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면 감옥행
요즘 회사 회식이 많지 않다. 게다가 음주 문화도 달라졌다. 술 소비량이 줄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음주 빌런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는 술 취해 타깃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술버릇은 쉽게 고칠 수 없다.
회식 문화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2010년 전후로 기업은 '법인카드' 단속을 강화하고 음주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회사 '갑질'과 사내 '괴롭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변화가 가속화되고, 코로나19가 터지며 물리적 거리두기로 회사 회식 문화가 급격히 변했다. 그로 인해 직장인들은 음주가 필수가 아님을 각성하게 된 듯하다. 주52시간 법으로 대기업 야근 문화가 한순간 바뀌듯, 회식 문화도 그와 비슷한 속도로 바뀐 듯하다.
회식은 고생한 직장인의 위로와 조직 결속을 목적으로 1차~ N차까지 달리며 흐려진 의식을 부여잡는 '비공식 업무'였다. 음주 역량을 업무 역량과 등치시키며 최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처럼 술상무가 성과를 낸다는 믿음이 강력했다. 지금도 음주로 다져진 관계로 '아이~ 형 왜이래~ 좀 도와줘' 업무가 가능하다. 음주의 망가짐과 흥겨움은 업무적 관계를 인간적인 관계로 순식간에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각 업무 담당자가 회식에서 진실한 감정을 나누며 까다로운 협조를 손쉽게 얻어내는 순기능도 있었다.
반면, 회식에서 울기, 화내기, 술강요, 건배강요, 욕하기 등 각종 빌런이 발견된다. 그중 가장 저급한 부류가 후배나 동료의 안면을 노리는 '폭력' 빌런이다. 거친 말로 술강요나 욕하는 사람은 정상 범주이고, 온갖 범죄를 시도하는 빌런을 만나면 그 회식 망한거다.
L이 회사를 지원했다는 소식을 친구를 통해서 들었다. 대학원 선배라며 L을 소개했다.
- 술만 안 마시면 정말 좋은 형이야
술버릇이 좀 괴팍하구나 생각했다. 친구의 그말은 내가 당할 폭력의 복선이었을 줄이야.
L의 입사 이후 음주 사건은 계속 일어났다고 한다. 당시 회식 사건사고는 '술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분위기였다. '술 먹고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은 마법 같은 핑계이다. 회식 자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자주 일어나는 회식에서의 사건은 '저 친구 또'하면서 목격자들도 홀린듯이 흐려버리고, 피해자도 '운'이 나쁘다고만 기억의 하수구로 보내버린다. 가해자는 '기억나지 않는다.' '술 먹고 그랬다.'는 이유로 자신의 '몹쓸 짓'보다 '속쓰린' 위장과 숙취를 더 신경썼다.
특히 사건은 노래방에서 자주 일어났다. 노래방은 회식 2차의 기본값인데, 불쾌한 신체적인 접촉, 다양한 강요와 망가짐을 요구하는 사각의 밀실이었다. 그곳에서 흥겨운 남자에게 뽀뽀 공격을 당했는데, 동성에게 뽀뽀를 하는 기괴한 흥겨움이 유행이었는데 만취 빌런에게 장난이지만 당하는 피해자에게 트라우마이다.
사실 대학교때는 노래방을 좋아했었다. 푼돈만 가진 학생들은 희석 소주의 적당한 취기를 빌어 무한 연장 노래방에서 밤을 지샜다. 단단한 녹색 소파가 놓인 저렴한 노래방은 청춘을 토로하는 '건전한' 놀이터였다. 하지만 직장인의 노래방은 달랐다. 직장인이 만취한 노래방은 비틀린 욕망을 해소하는 '불건전한' 요새였다. 그곳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L이 내 얼굴을 강타한 곳도 노래방이었다.
L과는 부서가 달랐지만,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지냈다. 외향적인 L은 회사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L의 입사 2년차 정도에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즐겁게 1차를 마치고 2차 노래방에서 첫잔을 비우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왔다.
- 술을 마시면서 서로 상부상조하는거지
- 인사는 연구원들과 술 마시면서 일을 하는거고
L의 주먹이 정확히 왼쪽 턱을 강타했다.
- 야, 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 왜? 무슨 말이야?
두번째 주먹은 나를 비켜갔고, 함께 있던 동료는 L을 잡았다. 본능적으로 나도 반격했는데,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두 취객의 난장은 금방 끝났는데, L도 울었고 나도 억울함에 덩달아 눈물이 났다. 우린 가게에서 쫒겨나 거리로 나왔을 때 네온사인 빛은 L과 나의 얼굴을 울긋불긋하게 했다. 한바탕 지나, L에가 담배를 건네며 왜 그랬는지 물었다. 그는 내가 스파이짓을 한다.
- 스파이
친구인줄 알았는데, 스파이라고 생각해서 열받았다는 L은 고약한 미친놈이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L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출근했는데 넘어졌다고 했다.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주변 동료들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그렇게 회사생활을 조마조마 이어가고 있었다. 그냥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술버릇이 좋지 않은 사람과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된다. 만취 빌런들의 과거의 사건을 보면 다음 술자리에서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아직도 만취자의 객기에 우리는 관대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매우 쉽게 용서하는 범죄인 경우가 많다.
- 그럴 수 있지. (목소리를 낮추며) 이런 일도 있었어
그 시절을 겪은 직장인은 다들 몇개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경찰서에 가야할 수많은 일들이 만취를 이유로 무마된다. 종종 응급실로 실려간 해프닝조차도 웃어 넘겨버린다.
폭력적인 술버릇은 취한 즉시 '화낼' 기회, '폭력' 기회를 찾는 못된 본능 같다. 분명히 '폭력'에 전조가 있는데, 그 전조를 그 이후 귀신같이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고 도망가는 버릇도 이 무렵부터가 아닐까 싶다. 나의 술버릇은 도망이었고, 무조건 집으로 회귀한다. 도망가지 못할 상황이 되면 엉망진창 슬라임이 될게 뻔하다. 회사 동료들은 나의 '도망'버릇을 싫어했다. 걱정과 동시에 괘씸함을 따져 물었다. '나도 취하는데 넌 안 취해?' '술 마시고 싶어 먹는 게 아니야?' 몸과 마음이 고장나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대방을 보며 묘한 승리감을 느끼거나 나약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는 것일까? 지금도 모르겠다.
- 왜 거절을 못해?
와이프는 여자친구일 때도 매번 같은 질문을 했다.
뒤집어보면,
추한 행동, 폭력도 술로 인한 '실수'인지, '실수'로 위장하고 싶어서 술을 마시는 것인지?
반복되는 실수를 감춰진 빌런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술'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술실수는 빌런의 어두운 욕망의 이면일 것이다.
대학원 박사
술 버릇
폭력
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