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기술(꿀빨기)

사회생활

by 워커

회사에서 속칭 '꿀빠는' 동료가 있다. 꿀빠는 놈이 있으면 주변 직원의 근로의욕이 떨어진다. '꿀'의 양에 비례하여 동료는 힘들어진다. 상사는 '꿀'빠는 기술을 모를까? 알면서 모른 척할까? 직장 상사에 대한 오피스 드라마적 기대는 버려야한다. 상사도 생활밀착형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H차장의 투명한 기술]


코풀고 가래뱉는 H차장이 구사하는 기술은 단순하다. '아부하고 있으니 꿀을 주시오!', '인센티브도 주시고 업무도 쉬운 것으로 주시오!'로 정면승부를 건다. H는 직속 상사 L부장에게 진심을 다했다. 수행비서처럼 L부장을 챙기는 H차장의 아부 스타일은 남달랐다. 노력보다 타고난 재능에 가까웠고 주변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였다.


H차장은 L부장을 향한 정성을 꿀빨기로 회수했다. H의 꿀빨기 필살기는 '엄살'이었다. H는 늘 힘들고 시간이 부족하다며 엄살을 부렸다. 내성적인 L을 위해 H는 회사 풍문을 모아 L에게 어미새처럼 게워 전해주었다. 그는 회식을 좋아했고, 노래방을 사랑했다. 때론 진한 유흥을 쫒았다. H는 업무 속도가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 부장님 이거 엄청 힘들어요. 이 숫자 다 맞추느라 눈이 빠지는 줄 알았어요. 하하

- 나 밤을 샜어~ 너무 힘들어요.

L부장 앞에서 매일 힘들다고 했고, 후배들에게 일이 많다고 너스레를 털었다.


L부장은 알고 있었다. 인간 관계에 서툴고 내성적인 L은 H를 좋아했다. H의 투명한 아부 기술은 L에게 완벽하게 통했다. 학창 시절 공부만 했던 모범생 L은 H를 통해 권력을 맛을 느끼는 것 같았다. L부장은 H를 통해 자동차보험 갱신하고, 저렴한 세차장도 찾았다. L이 건강검진이 끝나면 H과 함께 걱정했고 건강상태를 고려해 점심 메뉴를 골랐다. H의 행동이 L을 향한 진심인지, 권력을 향한 아부인지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L은 '그게 직장생활이야'라며 H와의 궁합을 즐겼다.


- 난 H차장 없으면 회사 생활이 정말 재미가 없어


L부장이 매번 하는 이야기였다. 이는 '너희들도 H처럼 좀 해봐~'. '왜 그렇게 뻗뻗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H는 입안의 혀처럼 L부장에게 달달한 권력의 맛을 주고, L부장의 권력에 폭 안겨 꿀빨기를 서로 나눴다. 진심어린 H의 기술은 눈물겨운 노력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L부장과 H차장은 직장인 배우자와 같은 관계였다. 서로 주고 받는 것이 명확하고 투명했다. 주변 직원들은 그들의 관계를 불편해하면서도 안주거리로 삼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직장생활이 그런거야'로 가중되는 업무를 이해하고 위로했다.



[B과장의 신비한 기술]


B과장은 P부장과 같은 본부에서 일한 적이 있다. B과장은 일은 못하면서 허세는 있고, 분별력은 없으면서 과감스타일이었다. 처음 P부장이 B과장을 우리 팀으로 데려오려 했을 때 팀원 모두가 반대했다. B과장에 대한 평판때문이었다. 허우대 좋고 잘 생겼는데, 욕 먹는 캐릭터였다. 전반적으로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팀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P부장은 B과장을 데려왔다.


회사는 신사업을 시작하면서 조직개편을 해야했다. 새로운 사업영역이다보니, 공부해야할 것도 많고 성가신 일들이 많았다. 특히 유불리가 첨예한 조직 조율에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P부장은 B과장에게 조직개편 준비를 시켰다. P과장을 실무에서 빼고, 다가올 조직개편 준비에 전념하도록 했다.


부장은 조직개편 한 달 정도 남은 팀회의 시간에 P부장은 A과장과 L차장에게 조직개편 업무를 넘겼다.

업무 조정을 위한 사전 양해는 없었다.


- 오늘부터 L차장과 A과장이 조직개편 업무하도록 해

- B과장은요? B과장이 조직개편 준비했었잖아요?

- B과장은 빠지고, 이어서 하는거야


A과장은 따져 물었고, L차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 지금까지 작업한 자료 넘겨주세요.

- 처음부터 한다고 생각해~

- 아니 몇개월 준비한 사람이 있는데? 왜? 갑자기 그러시는거에요?

- 지금까지 작업한 자료도 없다는게 이상하잖아요?


A과장은 짜증난 표정으로 연이어 따져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평소에 B과장의 게으름과 이기적인 성향에 불만이 있었던 A과장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팀원이 불만이 터지면, 팀장은 더 크게 화를 내면 된다.


- 그냥 하라면 해~


부장이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해야한다. 선을 넘을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은 부조리함을 대하는 자세가 분노 혹은 수긍이다. 결과적으로 B과장은 몇개월 놀았다. 아마 B과장은 업무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P부장은 B과장이 부끄럽지 않게 감싸준 상황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P부장과 B과장은 미안해하지 않았다.


P부장의 B과장에 대한 챙기기는 멈추지 않았다. 업무가 많다고 힘들어하던 B과장은 인턴을 뽑아 함께 일했다. 인턴의 열정으로 B과장은 안락함을 취했다. B과장은 대학원을 다닌다며 모두 야근할 때 혼자 일찍 퇴근했다. B가 논문을 쓴다. 교수와 약속이 있다. 수업이 있다며 주변 동료에게 B의 일이 전가되었고, 지방 출장까지 인턴이나 동료에게 넘겨버렸다. B과장의 일을 동료가 해주고 있었는데 P부장은 그 방식도 B의 역량이라며 추켜세웠다. 양재 어느 선술집에서 P부장이 B과장이 일 잘한다고 칭찬했을 때, L차장과 A과장은 P부장의 바가지 머리를 한 P부장의 얼굴을 뭉개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쩌면 꿀빠는 그들의 기술 뒤에는 노력이 숨어 있지 않을까?

H차장은 과감히 드러내어 기술을 거는 유형이고 B과장은 숨어서 기술을 거는 유형이 아니었을까?

다만, P부장과 B과장의 관계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일방적인 P부장의 내리사항은 라인을 만들고 싶은 몸부림이었을까? 회사 선배의 내리 사랑이었을까? BL(Businessman Love)였을까? P부장의 일방적인 바람? 희망이었을까? 팀원들의 욕을 먹으면서도 B과장을 감싸게 만든 꿀빠는 기술 유형이 궁금하다.


어느 회사에서든 상사가 대놓고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라인'을 만들고 싶거나, 개인적으로 친한 '후배'이거나, 새조직에 부임해 '아는 사람= 내편'을 만들고 싶을 때이다. 간혹 '술'이나 '운동'으로 친분을 쌓는 경우도 있다. 오만가지 이유로 회사에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사적 친분이 회사에서 능력이 된다. 권력자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사적 권력을 즐기면 문제가 된다. 그 틈에서 권력자에 대한 '기술'이 들어가는데, 의도적이든 혹은 본능적이든, '인정'받기 위해 직장인은 기술을 쓴다(사회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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