개를 쏙 꽂을 수 있는 공간과 연필이나 펜 따위를 끼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16. 나의 다정한 튜터 디자이너가 칭찬해 주고, 가방의 비밀도 알려 주었다.

인턴으로 육 개월을 지냈던 회사에 돌아갈 때, 그 가방을 매고 갔다. 베를린에서 지하철 탈 때 종종 찍던 거울샷을 할머니 가방과 함께 찍었다. 끈이 깡총해서 몸에 착 달라붙고, 볼록하고 탱탱한 얼굴과 날씬한 끈의 비율이 참 아름답다. 짙은 적갈색 가죽이 팽팽하고 단단하게 옆구리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이 기쁘다. 마치 내 늘어진 옆구리살을 대신해주는 기분이랄까.

다정한 튜터 디자이너와 즐거운 점심 식사를 했다. 그는 내가 좋은 회사에 다니게 된 것과 독일어를 계속 공부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의 대화를 자신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몹시 행복해 했다. 나와의 시간이 정말 즐거웠으며, 이후로 오는 인턴들에게 다양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나의 옛 동료들 중에선 여전히 내가 그려 준 얼굴 그림을 SNS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둔 사람들도 있다. 다양이 온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기다렸다고 했다. 오피스로 돌아가서 옛 동료들을 만나고 얼싸안고 인사를 나눴다. 2년이 지났지만 대부분 그대로였다. 나와 함께 인턴을 했던 친구들 중 하나는 학교로 돌아갔고, 하나는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고, 하나는 회사의 미국 오피스로, 하나는 전에 인턴 할 때 앉아있던 자리에 정직원으로 앉아 있었다! 여러모로 신기했다. 모르는 얼굴도 있었지만, 놀랍도록 익숙한 런치 풍경이었다. 전에 같은 팀이었던 세바스찬이 언제나처럼(!) 페스토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섭섭하면서도, 반가우면서도, 행복하면서도, 또 그리워할 것을 알아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눈 시큰거리는 코 그런데도 계속 웃는 입이었다. 얼굴이 내 얼굴 같지 않았다. 마음이 뻐근하게 충만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 '전 회사 방문'을 할머니 가방과 함께 했다. 첫 추억들이 너무 향기로워서, 나는 가방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17. 무언가 만들어내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가방

가방을 보더니, 내 튜터 디자이너는 빙긋이 웃었다. '도쿠멘트' 가방이라고 했다. 투명한 창에 책등을 끼워서, 펼치기만 하면 바로 읽을 수 있도록 사용하는 가방이라고 했다. 책이나 드로잉 북, 노트 등을 끼운다고 했다. 화가나 작가, 기자 등 창의적인 일, 무언가를 바로 적거나 쓰거나 그리는 사람들을 위한 가방이라고, 너와 꼭 맞는 운명같은 가방을 어떻게 만났냐고 했다. 누군가 갉아먹은 끈을 보여주었더니, '쥐가 갉아먹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가방에서 나는 냄새는 전형적인 독일 집 지하실 냄새인데, 지하실엔 쥐가 많았을 것이라고. 누가 먹었는지 알게 된 순간, 더는 무섭지 않았다. 이제는 아마 천국에서 치즈나 뭐 그런 것, 아무래도 가방 끈보다는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있을 쥐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어 인사를 전한다. 덕분에 세상에 둘도 없는 가방끈이 되었으니까.


18. 나의 첫 출근을 함께 한 가방

첫 월급을 받으면 좋은 가방을 사라는 조언을 누군가로부터 들었다. 회사에 들고 다닐 그럴 듯한 가방을 마련하라는 조언도. 그렇지만 나에게 이보다 더 그럴듯한, 더 좋은 가방은 이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이다. 반 세기도 더 전에, 지구 반대편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이 사용하던 가방. 옛날의 쥐와 오늘날의 세탁소 주인이 함께 빚어 준 가방. 내가 그리워하는 도시에서,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된 뭉과 함께 우여곡절을 겪은 가방. 나는 이 가방을 매고 첫 정규직 직장의 첫 출근을 함께 했다. 책 한 권, 몇 가지의 화장품, 작은 노트와 펜이 들어가는 이 가방은 정말이지 더할 나위가 없다. 보통 어렵고 할 말이 없다던 선배들과의 대화의 포문도 이 가방으로 열었다. '제 가방은 정말 특별한 친구에요. 이것 좀 보세요, 옛날엔 여기에 노트를 끼우고 여기서 연필과 지우개를 이렇게 꺼냈대요. 이 친구는 60살도 더 된 할머니에요. 어떻게 만났냐면요...'


19. 온고지신적 모먼트

그리고 최근에, 그러니까 올해의 목표였던 '그림일기 다시 그리기'를 실천하기 위해 아이패드를 중고로 구입했다. 이 자리를 빌어, 엄청난 꿀 매물을 찾고 직접 구매까지 해준 소중한 친구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하여간에, 서울의 이곳 저곳을 헤집어 만나게 된 애플 펜슬과 아이패드는 너무나 놀랍게도,

이렇게나 아름다웠다! 아주 맞춘 듯이 꼭 맞는 옷을 입어버린, 나의 새로운 '창의적인 일 동료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그려내고 써내려가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이 가방이 반 세기가 지나, 드디어 제 짝들을 만났다.


20. 이렇게나 대대적인 소비 전시

이렇게까지 자랑에 자랑을 거듭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에게 멋진 소비란 이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최고 가방은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가방일 수도 있고, 정말 존경스러운 디자이너가 만든 장인 정신의 산물일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이 준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일 수도 있겠다. 한편 내게는 이 가방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인생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시대를 초월해 나를 만나러 온, 나를 선택해 준 동독 출신의 창의적인 할머니. 할머니의 얼굴과 끈이 상하지 않도록, 가죽 영양크림을 발라 주었다. 가죽을 다루는 법을 잘 알지 못해, 냄새가 없어질까 뿌렸던 소독약 때문에 상한 내피 부분의 흉터도 어루만져 주었다.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언제든 이렇게 주워섬길 수 있는 이야기를 갖게 되는 것, 나는 이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소비라고 생각한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런 소유. 


21. 나는 운명을 믿는다. 이렇게나 운명이니까.

아주 오랜만에,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내 소중한 할머니 가방에게 가죽 크림을 발라주며 어루만지던 중에 갑자기, 그렇게 간질간질하고 달달 떨려오는 뱃속 깊은 곳의 설렘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창의적인 분이 '바로 지금이 쓸 때야!'하고 알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름다운 일이다, 이런 순간을 선물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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